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5만 명이 살았다는 지하도시

요정의 나라 카파도키아... 자연의 불가사의와 지하도시를 만든 신앙의 힘

등록 2011.04.19 16:26수정 2011.04.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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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 위 열기구가 운치를 더한다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 위 열기구가 운치를 더한다 오문수

인간의 상상력이나 창조력으로 경이를 맛볼 수 있을까. 현대 과학의 힘으로 못할 게 없을 것 같은 교만함도 자연의 힘이나 위대한 모습 앞에 옷자락이 여며진다.

고대 그리스어 아나톨리코스(아나톨레)에서 유래된 아나톨리아는 해가 뜨는 곳, 곧 동쪽이라는 뜻이다. 유럽에서 볼 때 동쪽에 있기 때문이다. 라틴어의 오리엔트나 이탈리아어의 레반트와 같이 동방을 뜻한다. 터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나톨리아 지역의 중앙엔 신이 빚은 지역 카파도키아가 있다.


난쟁이 스머프가 살 법한 버섯나라 카파도키아

일설에 의하면 숲 속 깊은 곳 버섯 집에 모여 사는 파란 난쟁이 스머프들의 이야기에 영감을 준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밑이 하얗고 머리가 뭉툭한 모습은 영락없는 새송이 버섯이다. 한두 개도 아니고 수백 개 버섯 모양의 바위 속에 집이 있거나 교회가 있어 가히 버섯 골이라고나 할까.

 스머프가 사는 집처럼 생긴 버섯 모양의 바위
스머프가 사는 집처럼 생긴 버섯 모양의 바위오문수

 산 전체가 벌집처럼 생긴 우치히사르
산 전체가 벌집처럼 생긴 우치히사르오문수

 낙타바위
낙타바위 오문수

수백만 년 전, 카파도키아의 에르지예스, 하산다아, 귤뤼다아 등 3개의 활화산은 신석기 시대까지 화산활동을 지속했다. 그 시기는 동굴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그림의 흔적으로 알 수 있다.

화산 폭발은 최소한 7천만 년 전인 후기 중신세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은 신제3기 호수 밑으로 가라앉았다. 주 화산에서 분출된 성분으로 형성된 응회암 평원은 활동적이지 않은 화산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했다.

이 응회암 층은 선신세 이후 빗물이나 인근 호수와 강물에 의해 침식돼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계곡으로 흘러들어온 물은 강한 바람과 함께 연약한 용암덩어리를 단단한 지형으로 변화시켜 현재의 원뿔형, 송곳형, 원통형, 버섯머리형, 모자 쓴 형 등으로 만들었다. '요정의 나라'가 된 셈이다.


 동굴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모습. 날카로운 연장으로 내부에서 계단을 만들어 올라갔다.
동굴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모습. 날카로운 연장으로 내부에서 계단을 만들어 올라갔다. 오문수
 동굴 내부에 교회를 만들고 예수의 초상을 그렸다
동굴 내부에 교회를 만들고 예수의 초상을 그렸다오문수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카파도키아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실크로드 등 중요한 무역로가 사방에서 이곳을 지나갔다. 카파도키아의 교역품과 자원은 좋은 전리품이 됐기 때문에 이곳은 잦은 침공을 받아 수시로 점령당하거나 약탈당했다.

이곳 사람들은 약탈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동굴 속으로 들어가 생활하면서 침략자들이 알아 챌 수 없도록 동굴 입구를 잘 숨겨 놓았다. 지하생활이 장기화되면서 지하도시가 생겨났다. 지하도시에는 샘이나 음식 보관창고, 양조장, 교회 등이 있었는데 기독교시대 이전 것도 있다.


초기 기독교시대인 1세기 초 박해를 피해 로마를 빠져 나온 일부 기독교도들은 피난처를 찾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카파도키아의 황야로 도망쳤다. 네로 황제가 재임하던 AD 64년에 발생한 대(大)화재 사건은 기독교 역사에 잊을 수 없는 분기점이 되었다. 네로황제는 로마 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린 후 극심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카파도키아의 중심지는 네브쉐히르이다. 인구가 6만 명밖에 안 되는 이 도시는 해발 1260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비잔틴제국 시대에는 '니사'라고 불렸다. 네브쉐히르에서 동쪽으로 10㎞ 가면 우치히사르가 나온다. 산 전체가 온통 터널과 집으로 벌집처럼 연결된 천혜의 요새다. 이곳은 히타이트 제국 때부터 성으로 쓰였고, 비잔틴 제국 때는 이슬람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한 중요한 요새였다.

괴레메에서 북쪽으로 2㎞쯤 가면 파샤바가 있다. 이곳은 기기묘묘한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있어 마치 스머프 마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계곡 구석구석까지 들어선 기념품점과 호객행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저녁을 일찍 먹고 호텔 인근의 카파도키아 동굴과 버섯 모양의 바위들을 손으로 만져봤다. 손쉽게 부스러지는 것은 기본이요, 심한 것은 파낸 동굴 집이 완전히 반쪽으로 갈라지기도 했다. 이렇게 가공이 수월한 상태여서 동굴을 파냈지, 우리나라 화강암 같으면 어림없는 얘기다.

종교 박해와 외적을 피해 숨어살던 지하도시 데린쿠유

카파도키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지하도시다. 학자들은 이곳에 200개에 달하는 지하도시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지하 도시들이 지하터널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하도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도시는 데린쿠유다.

 데린쿠유에 있는 지하도시 교회
데린쿠유에 있는 지하도시 교회 오문수

 미로와 같은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잘못하면 길을 잃기도 한다
미로와 같은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잘못하면 길을 잃기도 한다오문수

데린쿠유는 네브쉐히르에서 29㎞쯤 떨어져 있다. 총 11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지하도시는 지하 85m에 이른다. 이곳에서 히타이트 제국의 유물과 사자상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실제로 지하도시가 들어선 것은 기원전 7~8세기인 프리기아 왕국 때로 추정된다. 로마시대에는 기독교도들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 이곳을 피난처로 삼았다.

페르시아와 이슬람의 침입이 잦던 5세기부터 10세기까지 데린쿠유가 크게 확장되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보는 지하도시의 모습은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평소 지상에서 생활하다가 외적의 침입을 받으면 최대 5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는 지하도시로 피신했다.

 적이 지하도시에 침입할 경우에  사용하는 봉쇄용 돌
적이 지하도시에 침입할 경우에 사용하는 봉쇄용 돌오문수

 데린쿠유 지하동굴 내에 있는 우물. 장기체류가 가능하다
데린쿠유 지하동굴 내에 있는 우물. 장기체류가 가능하다오문수

비상시에는 무게가 200~500kg에 달하는 커다란 돌 비상문도 있다. 이 지하도시에는 수량이 풍부한 깊이 30m의 우물이 있어 장기체류가 가능했다. 동굴의 환기는 여러 개의 수직갱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런 모든 조치에도 적군이 지하 도시로 들어올 경우에는 터널을 통해 다른 지하 도시로 도망칠 수도 있었다. 데린쿠유에는 교회와 주거를 위한 방, 외양간, 부엌, 식품저장고, 포도주저장고와 휴식공간처럼 일상생활에 필요한 온갖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신이 만든 자연에 경의를 표하며 믿음을 위해 지하에 엄청난 도시를 건설한 기독교인들의 상상력이 놀랍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전남교육' 및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희망제작소'와 '전남교육' 및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카파도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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