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정상에서 행복해 하는 동문과 가족들
이경모
제주항에서 출발할 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점심 먹는 시간까지 재촉했다. 늦어도 4시까지는 관음사입구로 하산을 해야 한다. 아직 녹지 않는 눈길에 정상까지 오면서 지친 애들을 데리고 시간 안에 내려간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12시 10분. 하산시작. 1㎞ 지점까지는 애들이 잘 내려왔다. 그런데 눈길이 시작되면서 하산 길은 점점 더디어만 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예상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엄마, 나 업어줘."
6살 철주다. 정상에 오르면서도 걷다가 업기를 반복하면서 올랐다고 한다. 이것은 욕심이고 과욕이고 무지다. 아니 한라산 등반을 동네 뒷산 오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높은 산은 한 번 오르면 하산하는 시간이 거의 비례하기 때문에 자신 없는 등반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애들에게 무리일 뿐만 아니라. 제주관광을 마치고 관음사 입구에서 기다릴 다른 동문들을 생각하니 참으로 답답했다.
"아저씨가 눈길은 업고가고 눈이 없는 길은 철주가 걸어 가야한다. 그렇게 하면 다 내려가서 아저씨가 아이스크림 사줄게.""네"이 녀석의 눈이 갑자기 빛났다. 그리고는 눈길을 지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잘 걷지 않는가.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쉴 무렵 이번에는 10살, 3학년인 승환이가 길에 주저앉아버린다. 앞에서 손을 잡고 끌어도 보고 100여 미터씩 업어주기도 했다. 산행이 아니라 산악훈련이다.함께 하산을 시작한 선배님과 서로 교대하면서 산행은 계속되었다.
"회장님 저도 더는 못 걷겠어요."12살, 5학년 수빈이다. 애들 아빠들은 가족들의 숙박준비를 해온 큰 베낭을 메고 있어 애들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내 베낭을 애들 엄마한테 주고 베낭 대신 애들을 업거나 손을 잡고 가야만 했다.
"저 계단 끝까지만 업고가면 거기서 부터는 걸어가야 된다.""네, 그런데 회장님 제가 살이 많아 무거워요."초등학생이지만 미안 했나보다. 족히 50㎏ 정도는 됐다. 50여 미터의 가파른 길을 업고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드디어 관음사 도착. 3시 50분이다. 빠듯하게 배 시간에 맞춰 제주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깊고 높은 산은 섣불리 올라서는 안 된다. 만약 하산 중에 비를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저체온증이 생겼을 때는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광주에 도착했다.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들에는 즐겁고 신나는 모습만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행이라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일탈이다. 아니 잠시 탈출이다. 여행지에서 가만히 지금의 삶을 뒤돌아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거기서 충만한 에너지를 담아온다. 그것이 여행이다.
"아빠 다시는 한라산에 안 가."힘들었지만 끝까지 참고 내려온 10살, 나연이다. 한라산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고통을 견뎌낸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경험이었을 게다. 특히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자랄 철주의 모습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