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 한 권 손수 미소로 건네는 빅판.
양태훈
판매를 하는 중간 중간, 빅판은 화단 아래에 걸어놓은 이전 판 표지 그림들이 비뚤어지지는 않았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러더니 "아, 맞다. 어제 독자 한 분이 이거, 엠마 왓슨이 나온 판을 구입하겠다고 주문하고 갔어요"라고 말했다. 때마침 신기하게도 그 판을 주문한 사람이 나타났다.
"엠마 왓슨을 너무 좋아해서 구입했죠. 여태까지 <빅이슈>는 4부 정도 사 본 것 같아요. 처음에 인터넷에서 접하게 됐는데, 커피 한 잔 덜 마시면 충분히 살 수 있어서 한 잔 양보하고 <빅이슈>를 택했죠. 잡지 내용도 재밌게 잘 보고 있는데, 조금 얇아서 양이 아쉬워요"라고 말하는 대학원생 김가람(26)씨.
빅판은 이런 게 하나씩 쌓아가는 자신만의 '노하우'라고 슬쩍 귀띔해줬다.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서 지난 호 브로마이드를 준비해놓고 따로 주문받아서 다음 날 갖다 준다는 것이다. 빅판은 장난스럽게 "나름 노하우라서 공개되면 안 되는데…"라면서도 쉬쉬하지는 않았다.
"음, 주문판매라고 해야 하나? 독자들이 원하는 이전 호가 있을 수 있으니까 주문을 받는 거죠. 내일 틀림없이 갖다 놓겠다고 한 건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건 분명 독자와 나와의 보이지 않는 '약속'이니까요."그는 잡지를 건넬 때도 독자들이 보는 방향으로 건네야 한다며 빅돔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빅판은 지금 있는 자리에서, 독자들과 오랜 관계를 맺기 위해 작은 것 하나부터 신경 쓰고 있다.
"이렇게 깨끗한데... 노숙인 맞아요?"빅판을 하면서부터 그의 아침은 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아, 일 나가야지. 장사해야지'란다. 저녁에도 잠을 청하기 전에, '이제 자고 일어나면 일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잠이 든다고 했다.
"노숙할 때는 서울역 같은 곳에서 추위에 쫓기며 쪽잠을 자고, 아침 첫차로 오이도나 도봉산을 갔다 오면 밥이나 찾아먹으러 가고,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죠. 별 의미가 없었지. 하지만 이제는 근로의욕이랄까, 일을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요. 판매를 시작하면서 고시원에 들어갔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됐죠. 수익으로 고시원비를 내고, 반찬을 사 먹고, 저축까지 하면서 내 생활을 즐겁게 만드는 거죠."하지만, 빅판 일이 늘 웃을 수 있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란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스치는 말 한마디가 때로는 상처가 되어 돌아온 적도 있다.
"빅판을 시작하고, 며칠 간격으로 두 분이 제게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이렇게 깨끗하게 하고 있는데 노숙인이 맞느냐'고요. 그걸 듣고, '깔끔하게 하고 있는 것도 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숙인이니까 지저분하게만 하고 있어야 하나요? 장사를 하려면 당연히 깔끔해야지 않겠어요?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고 있어야 되냐고 상대방에게 물었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