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룽지앙 사람들일요 시장에서 만난 룽지앙 소수민족 사람들
최성수
산의 파노라마룽지앙으로 떠나는 버스는 낡디낡아 굴러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아침 일찍 카이리를 출발한 버스는 창문이 제대로 닫히지도 않았고, 의자도 흔들거려 앉아있기조차 불편했다.
그래도 버스는 안개 자욱한 카이리를 떠나 쉬지 않고 달린다. 시지앙 천호묘채를 가기 위해 지나갔던 길을 따라 달리던 버스가 이윽고 산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좁디좁은 산길은 끝없는 오르막이다. 낡은 버스는 갸르릉 갸르릉 힘겨운 해소 기침을 해대며 산길을 오른다. 올라도 올라도 산은 끝이 없다. 잠시 내려가는 듯 하다가도 이내 다시 오르막이다.
이 산이 레이꽁산(雷公山)이다. 해발 2178미터로 타이지앙(台江), 지엔허(劍河), 룽지앙(榕江) 세 개의 현에 걸쳐있는 구이저우의 명산 중 하나다. 길은 레이꽁산의 험한 산줄기를 따라 이어져 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이어지는 오르막길 옆으로는 천길 벼랑이다. 발 아래로 안개가 짙다. 차가 안개에 묻혀 다른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길은 레이꽁산 거의 상단부에서 능선을 따라 수평으로 나 있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차가 능선을 따라 평지를 가듯 달린다. 곳곳에 눈이 쌓여 있다. 지대가 높다보니, 아래쪽에서는 비가 왔는데 이곳에는 눈이 쌓인 것이다. 눈길에 혹 차가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런 내 마음을 알 바 없다는 듯, 차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마구 달린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너무 차다. 옹송그리고 앉아 추위에 맞서보지만 온 몸이 덜덜 떨린다.
한참 수평으로 달리던 차가 이윽고 아래로 방향을 튼다. 이제부터 길은 내리막길이다. 이 내리막길을 다 내려가면 룽지앙이 있겠지 하며 추위를 견디고 있는데, 웬걸, 한참 내려가던 차가 다시 올라간다. 올라갔다 싶으면 다시 내려오고, 내려왔다가는 다시 올라간다. 올라가고 내려가는 길은 굽이굽이 휘어져있다. 창밖을 보고 있으면, 차창으로 산이 360도 돌아간다. 버스가 굽잇길을 회전하니 바깥 풍경이 저절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군데군데 길을 따라 산간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버스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디좁은 길이 마을 가운데로 나 있다. 장날인지, 산골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다. 길 주위로 상가의 천막이 어지럽다. 도저히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산길을 굽이굽이 지나왔는데, 이렇게 사람들로 길이 막힐 정도니, 그런 마을이 인간의 세상 같지 않게 느껴진다. 인적 하나 없는 산길과 갑자기 나타난 북적거리는 마을의 대조 때문이리라.
차는 산속 깊이 숨어있는 마을들을 몇 개 지나고도 계속 달린다. 역시 굽잇길이다. 또 산을 오르고,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 마침내 제법 번화한 도시에 도착한다. 룽지앙이다. 다섯 시간을 쉬지 않고 빙빙 돌면서 달려온 한 셈이다.
"다섯 시간 돌아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버스를 내리며 내가 중얼거리자 아내가 피식 웃는다. 아마도 돌았다는 말에 춤을 연상했나보다. 너무 돌고 돌아 오다 보니 멀미가 나 속이 메슥거릴 정도다. 그래서일까, 버스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딛는데, 잠시 몸이 휘청 한다. 어디 다른 세상에 도착한 것 같이 아득해진다.
룽지앙, 먼지 자욱한 샹그릴라룽지앙의 첫 인상은 '낡음'이다. 낡음은 과거와 통하고, 세월과 맞닿아 있다. 룽지앙이 낡았다는 것은 그만큼 세월의 흐림에서 빗겨 서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록 최신 유행의 옷을 파는 가게들이 있고, 각종 전자제품이 번듯하게 거리를 장식하고 있지만, 그래도 룽지앙은 오래 된 도시다. 아니, 도시가 아니라 마을이라고 해야 될까?
룽지앙이 '낡음'인 것은 켜켜이 쌓인 먼지 때문이다. 먼지는 룽지앙 곳곳을 돌아다니며 날다가 제 앉고 싶은 곳에 가뿐히 내려앉는다. 그랬다가 또 작은 바람에도 제 몸을 날려 다른 곳으로 옮겨 앉는다. 주변 산에는 나무도 많고 그리 건조해 보이지도 않는데, 대체 이 먼지는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가로수로 심어놓은 용수(榕樹:벵골 보리수나무, 스펑나무) 잎사귀에도 먼지가 자작자작 내려앉아 있다. 이곳에도 비가 오면 저 낡은 풍경들이 새로움으로 다가올까?
오래 전 시안(西安)을 여행할 때였다. 시안은 진시황과 관련된 유적이 즐비한 도시니, 역시 오래 된 곳이다. 그래서일까, 시안 곳곳에도 먼지가 가득했다. 가로수로 심어놓은 버즘나무 넓은 잎에는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먼지가 잔뜩 내려앉아 푸른 잎이 잿빛으로 보일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