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초등학생이...", 수원 학교 35% 중앙현관 통행 제한

학생인권조례 선봉 경기교육청 관할 학교까지 '금동의 문' 수두룩

등록 2011.04.05 13:56수정 2011.04.0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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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의 중앙현관 통행을 금지한 서울 ㅅ초의 현관.
학생들의 중앙현관 통행을 금지한 서울 ㅅ초의 현관. 윤근혁

"학생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 학생은 인격체로서 자유와 권리를 가진다."

2010년 10월 5일 경기도교육청(교육감 김상곤)이 전국 최초로 선포한 학생인권조례 선언문 가운데 일부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이 있는 경기지역은 물론 전국 상당수의 초·중·고 가운데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 권리인 자유롭게 걸어 다닐 권리'까지 빼앗은 학교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학생들은 학교 건물의 중앙현관 등을 통행하지 못하게 하는 대신 교직원과 손님 등 어른들만 이곳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경기교육청 있는 수원지역 초등학교... 40개 중 35% 통행 제한

이 같은 사실은 4일 수원지역 전체 초등학교 86개 가운데 절반 수준인 40개 학교를 무작위로 뽑아 학생들의 중앙현관과 중앙계단 통행 여부를 조사한 결과 드러났다. 경기교육청 건물이 있는 수원지역 초등학교까지도 어린 학생(童)의 자유로운 통행권을 가로막는 이른바 '금동(禁童)의 문'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이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의 35%인 14개교가 학생들의 자유로운 통행을 금지하고 있었다. ㅅ초, ㄱ초, ㅇ초 등 10개교는 중앙현관과 중앙계단의 통행을 모두 막았고, ㅇ초, ㅁ초 등 4개교는 중앙현관만 사용하지 못하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앞서 <오마이뉴스>는 지난 3월 28일 '현관 놔두고 '쪽문'으로만 다녀야 하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서울지역 한 초등학교의 사례를 보도한 바 있다. 이 보도 뒤 비슷한 관행이 전국에 퍼져있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중앙현관 등을 통제하는 이유에 대해 해당 학교 교장들은 "학생들의 질서지도와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수원 지역 ㅎ초 교장은 "건물 양쪽에 통로가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다니는 게 오히려 편리한 탓에 생활지도부에서 평상시 학생들이 중앙현관 통행을 자제토록 했다"면서 "생활지도상, 안전지도상 그렇게 한 것이고 중앙현관 금지를 강요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참교육학부모회 "학생인권조례만 제정해놓고... 학교문화 혁신 필요"

하지만 이를 두고 학부모단체는 인권침해라는 반응이다. 장은숙 전국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국회도 권위주의의 상징인 의원들 통로가 없어졌는데 학생들이 주인이라는 학교에서 어떻게 중앙현관 통행을 금지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면서 "학생인권신장은 조례만 제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문화 혁신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수원지역 전교조 대표인 서윤수 지회장(금곡초 교사)도 "학생인권 1번지라는 경기도교육청이 있는 수원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다른 시·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면서 "디귿(ㄷ)자 형 건물이 아닌 일자로 된 학교에서는 중앙현관 근처에 교장실이 있다 보니 상당수 학교장이 정숙을 강요하면서 통금 지시를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학교혁신과 중견관리는 "학교의 주인이 학생인데 교장들이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학생들이 중앙현관 등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서울 ㅅ초 중앙현관 금지에 문제의식을 가진 한 학생이 2010년 학급문집에 쓴 글. 아래 내용은 담임 교사가 적어놓은 글임.
서울 ㅅ초 중앙현관 금지에 문제의식을 가진 한 학생이 2010년 학급문집에 쓴 글. 아래 내용은 담임 교사가 적어놓은 글임. 윤근혁

"현관 놔두고 '쪽문'으로만 다녀야 하는 아이들"

<오마이뉴스>가 3월 28일자로 보도한 기사 제목이다. "서울 ㅅ초를 비롯하여 서울, 경기, 부산 등 상당수 학교에 중앙현관 통행 관행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린 내용이었다.

이 보도 뒤 서울 강서교육청과 서울시교육청은 ㅅ초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시교육청 한 장학관은 이 학교를 불시에 방문하기도 했다.

결국 이 학교 김아무개 교장은 보도된 지 3일쯤 뒤 부장회의를 소집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교사들에게 통보하도록 했다. 

"학생들의 중앙현관과 1층 복도는 등·하교 시와 체육수업에도 이용 가능. 도서관 등을 이용할 경우에도 1층 복도를 이용할 수 있음. 현관과 복도 통행할 때 안전사고에 유의하기 위한 정숙지도를 바람."

조건을 달고 제한을 둔 뒤에야 통행금지 지시를 일부 해제한 셈이다. 이 학교에 근무중인 한 교사는 "지난해(2010년) 교사들이 건의했을 때에는 묵묵부답이더니 이번에 통행금지를 풀게 되어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결 과정의 씁쓸함은 남아 있다. 중앙현관과 1층 복도 통행을 교장이 가로막거나 조건을 달아 제한을 풀 문제인지 의문인 것이다. 교장과 교사 눈치를 보며 통행을 해야 하는 학생들. 이들이 과연 학교의 주인, 나아가 사회의 주인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서울시교육청 중견 관리는 "교장회의 등을 통해 다른 학교에서도 중앙현관 통행금지 관행을 없애도록 지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보도가 되지 않은 다른 시·도교육청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니 비슷한 노력을 해주기를 바란다.

끝으로 한마디만 하자.

"교원들이여, 학생들의 앞길을 막지 말라."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냅니다.
#중앙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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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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