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토피가 발병하면 피부가 붉게 부풀어오르고 발진, 가려움증, 진물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키우미 한의원
몸으로 들어오는 '이물질'을 막아야 한다 일단 상식으로부터 출발했다. 면역계 질환이라면 몸이 외부의 자극에 대응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우선 몸에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부터 막아야겠다고 판단했다. 자연에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가공'을 거친 음식들은 철저히 피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먹일 수 있는 것보다 먹이지 말아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음식이 곧 약'이며 '아예 안 먹거나 많이 먹어서 문제지, 적게 먹어서는 절대 탈 안 난다'는 말을 믿기로 했다. 비닐과 캔 등으로 포장된 가공 음식들이 하나둘씩 빠진 냉장고에는 다른 좋은 것들이 채워지기는커녕 휑하니 비워져갔다. 유기농에다 아토피 특효라는 값비싼 건강식을 대신 채워놓고 나름 꾸준히 먹여보았지만 그 효과는 역시 '마음의 위로'에 그쳤기 때문이다.
얼마 안 가 아이는 스스로 음식을 가리기 시작했다. 어떤 걸 먹어야 편한지 음식에 대한 제 몸의 반응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 독한 약을 먹어야 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지만, 가려 먹고, 더욱이 적게 먹어도 별 문제는 없었다. 여섯 살이던 그 즈음, 아이는 우유도, 각종 음료도, 과자나 피자도 스스로 끊었다. 그런 것들이 좋지 않다고 해서 못 먹게 한 게 아니라, 스스로 몸에 맞지 않다는 것을 느껴 끊은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질병이 호전되지는 않았다. 다만 그러한 '상식적'인 노력은 전국의 병원과 약국을 전전하고, 온갖 좋다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수고와 경제적 부담을 크게 완화해주었고, 굳은 다짐은 적잖이 마음의 위로가 됐다. 이제 면역력과 체력을 키워줄 차례였다. 지극히 단순한 생각이지만, 면역력은 손 씻고 이 닦는 습관에서부터, 체력은 먹는 것보다 몸을 써서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여겼다.
"손 씻고 이 닦자", 가훈처럼 붙여놓고... '손 씻고 이 닦자', 이 여섯 글자를 집 안 곳곳에 가훈처럼 붙여놓고 수시로 읽도록 했다. 식사 후는 물론, 과일 하나 먹고 나서도 곧장 칫솔을 들게 했고, 엘리베이터 층 단추 누른 것만으로도 비누로 손을 씻게 할 정도로 유난을 떨었다. 그렇잖아도 몸이 아픈 애에게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 심지어 회초리를 든 적도 있었다.
그와 함께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탔고, 걷고 뛰었다. 또래 아이들 영어, 수학, 미술 학원 등록할 때, 자전거와 축구공과 야구 글러브를 사주었다. 그리고는 주말이고 평일이고 늘 아빠와 함께 놀았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산책을 했고, 여름에는 퇴근 후 아파트 놀이터와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와 야구를 했다. 아이의 살갗만 보면 지치거나 싫증을 낼 수 없었다.
그러다 운동과 놀이에도 나름의 목표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아토피 완치'라는 허황된(?) 꿈은 꾸지 않았다. 순간순간 아이가 체력이 시나브로 좋아지고 있음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족했다. 남들 흔히 하는 것이 아니라면 금상첨화라 생각했다. 일곱 살 유치원생 아이의 지리산 종주의 꿈은 그렇게 실현됐다.
아이에게는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만큼 힘든 일이었지만, 놀랍게도 대피소에서 씻지도 못하고 쪽잠을 자면서도 살갗을 긁지 않았다. 가려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피곤해서였을까. 아이는 걸을 때도 쉴 때도 가렵지 않다고 했다. 산행을 하며 살갗이 베이고 찢겨 피가 나기도 했지만, 어찌 긁어 생긴 노란 진물에 비하랴. 마냥 기뻤다.
지리산 종주의 기쁨은 백두대간 종주라는 더 큰 꿈을 꾸게 만들었다. 한 달에 한두 번뿐인 구간별 종주이지만, 지리산의 경우처럼 불과 2~3일 만에 달성할 수 있는 목표와는 차원이 다른 '장기 레이스'다. 아이와 함께 지도에 백두대간을 그려가며 완주를 다짐했고, 부모로서는 조심스럽게 아토피를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산행이 계속될수록, 또 함께 뛰어노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아토피는 몰라보게 호전됐다. 짓물렀던 살갗이 점차 회복되었고, 까다롭던 먹성도 덩달아 좋아졌다. 물론, 지금까지도 우유나 탄산음료, 햄버거, 피자 따위는 전혀 입에 대지 않지만, 학교 급식에 나온 닭백숙이나 튀김요리는 물론, 이따금 라면 같은 간식거리는 즐기게 됐다.
불과 몇 년 전의 그 고생을 까마득히 잊은 듯 '이제 그런 음식을 먹어도 별로 가렵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다. 과거에 제 스스로 끊었고, 견딜 만하니 다시 먹는 거겠지 싶어 그다지 간섭을 하지 않는다. 아토피에 관해 산전수전 다 겪은 지금, 아이의 면역력과 체력,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절제력을 믿기 때문이다.
감히 단언하건대, 아토피의 원인도 치료제도 모두 자기의 몸 안에 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치료제를 불로초 찾듯 바깥에서만 얻으려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지금도 아토피 아이를 둔 수많은 가정에서 뜬소문에 혹해 전국 방방곡곡 병원을 찾아다니고 온갖 값비싼 음식을 먹이느라, '특효약'을 사대느라 가계가 휘청거린다.
또, 이렇듯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부모의 심정을 악용해 돈을 벌려드는 얄팍한 상술이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다. 대부분이 부질없는 짓인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 정성을 다하는 그 마음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밤낮으로 긁어대는 아이를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해 봐서 안다'는 식의 거드름으로 비칠까 조심스럽지만, 가공 식품을 아예 멀리하는 것과 마음껏 뛰어놀게 해 체력을 키우는 것, 그리고 부모와 늘 함께 하는 것, 그 이상의 아토피 치료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모 자신도 아토피를 앓고 있다는 마음으로 모든 과정을 함께 해야 한다. 환자가 아닌 의사의 입장이어서는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부모와 늘 함께하는 것이 그 어떤 노력보다 큰 효과가 있다고 자신한다. 과학적인 근거를 대라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아토피 치료에 아이의 정서적 안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구는 오염된 환경이, 또 누구는 과잉 영양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들 하지만, 발병 원인까지는 아닐지라도 아이 주변에서 받게 되는 갖가지 정서적 스트레스가 아토피 치료의 가장 큰 적이라 확신한다. 용한 의사의 '전문적'인 치료보다 부모의 따스한 손길이 경험상 훨씬 더 큰 효과가 있었다.
사족 하나. 눈에 띄게 좋아진 아이의 상태를 보고, 동병상련의 고통을 겪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이런 생뚱맞은 질문을 하곤 한다. "그렇게 아토피 치료한다고 놀기만 하면 나중에 아이가 공부를 못 따라가면 어떻게 해요?" 그냥 씁쓸하게 웃고 말지만, 속으론 이렇게 답변해 주었다.
"아토피가 낫는다는데 공부 뒤처지는 게 대순가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걸 보면, 님께서 겪고 있는 건 고통도 아니에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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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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