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독자파가 아니라 "신 다수파"로 부르는 것이 맞겠다. 진보신당의 지난 3·27 당대회는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듯 '독자파의 승리'로 끝났다.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흐름에 강한 제동이 걸린 셈이다.
이에 앞장섰던 노회찬·심상정 전 대표와 조승수 당 대표에게 많은 정치적 부담이 뒤따를 것이다. 비록 '도로민노당'을 반대하고 오른쪽으로 더 크게 열어야 한다는 대통합의 입장이었지만 현 지도부에 속해 있고 가장 적극적으로 진보신당이 통합의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나 역시 당 대회 결정 앞에 어떤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지도부의 사퇴는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다. 최근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에 적극적 입장을 밝힌 조승수 집행부가 당내 소수파로 전락했음에도 지도부 사퇴 결정은 대표가 제시한 6월 임시 당대회까지 질서정연한 논의와 실천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을 피하고 혼란을 부추기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당내 독자파 동지들 역시도 '혼란한 승리'보다는 질서 있는 논의를 바랄 것이다.
당 대회 결정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고, 이를 주도한 당내 여러 활동가들과 정치그룹의 의견은 이후 당 활동에 반영되어야 하며, 당 진로를 둘러싼 더 많은 논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등대정당' 결의 존중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번 다수 결정 안에는 '소금정당', '등대정당'의 길을 가겠다는 결의가 녹아 있다. 그 길이 우리 진보신당이 결정할 수 있는 길 중에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길을 주장하는 동지들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갖고 있다. 가고자 하는 길이 다름에도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내가 지난 20년간 걸어온 길이 그 고통스럽고 어려운 길이었고, 그 길을 그들과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열린통합, 복지국가정치동맹을 주장하는 이른바 통합파 부대표이지만 나는 질서 있는 논의와 진보정치의 진로 문제에 대한 토론을 책임지는 것으로 당내 독자파 동지들에게 신뢰와 존경의 태도를 다하고자 한다.
현 지도부가 사퇴하더라도 차기 당대회 이후여야 하며, 개인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신 다수파(독자파)' 동지들이 이야기하는 '등대정당'이 가능하도록 기여할 생각이다. 현재의 등대정당인 진보신당이 없었다면, 어느 정치세력이 기륭전자나 재능교육 같은 힘없는 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에 그토록 앞장서 왔겠느냐는 질문에 누구도 선뜻 대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진보정치세력 전체가 등대정당에 머무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수파 정치 전략을 굳게 세워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이번 당 대회는 민주당·국민참여당 등 과거 집권세력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들과의 연립정부에 대한 반대가 의결되었으며 토론과정에서 과거 행위, 특히 반노동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길, 즉 정치질서재편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믿는다. 당 대회가 제시한 질서재편의 가치기준은 '반신자유주의 평화 복지국가'이다. 이 기준에 동의하고 미래지향의 실천을 약속하며 과거 오류를 평가하고 반성한다면 그것이 극좌파이든 개혁주의 세력이든 다 같이 손잡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당 대회 이전까지 진행된 진보신당 안에서의 통합논의가 사실상 '민주노동당'만을 상정한 논의였기 때문에 '통합파'는 '도로 민노당파'에 다름 아니었고, '독자파' 역시 '민주노동당으로부터의 독자파'로서 기능하였다는 사실이다. 광범하게 문호를 개방하지 못하고 '민주노동당이냐? 아니냐?'의 닫힌 논의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도로 민노당' 논쟁 넘어서야
이제 이 한계와 틀을 넘어서야 한다. 3·27 당대회를 통해 사실상 '통합파와 독자파'의 대립은 무너졌다. 통합파 안에도 '민노당과의 묻지마 통합'에는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은 통과된 수정안 중 민노당을 겨냥한 '북한문제' 조항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는 점에서(61.2%. 참고로 가장 낮은 찬성률은 53.8%) 확인된다.
독자파 안에서도 본인들이 찬성하기는 어렵지만 '차라리 민주당 개혁파까지 포함하는 집권가능한 진보의 길을 열자는 대통합복지파의 주장이 일관되고 논리적이어서 수긍이 간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민노당이냐 아니냐의 틀에 갇혀 너무 오랜 시간동안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실제 가장 중요한 '진보신당이 어떤 가치로,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집중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적극 지지하는 입장인 '대통합복지파'는 수적으로 당내 소수임이 이번 당대회를 통해 드러났지만(민주당·참여당 등 과거 집권세력에 '조직적 성찰'을 요구하는 조항의 삭제를 주장한 수정안은 17.4%의 찬성으로 부결되었다) '복지국가정치동맹'의 길을 제안하고, 그 가능성을 점검하고 실천하는 일은 여전히 유효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진보의 가치와 의제가 시민들의 정치담론에 주요한 논의 주제로 등장했고 사회적으로 진보정치가 촉구해온 다양한 복지정책의 도입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지난 20년 넘게 줄기차게 '진보정치 세력화와 가치 의제의 확산'을 위해 앞장서 실천해 온 세력들의 총본산이랄 수 있는 진보신당이 정치적 소수의 한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결정한 '노동존중과 평화를 위한 사회연대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들과 만남 피할 수 없다
이 길에서 나는 소위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들과의 만남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동안 불가능했고, 금기의 대상이었던 자유주의 정치세력과의 연대와 통합은 논의의 대상으로 올려야 한다. 우리가 움직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들의 집 앞에 와서 문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역사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가치연합과 승리를 위한 다수파 형성에 나설 것이냐, 혹은 그들의 변화와 반성에도 불구하고 과거 문제에 매달려 노동자 서민의 힘겨움 앞에 무기력한 현실을 방치할 것이냐, 선택해야 한다.
나는 당연하게도 진보신당은 스스로 설정한 과제를 성취하고, 노동자 서민의 제반 권리와 복리를 향상시키기 위한 다수파 형성이라는 역사적 과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우리가 소수파이기 때문에 연합하고 통합했을 경우 잡아먹힐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소수파가 그런 위험성에도 역사적 대의와 과제 앞에 스스로를 던지는 모습을 보일 때 가치와 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선택'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잡아먹히는 위험도 있지만 잡아먹을 기회도 동시에 생긴다. 또 그것은 누가 얼마나 부지런하고 유능한가로 결정될 것이다. 역사는 소수파가 다수파를 이기는 역동성을, 또 전쟁과 정치의 영역에서 이를 너무 자주 보여주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진보정치세력들은 이제 '민노당이냐' '아니냐'의 오랜 문법에서 벗어나자. 조직적 독자 틀을 유지하는 것으로 진보정치세력의 의무를 다했다고 만족하지 말고, 진보의 가치와 의제가 미래가 아닌 바로 오늘 현실에서, 책 속의 노동자와 민중이 아닌 우리 눈앞의 노동자와 서민들의 손에 쥐어질 수 있도록 실천하자.
눈 덮인 산을 내려올 때 사용했던 스키를 눈 녹은 평지에서 싣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며, 강을 건너는 데 썼던 배를 머리에 이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버리는 것 없이 어떻게 새로 취할 것이며, 과감한 도전 없이 어떻게 노동자와 서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겠는가?
솥을 깨트려 부수고 배를 버리는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각오가 진보신당의 것이 되어야 한다. 소수파이지만 세상을 바꿀 결기가 넘치는 진보신당이 복지국가정치동맹이라는 다수파 정치전략의 맹주가 되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깨뜨리고, 시장만능의 비인간적 사회를 탈바꿈시키는 승리의 주역이 되기를 기대한다.
2011.03.29 15:18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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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민노당' 논쟁 접고, 복지동맹 주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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