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콩을 고르고 있는 마비스 뱅크 공장 노동자들.
정주진
공장은 있지만 커피를 재배하는 농장은 볼 수 없어 가이드에게 어떻게 커피를 재배하는지 물었다. 가이드는 회사가 농사를 직접 짓지는 않고 주변의 수백 명 소농들에게서 커피 열매를 구입해 가공한다고 했다. 빨갛게 익어 수확한 커피 열매를 소농들이 가져오면 공장에서는 열매를 말리고, 껍질을 벗기고, 콩을 고르고, 그 후 적절히 볶아서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블루마운틴 커피를 만든다. 커피콩을 볶는 이외의 모든 작업이 사람들의 손을 거치게 된다. 이 작은 공장에서는 약 250여 명의 노동자들이 전혀 기계의 도움 없이 커피콩을 나르고 고르고, 그리고 포장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커피 공장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일하고 받는 월급은 200달러(한화 22만 원)라고 했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재차 확인하자 가이드가 그렇다고 했다. 대부분이 여성들인 이들 노동자들이 그 월급을 가지고 어떻게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 공장에서는 2온스(56.69g)의 원두커피를 3달러에, 그리고 8온스(227g)의 원두커피를 8달러에 팔고 있었다. 킹스턴 시내의 슈퍼마켓에서 파는 가격보다도 훨씬 쌌다.
싼 가격에 블루마운틴 커피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 썩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관광객들이 싸게 블루마운틴 커피를 구입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많은 노동자들이 겨우 200달러의 월급을 받고 일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마시는 한 잔의 블루마운틴 커피 속에 누군가의 힘든 노동과 저임금의 부당한 현실이 녹아져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커피를 산 이유는 블루마운틴 커피에 대한 유혹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 한 봉지의 커피를 사는 것이 당장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유지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아주 구차하고 소극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현지인에 의하면 자메이카의 교사나 경찰의 월급은 1800달러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전문직이라도 월급이 적은 직종은 1000달러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1000~1800달러의 월급과 200달러는 너무나 큰 차이였다. 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노동이 돈으로 환산되는 격차가 그렇게 크다는 것은 결국 빈부격차도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빈부격차는 현지인에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시내를 둘러보면서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허름한 좌판에 과일과 음료수를 늘어놓고 하루 종일 뙤약볕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노점상과 킹스턴 중심가의 화려한 가게와 음식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극심한 소비 행태의 간극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관광지가 그렇듯이 자메이카의 물가는 결코 싸지 않다. 킹스턴 중심가에 위치한 한 푸드 코트에서 파는 대부분의 식사용 메뉴는 6~7달러(한화 6600~7700원) 정도로 우리나라 가격과 거의 비슷했다. 후식이나 간식으로 먹는 조각 케이크의 가격은 약 5.6달러(한화 6200원) 정도로 제1세계 여행객조차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작은 컵케이크의 가격도 2달러(한화 2200) 정도로 물가 비싼 한국의 가격에 뒤지지 않았다. 그것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킹스턴에서는 부의 상징일 것 같았다.
킹스턴의 유명한 고택인 데본 하우스 내 아이스크림 가게의 가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는 2스쿠프짜리 아이스크림 가격은 약 8달러(한화 8800원) 정도였다.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 한 번쯤 먹어볼 가치가 있을 만큼 최고의 아이스크림이었지만 이것을 먹을 수 있는 자메이카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니 씁쓸했다. 하지만 비싼 가격에도 저녁 식사 후 이 귀족스런 후식을 먹으려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블루마운틴 커피 공장의 노동자들에게는 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상상을 하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금과 빈부 격차가 심한 상황에서 가난한 자와 부자가 사 먹을 수 있는 음식과 갈 수 있는 곳은 너무나 분명하게 구분됐다. 이런 격차는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지만 자메이카에서는 그것이 결코 넘을 수 없는 너무나 높은 담처럼 보였다.
실업과 저소득으로 힘든 삶을 꾸려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