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8시에도 환한 초등교실... 위험한 보충수업

[현장] 논산 ㅅ초교, 창의경영학교 예산으로 일제고사 대비 야간 수업

등록 2011.04.25 10:46수정 2011.04.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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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고사 대비 야간 수업을 하고 있는 논산 ㅅ초의 6학년 교실. 시간은 18일 오후 7시 30분쯤이다.
일제고사 대비 야간 수업을 하고 있는 논산 ㅅ초의 6학년 교실. 시간은 18일 오후 7시 30분쯤이다. 윤근혁
일제고사 대비 야간 수업을 하고 있는 논산 ㅅ초의 6학년 교실. 시간은 18일 오후 7시 30분쯤이다. ⓒ 윤근혁

 

'강의 햇살'이라는 뜻을 가진 충남 논산시 강경(江景)읍. 이곳에 있는 13살 어린이들은 동네 어귀 '금강의 따뜻한 햇살'도 보지 못한 채 날마다 오후 8시까지 야간 보충수업을 받고 있었다.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뽑아내려는 어른들의 강경(强硬)한 욕심 때문이다.

 

18일 오후 7시 50분. 이 지역 ㅅ초 본관 2층에 있는 6학년 1반과 옆에 붙은 특별교실엔 형광등 불빛이 흔들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6학년 교실에서는 영어수업을, 특별실에서는 국어수업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학교에서 채용한 강사들이 야간 수업을 벌이는 것이다. 책상에 머리를 쳐 박고 자는 학생, 일어서서 돌아다니는 학생이 보였다. 이 학교 6학년생 30명 전원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창의경영'이 야간 보충수업?

 

"국가에서 돈을 대준다고 의무적으로 해야 한대요. 6교시 끝나고 집에 가고 싶지만 빠지면 절대 안 된대요."

 

이날 오후 8시 10분 '고단한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던 6학년 남자 학생의 말이다. '강제' 보충수업을 마친 학생 25명(5명은 교사들이 태워다 줌)은 깜깜한 학교 앞 신작로를 고함을 치며 내달렸다. "악~" 하는 여학생들의 비명소리도 들렸다.

 

 오후 7시 33분, 야간 수업을 위해 6학년 교실 복도 형광등이 환하다.
오후 7시 33분, 야간 수업을 위해 6학년 교실 복도 형광등이 환하다. 윤근혁
오후 7시 33분, 야간 수업을 위해 6학년 교실 복도 형광등이 환하다. ⓒ 윤근혁

이 학교의 보충수업은 지난 4월 4일부터 시작됐다. 7월 12일 일제고사를 보기 하루 전인 11일까지 월화목금 일주일에 4일을 꼬박 오후 8시까지 공부시킬 계획이다. 과목은 일제고사에 '올인'하기 위해 국영수로만 잡았다고 한다.

 

이 학교 황아무개 교감은 "돈을 20만 원 이상 내고 학원에 다니던 학생들을 저녁을 주면서 학업성취도 대비 공부를 공짜로 시켜주니까 학부모들이 모두 동의하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골 동네라 금강의 경치 같은 건 구경할 것도 없고 현장학습으로 다 한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벤또' 싸갖고 다니면서 밤 12시까지 공부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학생들의 말은 달랐다. "국가에서 돈을 대주니까 의무 참석해야 한다"고 학교에서 강제 보충수업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학교가 야간 보충수업을 시킬 수 있게 된 것은 올해 교과부가 이 학교를 창의경영학교로 지정하고 예산 6700만 원을 지원했기 때문. '창의경영'의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 야간 보충수업인 셈이다.

 

교과부는 올해 2월 발표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기본계획에서 "평가대비 문제풀이와 과도한 학습부담을 유발하는 등 교육과정 파행운영에 대해 교육청 차원의 감독을 강화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학교의 경우는 교과부 스스로 돈을 대주며 교육과정 파행을 조장한 셈이 되었다.

 

위험한 야간 수업 만든 교과부 돈..."아동학대"

 

 시계가 오후 7시 21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각, 이 학교 6학년 교실에선 야간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계가 오후 7시 21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각, 이 학교 6학년 교실에선 야간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윤근혁
시계가 오후 7시 21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각, 이 학교 6학년 교실에선 야간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 윤근혁

 

교과부는 이 학교를 비롯하여 전국 2600여 개 초중고를 창의경영학교로 지정하고 학력향상형, 사교육절감형 등으로 구분한 뒤 예산 1505억 원을 대줬다. 문제가 된 논산지역엔 10개 학교가 지정되었는데 이들 학교 가운데 상당수가 "일제고사 대비 보충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게 이 지역 교사와 학부모의 공통된 증언이다.

 

논산교육지원청 관계자는 "교과부가 권장하는 돌봄 프로그램이라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이들의 이상한 돌봄(?)은 국영수 등 일제고사 과목을 올 일제고사 날인 7월 12일 하루 전까지만 가르치고 '돌봄 행위'를 멈춘다는 데 한계가 있다.

 

교육청의 방조 속에 국민혈세로 일제고사 대비 보충수업을 하고, 이런 현상은 학생들의 육체와 정신 건강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과부 창의경영학교지원팀 중견관리는 "시험 대비 강제 보충수업 방식으로 창의경영학교 예산을 쓰는 것은 사교육을 줄이고 학력향상을 추구하는 당초 취지와 어긋난다"면서 "학생의 심신건강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장학지도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병 주고 약 주는 행동'이 될 것인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교과부 돈으로 초등학생 야간 강제 보충수업이 진행된 사실에 대해 의견을 듣기 위해 기자가 페이스북에 일부 내용을 소개하자 인천의 한 고교  아무개 교사는 "아동 학대"라고 했고, 서울의 한 초교 김아무개 교사는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는 댓글을 달았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일제고사 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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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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