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손' 들어 주십시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십니까. 그렇다면 '손' 잡아 주십시오. 저 손학규, 함께 잘 사는 나라, 서민과 중산층이 행복한 나라를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강자독식 사회를 바꿔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보장 받는 나라, 만들겠습니다. 지금 분당에서 시작하겠습니다."
4·27 재보선 성남 분당을에 도전장을 낸 손학규 민주당 후보의 첫 일성이다. 13일간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4일, 그는 차분하고 또 조용하게 첫발을 내디뎠다. 기선잡기 용으로 으레 열리는 출정식도 없었다. 광장유세도 열지 않았다. 다만 '중산층이 행복한 나라'를 강조하는 글을 배포하는 것으로 소박하게 마무리했다.
왜 그랬을까. '조용한 선거'가 전략인가? 손 후보는 이날 오전 6시 30분부터 시작된 일정을 촘촘한 그물망 식으로 소화했다. 단 한 명의 시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 같았다. 가능하다면 모든 분당구민의 손을 다 잡겠다는 태도로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지하철 분당선 미금역 사거리에서 재밌는 액션을 취했다. 어린 시절 사방치기 할 때 이쪽 저쪽 팔짝팔짝 뛰어다니듯 신호등 사이를 건너뛰기 했다. 오른쪽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면 날쌔게 뛰어 그편 시민들과 악수했고, 반대로 왼쪽 신호등이 바뀌면 또 건너가 유권자들의 손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저 손학규예요, 제 인사 좀 받고 가세요"라고 인사를 건넸지만, 한 여성이 "아유 바빠서"라고 달음질치자 그는 함께 뛰며 악수를 나눴다.
선거운동 첫날, 조용히 동분서주한 손학규 후보
선거운동 첫날 손 후보가 동분서주하는 동안 민주당 당직자들은 원거리 지원사격에 나섰다. 손 후보와 함께 명함을 돌리는 몇 명만 "손학규입니다"라고 조용히 말을 건넸을 뿐이다. 이날 손 후보를 돕기 위해 함께 한 민주당 강봉균, 김재윤, 원혜영, 이찬열 의원은 큰소리로 존재감을 알리지 않는 대신 조용히 지켜보다 자리를 떴다.
홀로 각개전투에 나선 손 후보는 지나가는 버스와 택시를 향해서도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손 후보를 발견한 몇몇 택시기사들은 달리던 속도를 늦추며 창문까지 내린 후 인사와 덕담을 나눴다. 젊은 대학생과 40대 직장인들은 "승리하십시오"라고 응원했다.
강재섭 후보와 한나라당이 선거운동 첫날 대규모 지원과 떠들썩한 유세에 나선 것과 상반되는 표정이다. 한나라당에선 '철새', '좌파포퓰리즘', '우리 당에서 장관까지 해먹은 이' 등 별별 소리 다 나왔지만 그는 일언반구 대꾸하지 않았다. 울컥해 한마디 할 법도 한데 참는 것 같았다. 원색적인 말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상대방을 비방하기보다는 분당구민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데만 주력한 것은 보이지 않는 자신감의 발로로 해석된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를 오차범위 이상 앞질렀을 뿐 아니라 당초 예상보다 바닥민심이 나쁘지 않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 선거관계자 입에서는 "잘만 하면 우리가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생각보다 분당 민심이 손 후보에게 나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판단이 깔린 게다.
손학규 후보, 미래 강조하며 '대선후보급' 선거운동
손 후보는 이날 '전 경기도지사 손학규'를 자신을 홍보하는 카드로 썼다. 경기도지사 시절 분당을 IT도시로 만들고자 정자동 '킨스타워'와 '판교테크노밸리'를 조성했다는 게다. 따라서 선거운동 첫날 그가 찾은 지역도 바로 IT기업 밀집 지역이다.
직접 IT기업을 방문한 손 후보는 이 자리에서 게임을 시연해 보기도 했고,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 들기도 했다. IT기업 직원들의 애환도 경청했다. 대선후보 급으로 보폭이 넓은 만남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손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도 "분당에서 대한민국의 변화를 꾀하겠다는 자세로 나는 이번 선거에 임하고 있다"며 "분당을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발전시키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젊은층에게 자신을 어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특히 손 후보는 한나라당 텃밭인 분당에서 반민주당정서를 자극할 필요는 없겠다는 계산을 끝낸 것처럼 행동했다. 민주당을 내세워 MB정권 심판론을 주장한 게 아니라 새로운 변화와 개혁, 새로운 성장 동력을 강조했다.
손 후보의 명함도 민주당을 상징하는 초록색 대신 하얀색으로, 유세지원팀도 모두 하얀색 티셔츠로 통일했다.
이날 강재섭 후보가 손 후보를 일컬어 '철새'라고 네거티브 공세를 했지만 그는 담담하게 대응했다. 그는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선거에 나왔다"며 "이번 선거를 희망을 위한 선거로 치러 나가겠다"고 말했다. 원색적 비난에 동참해 스스로 이번 선거를 흙탕물로 만들지 않겠다는 게다. 미래지향적인 대선후보로 자신의 이미지를 굳히겠다는 전략 같았다.
젊은층은 왜 손학규를 반기나
무엇보다 손 후보는 이날 명확한 타깃 공략층이 있었다. 바로 분당에 거주하는 상용 근로자 9만 7000명 중 IT 업종 종사자 1만 5000명이 그들이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모아 투표참여로 연결짓겠다는 게다.
손 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IT 기업 종사자들의 주 연령층인 20~40대를 겨냥한 일정"이라며 "젊은층 투표참여가 선거의 승패를 가를 주요한 포인트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국민일보>가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 7일~10일 전화번호부 추출을 통한 전화조사(RDD)기법으로 분당 거주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6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손 후보는 20대(50.0%), 30대(65.8%), 40대(61.7%)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젊은 층에서 강세를 보였다. 반면 강 후보는 50대(55.5%), 60대(71.3%)에서 우위를 점했다.
젊은층의 지지를 확보한 손 후보는 전체 지지도에서 49.7%를 얻어 강 후보(43.0%)를 6.7%p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현장에서도 드러났다. 점심식사를 위해 나온 직장인들은 "진짜로 왔다"며 손 후보의 거리 인사를 반겼다. 김성현(37)씨는 "트위터에 올리겠다"며 손 후보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 IT기업 회사원 안세환(31)씨는 "현 정부가 교육적인 부분에서 경쟁력 강화만을 얘기하다보니 내 자식이 너무 힘들 것 같다, 부자 감세 방식도 옳지 않다고 본다"며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한나라당이 너무 눈치가 없다, 민주당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손학규에게 투표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조상현(34)씨 역시 "개인적으로 4대강 사업을 반대하기도 하고 쇠고기 파동을 겪으며 한나라당을 안 좋아하게 돼서 손학규 대표를 찍을 생각"이라며 "비슷한 나이대의 지인들은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손 후보는 "20~30대 뿐 아니라 50~60대, 70~80대 어른들에게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 변화해야 한다'는 의지가 커지고 있음을 몸으로 느낀다"며 자신감을 표했다.
2011.04.15 00:03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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