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아프지 않을게요!

[공모-불효자] 암 걸린 딸 지켜보던 어머니, 찢어지는 마음 몰랐습니다

등록 2011.04.25 14:07수정 2011.04.2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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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며칠 전에 받은 정기검진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외출 준비를 하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방긋 미소를 지어본다.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도 외워본다. 그냥 밝은 마음으로 무겁지 않게 병원에 가고 싶었다. 


예약이 이른 시간이라 아침 일찍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7년 동안 거르지 않고 6개월에 한 번씩 있는 일이지만, 결과를 보러 가는 날은 한결같이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직까지 결과가 좋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아무 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불안하고 사실 두렵고 무섭다.

몰랐습니다... 곁에서 딸의 유방암 소식 들은 어머니의 찢어지는 가슴

a 주차장에서 본 병원 다시는 가고싶지 않은 병원 전경

주차장에서 본 병원 다시는 가고싶지 않은 병원 전경 ⓒ 김미영

지금은 9살이 된, 여름이의 첫 돌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남편은 내 오른쪽 가슴에서 단단하다 못해 딱딱한 혹이 만져진다고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생리를 하기 전후에 간혹 단단한 혹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은 당장 병원을 가 보자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며칠 후에나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동네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산부인과를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하더니, 조직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결과는 일주일 정도 지나야 나온다고 했다. 바쁜 하루하루를 지내느라 병원의 결과 나오는 날짜를 놓치고 말았다. 참 친절하게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으니 당장 결과를 보러 나오라는 전화였다. 나는 결과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정말 친절한 병원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받은 다음 날, 남편과 여름이를 돌봐주고 계신 친정엄마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남편은 여름이와 로비에서 기다리고 난 엄마와 함께 의사를 만나러 들어갔다. 의사는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음… 일단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저희 병원에서는 수술을 할 수가 없어서 제가 소견서를 써 드릴 테니 다른 병원으로 가보세요."

뜬금없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예? 다른 병원으로 가라구요? 꼭 수술을 해야 하나 보죠?"

옆에 있던 엄마도 물으셨다.

"아니, 무슨 병인데요?"
"그러니까, 종양이 있어요. 종양에는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이 종양은 수술을 꼭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 종양이 어떤 종양이냐구요. 혹시, 암인가요?"
"아니, 암이라고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구요…. 아무튼 빨리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제가 소견서와 검사 결과를 드릴 테니 얼른 다른 병원으로 가 보세요."

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수술을 해야 하는 종양이고, 이 병원은 규모가 작아서 수술을 할 수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는 걸로 이해했다. 그리고 몰랐다. 마음속으로 엄마가 얼마나 가슴을 졸이고 계셨는지.

로비로 내려오니, 남편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내가 받아온 서류를 그대로 들고 의사에게 다시 올라갔다. 오래 되지 않아 남편이 내려왔고, 병원 한켠으로 가더니 여기저기 선배들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는, 소개를 받았다며 종합병원으로 지금 당장 가자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운데 그때까지도 난 심각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길로 종합병원으로 갔고, 종합병원 담당의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유방암'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그렇게 진단을 받았을 때, 북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엉엉 울던데, 난 의사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의사 역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 주었다. "수술하셔야죠"라고.

의사의 요구대로 바로 입원 수속을 했고, 며칠 후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또 몰랐다. 곁에서 이 모든 사실을 지켜보고 계시던 엄마의 찢어지는 마음을.

압니다, "별일 없을 거다"라는 말... 어머니 자신에게 한 위안

a 유방.내분비 암센터 내가 6개월에 한 번씩 들러 건강검진을 받는 곳이다.

유방.내분비 암센터 내가 6개월에 한 번씩 들러 건강검진을 받는 곳이다. ⓒ 김미영

며칠 후. 수술날짜가 되었다. 수술실로 향하는 내 마음은 그리 떨리지 않았다. 내 손을 잡고 계신 엄마의 손이 떨릴 뿐이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엄마는 내가 수술실로 들어간 직후부터 수술을 다 받고 나올 때까지 울고 계셨다고 한다.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서 눈을 뜨니 그제서야 수술이 실감난다. 여전히 엄마는 내 곁에 계셨다.  그리고 수술이 아주 잘 되었으며 금방 나을 거라고 위로해 주셨다.

다행스럽게 수술은 정말 잘 되었고, 그 후로 나는 수술과 상관없이 여섯 번의 항암치료와 서른세 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했다.

바로 옆에서 여름이를 돌봐주시던 엄마는 항암치료로 고통스러워하며 토악질을 하던 나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셨고, 이른 아침 세수도 하지 못하고 병원에 가서 방사선 치료를 하며 힘들어하던 모습도 고스란히 지켜보셨다. 그리고 고통스럽던 나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셔야 했다. 엄마가 겪으셨을 그 아픔과 고통은 아마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일 것이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이 흘렀다. 병원 정기검진을 받는 날이면 엄마는 늘 나보다 더 걱정이시다.  별일 없을 거라며 나에게 위안을 주시지만, 그것이 당신 스스로 자신에게 하는 위안이란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평생 엄마에게 지울 수 없는 불효를 저질렀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이상 없다"는 말에 나보다 기뻐하는 어머니... 왈칵 눈물이

이번 정기검진 결과 역시, 별 이상 없다. 굿이다. 엄마는 나보다 더 기뻐하신다. 왈칵 눈물이 난다. 제대로 엄마에게 효도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불효를 저지르고 있으니 참 가슴이 아플 뿐이다.

"뭐, 크게 이상이 없네요. 몸 관리 잘하고 계시죠? 6개월 후에 또 봅시다."

의사의 경쾌한 말. 내가 그리고 아마 우리 엄마가 병원에서 제일 듣기 좋아하는 말, 그리고 듣고 싶은 말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제가 제일 불효자입니다' 응모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제가 제일 불효자입니다' 응모글입니다.
#유방암 #엄마 #정기검진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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