▲가지치기"나무가 일시적인 고통을 겪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잖아유~"
박병춘
정원사의 가지치기와 교사의 체벌은 같은가, 다른가?정원사 한 분이 열심히 가지치기를 한다. '저 분은 가지치기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살며시 다가가 말을 건넨다.
"저, 가지치기를 하면서 무슨 생각 하시나요?""아이구, 뭐 있나요? 사는 거 다 그렇쥬 뭐. 인생사 시름도 잘라내고 고통도 잘라내고 이것저것 생각하기 싫은 것들 다 잘라내는 거지유. 이 일 하다 보믄 아무 생각이 읍써유.""엉뚱한 질문인데 나무의 입장에서는 고통스럽지 않을까요?""그렇쥬. 고통스럽겠쥬. 그러나 일시적인 고통을 겪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좋은 모양새를 보고 우러러보게 되잖아유. 우리는 나무의 입장에서 나무가 되어 가지를 쳐유. 여기 좀 보세유. 빽빽하고 답답한 곳을 이렇게 살짝 쳐주면 얼마나 시원하겠어유. 나무에게 길을 열어주는 거지유.""아, 예에. 저는 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나무가 무척 아프고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말씀 듣고 나니 마음이 좀 놓이는데요?""먹고사는 일이지만서두 나무 자르며 근심 걱정 잊으니께 을매나 좋아유. 나무는 나무대로 좋고.""나무마다 가지를 치는 방법이 다 다르겠어요.""그럼유. 이 일 많이 하다 보니께 나무의 마음을 알게 되유."말을 하지도 못하는 나무련만 나무의 입장이 되어 가지치기를 한다는 정원사의 철학이 감동을 준다.
정원사의 가지치기 철학이 교사로서 삶을 살아가는 내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교육계 최근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체벌 금지 논란과 관련하여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교사로서 성장기 아이들에게 정원사가 되려고 하는 건 아닐까? 뭔가 부족하니까, 혹은 제멋대로니까, 보기 싫으니까, 내 마음에 안 드니까 정원사의 경험과 방식처럼 아이들에게 가지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닐까?
체벌은 결국 상처만 남게 한다체벌은 학생의 행동 변화에 특효약이다. 해열진통제일 뿐이다. 그러니 효과가 매우 일시적이다. 체벌은 장기적으로 교육력을 저하시키는 애물단지가 된다. 체벌당한 학생에게 저항, 복수심, 부정적 사고 등이 내재화된다면 그 어떤 교육으로도 치유하기 힘든 상처가 되는 것이다.
그 상처의 양태가 짧은 시간이 지나 치유되기도 하지만, 한 개인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한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반창회, 동창회 때 학창 시절을 돌이키며 한 맺힌 사연을 토로할 때가 있다. 그때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체벌의 추억이다. 일부 벗들이 육두문자까지 동원하여 체벌의 악연을 떠올릴 때면 현장교사로서 등골이 오싹하기도 한다.
우리는 성장기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벌 문화를 수용해왔다. 서당의 훈장이 방석 위에 아이들을 세워놓고 종아리를 치며 훈육하는 장면은 차라리 정겨운 모습으로 학습될 정도였다. 우리는 그러한 종아리 치기를 아주 바람직한 교육적 체벌로 받아들여 왔고, 그보다 훨씬 강한 체벌이라 하더라도 '사랑의 매'로 장식하여 문제없이 넘어가는 것이 상례였다.
가르치는 교사와 배우는 학생 사이에서, 양육하는 부모와 성장하는 자식 사이에서, 군대에서, 선후배간 다양한 조직에서 체벌은 마치 음성화된 문화처럼 때론 양성화된 관습처럼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