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내부에 교회를 만들고 예수의 초상을 그렸다
오문수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카파도키아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실크로드 등 중요한 무역로가 사방에서 이곳을 지나갔다. 카파도키아의 교역품과 자원은 좋은 전리품이 됐기 때문에 이곳은 잦은 침공을 받아 수시로 점령당하거나 약탈당했다.
이곳 사람들은 약탈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동굴 속으로 들어가 생활하면서 침략자들이 알아 챌 수 없도록 동굴 입구를 잘 숨겨 놓았다. 지하생활이 장기화되면서 지하도시가 생겨났다. 지하도시에는 샘이나 음식 보관창고, 양조장, 교회 등이 있었는데 기독교시대 이전 것도 있다.
초기 기독교시대인 1세기 초 박해를 피해 로마를 빠져 나온 일부 기독교도들은 피난처를 찾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카파도키아의 황야로 도망쳤다. 네로 황제가 재임하던 AD 64년에 발생한 대(大)화재 사건은 기독교 역사에 잊을 수 없는 분기점이 되었다. 네로황제는 로마 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린 후 극심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카파도키아의 중심지는 네브쉐히르이다. 인구가 6만 명밖에 안 되는 이 도시는 해발 1260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비잔틴제국 시대에는 '니사'라고 불렸다. 네브쉐히르에서 동쪽으로 10㎞ 가면 우치히사르가 나온다. 산 전체가 온통 터널과 집으로 벌집처럼 연결된 천혜의 요새다. 이곳은 히타이트 제국 때부터 성으로 쓰였고, 비잔틴 제국 때는 이슬람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한 중요한 요새였다.
괴레메에서 북쪽으로 2㎞쯤 가면 파샤바가 있다. 이곳은 기기묘묘한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있어 마치 스머프 마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계곡 구석구석까지 들어선 기념품점과 호객행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저녁을 일찍 먹고 호텔 인근의 카파도키아 동굴과 버섯 모양의 바위들을 손으로 만져봤다. 손쉽게 부스러지는 것은 기본이요, 심한 것은 파낸 동굴 집이 완전히 반쪽으로 갈라지기도 했다. 이렇게 가공이 수월한 상태여서 동굴을 파냈지, 우리나라 화강암 같으면 어림없는 얘기다.
종교 박해와 외적을 피해 숨어살던 지하도시 데린쿠유카파도키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지하도시다. 학자들은 이곳에 200개에 달하는 지하도시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지하 도시들이 지하터널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하도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도시는 데린쿠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