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합니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양심적체벌거부를 선언합니다

등록 2011.05.15 11:59수정 2011.05.1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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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체벌거부 선언문

이 선언문은 제가 체벌을 '폭력'으로 인식하게 된 과정과 체벌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 뜻을 세상에 밝힘과 동시에 저 자신을 치유하기 위하기 위한 글이기도 합니다.

1. 피해자의 기억 치유하기

어린 시절부터 저는 숱한 체벌을 당하고 살아왔습니다. 시험을 못쳤다고 집에서 빗자루로 다리에 스무대씩 맞는 것은 물론이고 만화책을 사본다고 해서 기다란 대걸레대로 엎드린 자세로 여러 대 맞아본 적도 있습니다. 부모님은 그것을 '교육'이라고 명명하셨고 때린 뒤에는 늘 저에게 때린 것을 사과하고 어루만져 주시며 '사랑'으로 한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사랑 그 자체를 의심한 적은 없지만, 체벌 덕분에 제가 달라졌거나 행동의 좋은 변화가 일어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빨리 커서 집을 나가야겠다고만 생각한 적이 더 많습니다.

집에서는 많이 맞은 덕분인지 학교에서는 모범생의 위치에서 삶을 시작했습니다. 선생님들은 늘 저를 귀여워해주셨고 칭찬해주었지만, 제가 맞지 않더라도 다른 친구들이 맞는 것을 보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학교'란 공간은 학생들에게 그 시절, 그 순간만큼은 살아남느냐, 살아남지 못하느냐 또는 맞느냐, 맞는 것을 피하느냐로 하루 하루 숨을 몰아쉬게 되는 그런 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범생이었다 한들 체벌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 겪었던 갖은 체벌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체벌은, 교사를 바라보는 눈이 이상하다고 해서 맞은 것입니다. 저는 그냥 단지 바라보았을 뿐인데, 그 선생님은 '너는 왜 선생님을 보는 눈이 반항적이냐'며 머리를 세차게 때렸습니다. 비록 한 대를 맞았을 뿐이지만, 저는 굉장한 모멸감과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어리다고 해서, 학생이라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체벌로 시작된 교사들에 대한 혐오감은 진로를 선택하는 고3시절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유난히도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수치심을 느낄 만한 말로 공격을 하고, 오늘과 같은 스승의 날이면 학생들에게 드러내놓고 값비싼 선물을 요구하는 그런 선생님이셨습니다. 가장 순수하고 세상에 대해서 아름다움과 희망을 배워야 할 어린이와 청소년 시절에 늘 이렇게 일상적으로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당한다는 것은 너무 슬프고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사만큼은 되지 않아야겠다고 이를 악물고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참 사람의 뜻대로 쉽게 되지 않아서, 저는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교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체벌만큼은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의 순진한 착각이라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단, 새내기로 학교에 들어가면 학생들끼리 '선후배 사이의 교육'을 이름으로 '남단'이나 '여단'이라는 행사를 하였습니다. 이는 선배 학생이 후배 학생들에게 신체적 압박을 가하는 여러 가지 일을 시킨 다음 이를 해내도록 요구하고 후에 술로 위로하는 행사였습니다. 어떤 동아리에서는 새내기로 들어오는 학생들을 선배들이 주먹으로 때린 다음에 이를 잘 견디면 역시 술로 위로해주기도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하는 일을, 이제는 성인이 된 학생들이 선배라는 이름으로 후배에게 하는 꼴이었으니 대학 또한 지금까지의 학교와 다르지 않음을, 나아가 이 사회 전체가 폭력에 무감하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학생들 사이의 폭력에 무감한 학생들은 교수가 자신들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역시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대학 재학 중이던 시절, 같은 학년의 학생 한 명이 교수의 책을 사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업 중에 교수에게 여러 차례 구둣발에 차이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비록 그 학생과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그것도 장차 초등교사가 될 예비교사를 기르는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무척 가슴 아픈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때 많은 학생들이 그 일로 가슴아파했지만, 그러나, 대다수의 반응은 '어떻게 학생이 선생님한테 대들 수 있는가'와 '아버지 같은 교수님이니까 무조건 참아야지'였습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짓밟혔는데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목소리도 내서는 안된다는 말일까요? 학생이라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도 무조건 참아야만 '善' 인 걸까요? 제게는 이런 학생들의 반응이 무섭고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학생은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폭력이 정당화되는 사회가 바로 제가 '교육'을 배우는 대학사회였던 것이었습니다.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예비교사들은 임용 후, 현장에 나갔을 때도 체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맞아온 삶을 살아온 것이 당연하듯 자신이 학생을 때리는 것도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2. 가해자의 기억으로 살아가기

같은 동료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맞고 사는 것이 당연한 대학을 다니면서 저는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발언한다든지, 아니면 폭력이 만연한 학교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그 어떤 노력도 한 적이 없는 대학시절이었습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고 방관자적 태도를 취한 저 또한 일상적인 폭력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일조한 또다른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해서야 깨달았습니다. 교수들에게 체벌을 당한 동료 학생들에게 너무나 미안했지만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교수가 더 이상 교편을 잡지 않기를 바라며 탄원서를 내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선생님에 대한 특별한 좋은 기억이 없고, 나아가 체벌이 당연한 학창 시절 20년을 거치고 드디어 공립학교의 교사가 된 저 역시도 이제까지 혐오하면서 살았던 그 교수들과, 그 교사들과 그리 다르지 못했습니다. 회초리를 들어서 학생을 때린 적은 없지만, 화가 나면 머리를 주먹으로 때린다든지 등을 손바닥으로 때리는 일 정도는 생각없이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학생을 때리고 난 순간부터는 며칠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체벌이 폭력일 뿐이며,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깨달음이 저를 쉽게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생각이 바로 실천으로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를 바꾼 것은 바로 학생들이었습니다.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체벌을 차츰 줄여가던 어느 날, 수업 중 교과서 가져오기와 숙제를 연이어서 4일째 하지 않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해부터는 학생의 몸에 손을 댄 적이 없었는데 그날 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싶어 그 학생을 앞으로 불러내 모든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머리에 꿀밤을 세게 한 차례 주었습니다. 꿀밤을 때린 후,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평온하고 즐거웠던 수업 분위기가, 학생들의 눈빛이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한 학생은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 때리실 거예요?"를 먼저 물었습니다. 아, 내가 지금까지 겪어오고 상처받았다고 해서, 똑같은 상처를 이 학생들에게 주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저질러 버린 일은 주워담을 수 없었기에, 학생들에게 다시는 때리지 않겠노라고 사과하는 수밖에 그리고 앞으로는 때리지 않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늘 '피해자'의 입장에 있었지만 이제는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은 사건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만나는 학생들마다 '체벌은 하지 않겠다'고 학생들과 약속합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하지만, 너무 힘들 때는 순간적으로 감정에 휩싸여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 몸에 배인 폭력을 심혈을 기울여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만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교사인 제가 학생들을 때리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때리는 것은 폭력이다, 사람이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맞아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학생들과 공유하자 교실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따돌림과 학생들 간의 일상적인 놀림과 폭력 등을 서로 주고 받으며 살아왔던 학생들이 우리 교실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좋아합니다. 학교에 오는 것이 걱정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교사의 철학과 실천에 따라서 학생들은 학교에 오는 것, 그 자체가 공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정말, 체벌에는 반대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생이 행복해야만 교사가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몇 번이고 다짐하고 다짐한 저이지만, 순간적으로 학생을 때린 적이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그때 그 학생의 눈물을 생각하면, 그 학생을 때린 제 손을 잘라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정말 고맙게도 그 학생은 저를 이해해주고 선생님이 싫지 않다고 말해주었고, 저도 사과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 학생의 마음에 상처를 준 죄가 씻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더 철저히 교사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학생은 '약자'이자 '피해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새기고 나아가 다시 한 번 그 학생에게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이 나의 학생이라는 이유로
당신을 체벌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나는 당신을 포함한 그 어떤 사람에게도 폭력을 가하지 않겠습니다.

교사 박지선은 양심적 체벌 거부를 선언합니다.

2011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한국 스승의 날

참고 : 체벌을 거부하는 교사 모임
http://cafe.naver.com/t4nomorepain
첨부파일
양심적체벌거부.hwp
#양심적체벌거부 #체벌을선언하는교사모임 #체벌 #학생인권 #스승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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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부족해서 공부를 먆이 해야하지만, 앞으로 교육 관련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신자유주의와 관련하여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학교 현장 및 교육 관련 분야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이 묻혀서 소리없이 진행되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낍니다. 또한,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폭력들에 대하여 더이상 눈 감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시민기자를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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