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세계7대자연경관'으로 선정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뜨겁다. 제주도지사뿐 아니라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과 이명박 대통령까지 투표를 독려하고 나섰다.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세계7대자연경관 범국민추진위원회'(추진위원회) 명예위원장까지 맡았고 고두심, 김태희, 박지성 등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스타들도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언론의 관심도 대단하다. 정운찬 전 총리가 추진위원장을 맡으면서 단 3개월 동안 '7대자연경관'이라는 단어로 포털을 통해 검색할 수 있는 기사만 3000여 개(구글검색 기준)가 넘는다. SBS 드라마 <시크릿가든>으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 현빈이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제주도 홍보를 했다는 내용의 기사는 하루 만에 500개 이상이 쏟아졌다.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만 놓고 보자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열기에 못지않다.
하지만 최근 '세계7대자연경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뉴세븐원더스'(New7Wonders)재단에 공신력과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뉴세븐원더스재단이 스위스 소재의 비영리재단이라고 알려진 것과 달리 전화투표 통해 수익을 목적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공신력이 없는 단체라는 지적이다.
제주도와 추진위원회 등은 이런 지적에 "절대 아니다"라며 부인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한 민간단체가 벌이는 국제적 '사기극'에 대통령부터 국민들까지 놀아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실제로 <오마이뉴스> 취재결과 여러 기사를 통해 보도된 선정효과의 근거는 대부분 뉴세븐원더스 재단의 홍보자료로 그 신뢰성이 떨어졌고 이를 검증할 만한 자료는 그 어디에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제대로 된 사업타당성 검토 없이 막연한 효과에 기대어 사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을 위한 홍보전은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시 제주도 관광객 200만 명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그 일환으로 이번 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세계7대자연경관 투표는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됐지만 그 간 별다른 홍보가 없었던 것은 "전 제주도지사(김태환)가 선정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추진위원회 측의 설명이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지난 신년 메시지에서 "도민의 입장에서 제주바람과 물, 청정 자연환경의 가치에 대해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해 줬으면 한다"며 "온 도민이 똘똘 뭉쳐 가족의 마음으로 힘과 용기를 더하면 제주도는 지금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투표동참을 호소했다.
우 지사는 지난달 18일 문화관광체육부(장관 정병국)와 정책협약식을 맺는 자리에서 "제주도가 세계7대자연경관으로 선정되면 1년에 1조4천억-1조5천억 원의 경제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7대자연경관을 뛰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이다. 본격적인 홍보전은 지난해 12월, 정 전 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범국민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시작됐다.
정 전 총리는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된다면 일회성에 그치는 스포츠 경기 유치 등과는 달리 영구히 가치와 효용이 지속된다"며 "이것이 갖는 브랜드 가치와 경제적 파급 효과는 경제학자인 내가 생각해도 상상을 초월한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된 나라는 그 직후에 관광객이 70∼80% 늘어났다"며 선정효과의 근거를 댔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1월 청와대 트위터 계정을 통해 자신의 투표 모습을 사진으로 올리면서 투표동참을 호소했다. 이 대통령은 "방금 세계7대자연경관에 제주도를 투표했습니다"라며 "적극 홍보해주세요. 저희 방 직원들이랑 가족들 다했네요"라고 누리꾼들에게 투표를 권했다.
이어 김윤옥 여사도 지난달 23일 청와대에서 추진위원회의 명예위원장직을 수락하며 홍보에 나섰다. 김 여사는 "많은 국민들과 세계인들의 지지를 받아서 제주도가 잘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면서 "제주도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고 널리 알려가는 과정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내외가 투표참여를 호소하자 정부여당 인사들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방금 세계7대자연경관에 제주도를 투표했습니다"라며 투표는 인터넷사이트에 접속하시거나 전화를 걸어 직접 선정할 수 있어요. 저는 전화투표를 했습니다"라고 밝혔다.
제주도가 고향인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수차례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누리꾼들의 투표를 독려했고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만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원 사무총장은 지난달 정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제주가 세계7대자연경관에 선정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해 달라"며 "민간에 범국민추진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해외홍보가 관건인 만큼 정부의 전문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에 정 장관도 "제주의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은 제주가 아닌 우리나라 전체의 일"이라며 "정부 차원의 우선적인 지원에 힘쓸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 장관은 그 후로 제주도와 MOU(업무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적극적인 지원체계를 갖췄다. 원 총장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관련 홍보동영상과 투표방법 등을 올려놓기도 했다.
박희태 국회의장도 지난달 9일 김재윤 민주당 의원 등 제주도 출신 의원들이 방문한 자리에서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우리 제주가 꼭 세계7대자연경관에 선정돼야 한다"며 ""제주도의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높이고 세계로 대진출하는 또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지를 선언했다.
그밖에 현인택 통일부장관과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지원을 약속했다.
제주도 출신 의원들 중심으로 민주당도 홍보몰입
홍보전에 몰입한 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제주도가 지역구인 김재윤, 강창일, 김우남 의원을 중심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천정배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당 차원의 선정위원회를 꾸리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제주도에서 열린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투표참여 캠페인 출정식'을 천 최고위원은 "7대 자연경관 최종 후보지 28곳 중 경치, 섬, 화산, 해변경관, 동굴, 폭포, 숲 등 7가지 테마를 갖추고 있는 곳은 제주가 유일하다"며 "아름다운 제주의 명성과 인지도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제주가 반드시 7대 자연경관'에 선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민주당은 오늘부터 제주 7대 경관 선정을 위해 당력을 총집중해 지도부와 국회의원, 전국 당원들과 함께 투표 참여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재윤 의원(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은 같은 자리에서 "천혜의 자연환경과 자원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제주의 미래와 비전이 한층 더 밝아지고 있다"며 "세계7대 자연경관까지 거머쥘 수 있도록 당 차원의 지원과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앞서 지난달 9일 국회에 '제주도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지원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고, 국회는 같은 달 10일 이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세계7대자연경관 홍보는 아니라 민간에서도 활발했다. 대한노인회,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언론진흥재단, 수산물가공유통협회, KBS희극인회, 한국야구위원회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단체가 홍보에 나섰다.
이 가운데 농협은 '매일 3명 투표 동참시키기', '회의 때 전화투표하기', '1주일에 한 번 투표하기' 등의 실천사항도 만들었고, 제주은행은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기원 적금 상품까지 선보였다. 최근에는 전국공무원노조, 현대중공업 등 노동단체들도 홍보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사업 아닌 민간사업, 문제점 확인할 필요 없다"
그러나 이렇게 홍보의 열을 올리고 있는 인사와 단체들 가운데 어디도 세계7대자연경관에 제주도가 선정돼야 하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우근민 제주도 지사의 '경제효과 1조 원 이상'이라는 발언과 정운찬 전 총리의 '세계7대불가사의에 선정된 직후 관광객이 70∼80% 늘어났다"는 발언 모두 뉴세븐원더스 재단 측의 자료라는 것이 30일 추진위원회 박재석 사무국장을 통해 밝혀졌다.
박 사무국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자료는 뉴세븐원더스 재단에서 받거나 홈페이지에 나온 것"라며 "우리가 민간단체로 다른나라 사례까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선정효과 검증 없이 성급하게 홍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질문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밝히고 추진하는 게 수순에 맞지만 우리가 조사할 여건이 안 됐다"라며 "두 달 전 삼성경제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겼고 한 달 후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선정효과에 대한 검증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안하는 것보다는 선정되는 게 좋다"는 말이다.
이런 반응은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한 비서관은 3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제주도가 총장님의 고향이고, 범국민추진위에서 협조요청이 있어 나선 것"이라며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거나 정부 단위에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민간에서 추진하게 됐고, 어느 정도 관광유입효과가 예상돼 협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나선다기 보다는 협조를 해서 선정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 생각해 도움을 주시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논란에 대해 유일하게 반응을 보인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의 한 비서관은 "사업을 추진하는 재단이 민간이기는 하지만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자체가 제주도에 도움이 되는 사업이라고 판단했다"며 "국가 예산을 쓰거나 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인할 필요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네스 기록도 처음에는 민간업체가 한 것이고 처음부터 공신력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며 "이번 사업도 많이 회자되면서 공신력을 갖게 되지 않겠냐. 유령재단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에서 홍보예산으로 20억 원을 지출하는 부분과 관련해서는 "그것은 제주도가 해명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천 최고위원은 지난 30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세계7대자연경관 제주선정추진위활동에 대해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어 심층 검토했다"며 "사업주체가 민간 재단이지만 제주를 세계에 널리 알려 관광 등 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되므로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7대 불가사의'에는 1억 명 투표했는데, 이번에는 10억 명?
어디도 선정효과를 과학적으로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효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근거는 뉴세븐원더스재단이 2007년에 선정한 '세계7대불가사의' 사례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중국의 '만리장성',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브라질 '예수상', 멕시코 '치첸이트사'의 마야 피라미드 유적지,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인도 '타지마할', 요르단 고대도시 '페트라' 등이 선정됐다.
두 사업을 비교해 봤을 때 사업 홍보되는 사업규모부터가 차이 났다. 뉴세븐원더스재단과 범국민추진위원회는 이번 선정 투표에 전 세계 10억여 명이 참여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2003년부터 2007년 최종 선정까지 세계7대불가사의 투표에는 세계에서 불과 1억 여 명이 참가했다.
10억 명이라는 수치 또한 홍보용 문구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범국민추진위는 뉴세븐원더스재단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1억여 명 제주 투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7대불가사의의 관광홍보효과를 확인할 방법도 거의 없다. 중국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결과 만리장성 소개글에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내용만 명시돼 있다.
영화 인디아나존스 '마지막 성배' 촬영지로도 유명한 요르단의 페트라도 1985년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기록만 나와 있고 이탈리아 콜로세움, 인도의 타지마할도 마찬가지였다. 브라질, 멕시코, 페루의 관광청은 홈페이지 접속이 안 돼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각 국가 관광청에서도 세계7대불가사의 선정을 선전하고 있지 않았다.
각 국가의 관광산업 통계에도 7대불가사의 선정 효과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세계 각 국가 관광산업 통계를 보면 브라질의 경우 관광객 수가 2006년 5017만(숙박관광객 기준)에서 2007년 5026만으로 0.2% 늘었고 2008년에는 5050만으로 0.5%, 2009년에는 4082만으로 오히려 4.9% 줄었다.
2007년 선정된 7대불가사의 효과로 관광객이 일시적으로 늘었다 볼 수 있지만 다른 국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중국은 2007년 전년대비 관광객이 5.5% 증가했지만 2008년 다시 1.4% 줄었고 2009년에는 2.7%가 더 줄었다.
멕시코의 경우 2006년부터 매해 관광객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7대불가사의에 선정된 2007년에는 -5.7%, 이듬해에는 -0.8%를 기록했다. 이탈리아는 2006년 관광객이 12% 늘어났지만 7대불가사의에 선정된 이후 매해 5.9%, 0.6%, 1.4% 증가를 기록해 증가폭이 줄어들었다. 나머지 선정국가들의 통계정보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더 구체적인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에 각 국가 관광지별 통계자료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해당부처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3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국가 단위 통계는 있지만 각 유적지별 통계자료는 우리가 낼 수 있는 아니다"라며 "모든 홍보사업에서 기대효과에 대해 항상 정확한 통계자료를 놓고 결정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사업은 일부 상업성이 필연적으로 필요하다"라며 "상업적이라고 무조건 나쁘게만 볼 게 아니라 이것도 한국을 알리는 과정으로 국가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번 투표에 전국민적인 참여는 월드컵과 같이 온 국민이 화합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라며 "재단의 정체성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세계7대불가사의에 선정된 국가들이 공식적인 홍보에서 선정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 이 관계자는 "그렇게 한다는 것은 홍모마케팅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인데 우리가 선정된다면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며 "뉴세븐원더스 재단에 놀아나는 것이 아니라 재주는 그들이 부리고 이익은 우리가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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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효과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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