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주)시네마 제니스
체벌조사 한다면서 특정반 학생 40명만 모아놓고...
체벌 논란이 일었던 서울 ㅈ중학교에 감사를 나간 것은 서울서부교육지원청(서부교육청). 서부교육청에서는 지난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해당학교에 나가 체벌 논란의 당사자인 교사와 학생들을 상대로 사실관계를 조사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지난해에 같은 반이었던 학생 40여명을 한 곳에 불러모아놓고 서부교육청에서 준비한 질문지에 예/아니오를 쓰도록 하는 조사를 실시했다. 서부교육청 관계자는 "이들 말고 다른 학생들은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고 9일 확인해 주었다.
이 관계자는 "체벌 논란이 일었던 교사 4명이 지난해에 모두 이 학급에 수업을 들어갔고 해당 학급에서 논란이 된 체벌이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교사들은 이 학급뿐 아니라 다른 학년 다른 학급에서도 수업을 했고 그곳에서도 체벌 논란이 있었다. 그럼에도 서부교육청은 이를 특정 학급에서만 일어난 일로 보고 다른 상황은 조사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학교 측의 주장만을 받아들인 결과로, 사실상 특정 학생들을 체벌 논란 조사 대상으로 지목한 셈이다.
과학실에 불려온 학생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장학사가 준 에이포(A4) 용지 4장 분량(가해 교사 1인당 1매)의 질문지로 조사를 받았다. 질문지에는 ▲체벌 없는 평화로운 학교 만들기 규정을 아는가 ▲교사가 '꼴값떨지마'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가해 교사한테 체벌 받는 모습을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는가 ▲(가해 교사가 학생의) 뺨을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나 본 적이 있는가 등 인권단체가 제보한 내용과 언론에 보도된 내용 일부를 정리한 15문항 남짓이 들어있었다. 이 질문지를 회수하는 것으로 학생들에 대한 조사는 끝났다.
이와 관련, 서부교육청이 감사 시작단계부터 이미 조사 대상과 범위를 한정하고 형식적인 조사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이것은 피해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고 사건을 축소하려는 행위로 의심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서부교육청 관계자는 "인권침해인 줄 몰랐다, 그렇다고 전교생을 대상으로 조사할 수는 없지 않나,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서부교육청과 함께 감사를 나가겠다고 밝혔던 서울시교육청이 실제 감사에는 나가지 않아 사건을 축소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가해 교사들 대변해주고, 학교 측 말만 믿고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들에 대한 조사도 부실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서부교육청 관계자는 "1학기에만 체벌했다"는 교사들의 주장과는 달리 지난해 2학기와 올 3월에도 일부 교사들의 체벌이 있었음을 일부 확인했다고 하면서도 교사들의 주장을 대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지난 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죽을 만큼 때리지는 않았다"면서 "작년 1학기 때 특별실에서 작업하다가 그런 일이 한 번씩 있었다"고 망치와 쇠파이프로 학생들을 체벌한 것을 시인했던 교사와 관련해 서부교육청 관계자는 "그 분이 연세가 많으신데 그 분이 말한 '작년'이 2010년이 아니라 2009년일 수도 있다"면서 대신 해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배경내 위원장은 "여러 차례 주의·경고를 받았던 교사들을 학생부 생활지도 담당으로 계속 두었다는 건 학교가 이들의 체벌을 묵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학생고충신고센터를 만든다는 규정을 만들어놓고도 정작 설치는 하지 않았던 학교의 모습을 보면 개선 의지가 없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더욱이 특정반 학생들만 조사한 건 사건을 축소하겠다는 의도"라며 "구조적 약자이고 불이익에 민감한 학생들을 배려하지 않고 조사를 강행한 건 교육청의 인권감수성이 낮다는 증거다, 피해자인 학생들에 대한 보호 장치와 일정한 조사 매뉴얼도 없이 교육청의 편의대로 일방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서울시교육청에 강력 항의하고 재조사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은 물론 전국의 시도교육청에서 이러한 경우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감사 매뉴얼이 없는 실정이다. 해당 교육청이나 감사를 나간 장학사 등의 생각이나 능력에 따라 감사의 과정과 내용은 물론 결과까지도 좌우될 수 있다는 뜻이다. ㅈ중에서와 같은 일이 발생했을 경우 일반적으로 감사를 나가는 장학사들이 학교 측의 주장을 먼저 듣고 감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피해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정확한 사실관계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교육 관련 관계자들의 말이다. 서울시교육청 차원의 감사 실시 매뉴얼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ㅈ중, 징계 및 재발방지 뒷전 "누가 제보했어? ×발!"한편 언론 보도와 서부교육청 감사 등이 잇달아 이루어지자 학교 내 일부 학생회 간부와 선도부원들이 언론에 제보하고 방송 인터뷰를 한 사람을 색출해 잡아내겠다며 나서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부 교사들도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오마이뉴스>의 취재 과정에서도 ㅇ교사와 ㄱ교사 등이 기자에게 제보자가 누구냐고 따지거나 누가 제보했는지 알 것 같다며 제보자에 민감하게 반응한 바 있다.
제보자 색출과 관련해서는 지난 8일 학생회가 비상 소집됐고 그 이후 학생들의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것. 이로 인해 학생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3학년 학생들 명의로 "저희는 OO인이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기사에 휩쓸리지 말고 원래 모습을 되찾아 주세요. …(생략)… 파이팅. 사랑해"라고 써 붙인 8절지 크기의 자보도 등장했다.
제보자 색출과 관련해 이 학교 ㄱ교감은 9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그럴 리가 없다"며 강하게 부정하면서도 "만약 그렇다면 당장 중단시키겠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해 조치하겠다"라고 말했다. 확인 결과 ㄱ교감은 10일 오전 아침 조회시간을 통해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게 해서 죄송하다, 신고자 색출 행위는 절대 안 된다"는 등의 내용으로 교내 방송을 했다. 가해 교사로 지목된 이들은 따로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ㅈ중에서는 언론 보도와 서부교육청 감사 이후에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강구하거나 피해 학생들에 대한 치유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교사들이 여전히 수업 중에 "누가 그랬어?(제보했어) ×발!"이라고 하거나 "입조심해라! 유언비어에 휩쓸리지 말고, 나는 하던 대로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가해 교사 중 한명이 학교에서 잘릴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일부 학생과 학부모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결과 제대로 나올까...체벌감사 매뉴얼은 어디에?서부교육청에서는 이틀에 걸친 조사를 마치고 벌점을 많이 받도록 돼 있는 ㅈ중 생활평점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이를 수정·개선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뒤 9일 서울시교육청에 감사 결과를 보고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이를 검토한 후 재조사 여부 등 사후 처리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특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인 조사를 실시했고 그 후 제보자 색출 등의 분위기가 감지된 상황에서, 조건을 갖추어 재조사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조사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주장도 일부에서는 나오고 있다. 이미 심리적으로 위축돼 말문을 닫은 학생들을 상대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체계적인 감사매뉴얼이 없이 진행된 교육청의 부실한 초동조사와 대응으로 가해 교사와 학교 측에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 될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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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40명 한 곳에 모아놓고...무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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