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20분부터 수학문제 푸는 초딩 "아침도 못 먹어요"

[현장] 충북 제천시 ㅇ초, 일제고사 대비 0 교시 논란

등록 2011.05.06 15:37수정 2011.05.0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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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충북 제천에 있는 o초. 사진에 표시된 시각이 오전 8시 02분을 가리키고 있는 가운데 이 학교 6학년 생들이 '0교시 보충'에 참가하기 위해 교실로 들어가고 있다.
지난 2일 충북 제천에 있는 o초. 사진에 표시된 시각이 오전 8시 02분을 가리키고 있는 가운데 이 학교 6학년 생들이 '0교시 보충'에 참가하기 위해 교실로 들어가고 있다. 윤근혁
지난 2일 충북 제천에 있는 o초. 사진에 표시된 시각이 오전 8시 02분을 가리키고 있는 가운데 이 학교 6학년 생들이 '0교시 보충'에 참가하기 위해 교실로 들어가고 있다. ⓒ 윤근혁

어린이날을 3일 앞둔 지난 2일 오전 7시 40분, 충북 제천시에 있는 O초 정문. 오전 8시 10분까지 30분 사이에 6학년 학생들 150여 명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삼각 김밥을 먹고 오는 아이, 덜 깬 잠 탓에 눈을 비비는 아이들이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들어섰다.

 

8시 20분부터 문제풀이... "아침 못 먹었어요"

 

이날 아침 20여 명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만났더니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반이 29명인데 2명 빼고 모두 0교시 보충수업 참가해요."
"아침 못 먹었어요."
"8시 20분부터 수학 문제를 쭉 풀어야 해요."

 

6학년 교실 앞 복도에 다가가 보니 이날 0교시 수업은 독서였다. 월요 조회 때문이다. 하지만 "화수목금 4일은 문제풀이를 꼬박하고 있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학교 관계자는 0교시 수업의 내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여러 영역에 대한 보충학습을 하고 있다"고만 밝힐 뿐 과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학생들의 말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이 배우는 내용은 오는 7월 12일 치르는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과목인 국영수로 보인다.

 

이 학교가 무척 별스런 0교시 수업과 7, 8교시 보충수업을 시작한 때는 지난 3월 28일부터다. 이 학교가 지난 3월 23일자 6학년 학부모들에게 보낸 가정통신문 '특별보충수업 운영 안내문'을 보면 끝나는 날은 일제고사 하루 전인 7월 11일까지다. 학교 쪽에서는 통신문에서 "기초학력 부진학생들을 위한 특별보충과정"이라고 적었지만 일제고사 대비 보충수업인 셈이다.

 

 ㅇ초가 학부모들에게 보낸 가정통신문.
ㅇ초가 학부모들에게 보낸 가정통신문. 윤근혁
ㅇ초가 학부모들에게 보낸 가정통신문. ⓒ 윤근혁

이 학교는 통신문에서 "기초학력을 향상시키고 학습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학력신장 특별보충과정을 운영하고자 한다"면서 "불희망시 뒷면 계획서를 작성 제출"이라고 적었다. 사실상 0교시와 보충수업 참여를 강제하는 글귀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o초 교감 "가정통신문 담당자 실수...'방과후학교'일 뿐"

 

이 통신문에 대해 김아무개 교감은 "가정통신문 내용은 담당자가 잘못 보낸 것"이라면서 "학부모와 어린이 희망에 따라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0교시가 아니라 나머지 공부와 비슷한 '방과후학교'"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0교시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참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학교 쪽 관계자가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기초가 부족하지 않은 학생도 함께 공부하도록 한 것"이라고 해명한 점에 비춰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일제고사에서 시험 감독 부정행위가 일어난 곳은 바로 이곳 제천. 이 지역 한 초등학교 교감이 학생들에게 정답을 알려줘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교사 3명은 견책 처분됐다.

 

"제천지역 초등학교 6곳, 중학교 5곳이 0교시 또는 7, 8교시 보충수업"

 

전교조 충북 제천단양지회는 지난 3일 오후 5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단체는 0교시 또는 7, 8교시 보충수업을 하는 제천지역 초등학교가 6곳, 중학교는 5곳이라고 주장했다. 초등학교 전체 24개 가운데 9개교, 중학교 전체 9개교 가운데 5개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김창훈 지회장은 "교과부가 일제고사 대비 교육과정 파행에 대해서는 특별 점검을 한다고 발표했는데도 제천교육지원청은 일선 학교의 파행을 묵인하거나 학교 평가 지표로 '방과후학교 참여 실적'을 넣는 방식으로 파행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습 부진아를 전국 단위 시험을 통해 알아낸 뒤 이들의 학력을 높이겠다'는 게 교과부가 일제고사를 시행하는 취지다.

 

제천교육지원청이 소속해 있는 충북교육청은 지지난해와 지난해 일제고사에서 2년 연속 전국 1등을 기록한 바 있다. o초와 같이 사실상 전교생을 대상으로 0교시와 방과후 보충수업을 강행하는 학교가 있는 한 충북교육청은 올해도 1등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교육청의 1등은 학생들에게 시험 문제풀이 반복교육을 한 결과일 뿐 진정한 의미의 학력 신장은 아니라는 게 주변 교사들의 지적이다. 학생들에게 아픔을 주는 '상처'뿐인 1등인 것이다.

 

 최근 밤 8시까지 야간 보충수업으로 논란이 된 충남 강경 ㅅ초.
최근 밤 8시까지 야간 보충수업으로 논란이 된 충남 강경 ㅅ초. 윤근혁
최근 밤 8시까지 야간 보충수업으로 논란이 된 충남 강경 ㅅ초. ⓒ 윤근혁

초등학생 대상 야간 보충수업 현장이 드러난 뒤 이번에 다시 0교시 현장이 확인됨에 따라 '아동 인권침해' 논란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7월 12일 초6, 중3, 고2 학생 대상 일제고사를 앞두고 벌써부터 교육과정 파행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일제고사 성적 향상도를 학교 성과상여금(성과금) 기준으로 넣고 '방과후학교' 참여도를 학교 평가에 넣기로 하면서 학교 등급을 높게 받기 위해 일부 관리자들이 무한 경쟁에 뛰어든 결과다.

이 같은 현상은 충북, 충남, 인천, 대전 등지에서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모두 보수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이다.

 

지난해 일제고사 하위권이었던 대전교육청은 일제고사 대상학년인 고교 2학년생이 문제풀이를 할 수 있도록 국영수 문제지를 4월 15일부터 7월 1일까지 8차례에 걸쳐 이 지역 61개 고교에 일제히 내려보내기로 해 '교육과정 파행 조장'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오후 8시 야간 보충수업으로 논란이 된 충남 논산의 ㅅ초 말고도 지역 41개 초등학교 6학년 가운데 상당수가 강제 보충수업을 받고 있다고 이 지역 교사들은 입을 모았다. 실제로 지난달 18일 오후 5시 일제고사 표집학교인 이 지역 ㅂ초 6학년 교실에 가보니 담임교사들이 9교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날부터 7월 9일까지 일제고사 과목인 국영수사과에 대해 보충수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보충수업을 받다가 "밖으로 도망 나왔다"는 이 학교 여학생 4명 가운데 한 명은 "7월에 보는 시험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학교 수업 다 받고 또 3시간이나 죽도록 문제풀이만 시키는 것인지 화가 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어른들의 1등 욕심이 어린 학생들을 잡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 쓴 내용의 상당 부분을 깁고 더한 것입니다.  
#일제고사 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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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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