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책 누가 살까, 궁금한 분들 오시라

참여연대 강좌 '에로스의 인문학'을 들으며

등록 2011.03.30 10:11수정 2011.03.30 11:4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인왕산 아래 통인동에서는 매주 목요일 밤마다 에로스를 공부하는 남녀들이 있다. 20대부터 50대까지(아쉽게도 60대는 보이질 않는다)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들이 모여 도대체 에로스가 무엇인지 공부를 한다.

 

사실 수업내용을 상세히 광고했더라면 조기 수강마감에 대박 강좌였을 것을, 참으로 진지하기 짝이 없는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진행하는 강좌이다 보니 '에로스의 인문학'이란 다소 거창한 제목이 붙고 말았다. 게다가 에로스라는 단어가 주는 뭔가 야할 것 같고 은밀한 느낌으로 인하여 타인의 귀감으로만 살아온 분들은 섣불리 수강하지 못하시는 것 같다.

 

시작은 몹시 우아하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에로스와 싸이키' 신화 이야기 분석과 함께 그리스의 아름다운 조각상과 회화들도 감상하면서 에로스의 신화적, 미학적 이해를 먼저 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3강쯤에 이르더니 '자유부인'과 '뽕'을 감상하면서 수업이 무척 에로틱해졌다. 나는 뭐하며 사느라고 마흔이 넘어가는 나이에 갖은 '부인 시리즈'나 '뽕'과 같은 에로영화 하나 보지 않고 살아 왔을까. 살짝 후회가 스친다.

 

그러나 이 에로스 강좌의 차별성은 그냥 에로영화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으로 적극 표현하는 에로스의 측면도 보지만, 사랑의 시를 나누어 읽으며 에로스를 갈망하는 영혼들의 마음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서로 위하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관계 말이다.

 

연애 시절아, 그날이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 안도현의 '연애' 중에서

 

누구도 수강생들에게 자신의 에로스 생활에 대해 말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남녀들은 서로 앞다투어 본인의 삶에서의 에로스에 대해 스스럼없이 얘기를 꺼낸다. 그 안에는 환상, 열망, 아픔, 상처, 위로… 다양한 경험들이 녹아있었다. 어쩌면 에로스에 얽힌 우리의 삶의 얘기는 끝이 없는 것일까.

 

참여연대가 작은 시도지만 에로스를 얘기해보는 혹은 배워보는 시도를 한 것은 참 의미있다. 한국사회의 에로스의 자화상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우리 사회에서 성애에 대한 얼마나 기형적인 현상들만 넘치고 있는가. 밤이면 교회 십자가만큼이나 흔하게 도심에 붉은 불빛을 드리우는 러브호텔의 표시부터, 너무나 접근성이 쉬운 매매춘부터, 애인 만들기 붐이나 막장드라마까지 정말 어느 시사주간지의 기자가 썼듯이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아닌가. 

 

요즘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마음 무거운 뉴스들이 넘쳐난다. 막장드라마보다 더 막장인 정치현실도 그렇지만, 올해만 해도 막무가내로 질주하는 4대강 파괴에 이어, 뒤숭숭하고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구제역 파동, 유난히 추운 겨울을 넘겼더니 일본 대지진에 이은 후쿠시마 핵사고가 우리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이 와중에 에로스는 또 어떤가. 덩여인을 둘러싼 상하의 외교관들의 스캔들부터 순식간에 신정아의 자서전이 5만부나 팔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덩여인이나 신정아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팜므 파탈인가 아니면 권력 지향적인데 사랑에 빠졌을 뿐일까. 아마 평생을 살아도 알기 어려운 것이 남녀 사이이고 사람의 열길 깊이 마음 속일까.

 

사실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새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관심은 우리의 삶일 것이다. 그리고 어른으로서의 삶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 에로스가 아닌가 싶다. 사랑이라 부르든 결혼이라 하든 혹은 섹스만을 말하든,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헤어지고 (아니면 다행이고 !) 이런 것들이 참으로 배우고 싶은 것들이 아닌가.

 

신정아의 자서전을 도대체 누가 사 보는지 궁금한 이들은 오시라. 본인은 몹시 원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변변한 사랑을 못해봤다면 역시 오시라. 연애는 사춘기를 넘으면서 줄곧 거의 평생을 해왔으면서도 아직도 매번 연애가 어려운 분들도 오시라. 그래서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은 에로스 남녀들의 대열에 합류하시길 권고한다. 혹시 아는가. 서로 배우고 나누는 중에 한가지 해답이라고 얻어가게 될지.

 

다음달 4월까지 에로스 남녀들은 목요일마다 통인동 참여연대에 모인다. 당신 삶이 에로틱하고 싶은데 오히려 애로 사항에 가깝다면 기꺼이 오시라. 단, 서슴없이 에로스 생활을 공개하는 낯선 여자 (혹은 남자)의 매력에 너무 놀라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시길 권고한다.

2011.03.30 10:11ⓒ 2011 OhmyNews
#에로스 #참여연대 #신정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3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