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스트레스 푸는 성매매... 장려하라?

[현장] 성매매여성 400여명 춘천 집회... "왜 우릴 괴롭히나"

등록 2011.05.31 21:01수정 2011.05.3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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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청앞에서 한터전국연합 주최로 춘천, 서울(영등포, 미아리, 천호동), 파주, 원주, 포항, 평택지역 성매매 여성과 업주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매매업소 단속에 항의하는 집회가 개최되었다. 춘천시는 최근 서울 직통 전철 개통 이후 관광객들이 늘어남에 따라 춘천역 부근 성매매 업소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31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청앞에서 한터전국연합 주최로 춘천, 서울(영등포, 미아리, 천호동), 파주, 원주, 포항, 평택지역 성매매 여성과 업주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매매업소 단속에 항의하는 집회가 개최되었다. 춘천시는 최근 서울 직통 전철 개통 이후 관광객들이 늘어남에 따라 춘천역 부근 성매매 업소를 단속하기 시작했다.권우성

"제 몸을 가지고 일하지만 저도 춘천시민이에요. 다른 일 하고 싶지 않냐고요? 성매매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현재 만족해요. 하지만 솔직히 현실적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어요."

노란 티셔츠에 노란 모자, 체구도 작아 얼핏 보면 정말 어린애같이 보이는 여성은 결국 끝까지 이름과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 모자를 쓴 것도 모자라 짙은 선글라스로 눈을 가렸다. 하얀 마스크 뒤에서 나오는 말소리는 웅얼웅얼 들렸다. 그녀는 춘천역 부근 성매매업소 밀집지역(춘천시 근화동)인 일명 '난초촌'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을 얼마나 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31일 오후 춘천시청 앞에 그녀와 같은 일을 하는 여성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서울 영등포, 미아리, 천호동과 파주, 평택, 원주에 멀리는 포항에서까지 올라왔다. 성매매 종사자들의 연합체 '한터전국연합회'의 주최로 '성매매특별법 개정'과 '단속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다. 지난 17일 영등포에서 있었던 집회에 이어 올해 들어서만 5번째 집단행동이다.

서울 영등포와 마찬가지로 춘천시에서도 최근 성매매 단속이 강화됐다. 춘천시는 지난 2005년 폐쇄된 미군기지(캠프 페이지) 부지와 함께 인근 '난초촌' 일대도 도시계획 구역에 포함시켜 이르면 2012년 말부터 정비 및 개발에 들어갈 방침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 경전철 개통으로 춘천역을 오가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며 해당지역에 대한 민원이 발생해 성매매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뒤편에서 지켜보는 업주들... 집회장에는 여성들만

 집회 장소 주위에서 성매매업소 업주 등 남성 수십명이 모여 집회에 참석한 성매매 여성들을 지켜보고 있다.
집회 장소 주위에서 성매매업소 업주 등 남성 수십명이 모여 집회에 참석한 성매매 여성들을 지켜보고 있다.권우성

집회에 참가한 300여 명의 여성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얼굴을 꽁꽁 싸맸다. 모자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 모양만 달랐다. 무대 앞에 모여 있는 집회 참가자의 대부분은 그런 비슷한 모습의 20~30대 성매매 여성이다.

간혹 얼굴을 드러낸 40~50대 중년 여성들은 업소주변에서 호객행위하는 사람들이다. 그밖에 20~30대 젊은 남성들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는데 일명 '삼촌'으로 불리는 관리인들이다. 이들은 색색이 막대풍선을 들고 "단속을 중단하라", "생존권을 보장하라", "인권을 존중하라", "성매매특별법 폐지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편에는 또 다른 집회참가자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집회 참가자인지, 경찰인지, 지나가는 동네 아저씨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시청 인근 편의점 앞에 주로 모여 있는 30여 명의 사람들은 대부분 40~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로 성매매여성들이 일하는 업소의 주인들이다.

업주들은 집회를 유심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중간 중간 "이거 끝나고 30분 쉬어", "(시청으로) 한 번 더 들어가"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이들은 기자의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인 집회 참가자는 400여 명가량이다.


그렇다면 결국 집회에 나온 여성들은 또 업주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온 걸까? 확인을 위해 여성들과 인터뷰를 수차례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대체로 쉽게 말을 하지 않았고 남성 관리자들이 대화를 막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원주에서 온 박아무개씨(32)가 말문을 열었다. 박씨는 "업주들은 업주들의 이유가 있고 우리는 우리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가 업주들의 강요로 집회에 나온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우리를 꼭두각시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다른 일을 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솔직히 지금 당장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그만두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춘천시청앞에서 열린 한터전국연합 주최 성매매업소 단속 항의 집회에 참석했던 성매매 여성과 업주 400여명이 춘천역을 향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춘천시청앞에서 열린 한터전국연합 주최 성매매업소 단속 항의 집회에 참석했던 성매매 여성과 업주 400여명이 춘천역을 향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권우성

춘천경찰서 7월 성매매 집중단속

성매매여성들의 집회를 사실상 이끌고 있는 강현준 한터전국연합 사무국 대표는 이날 집회에서 "현재 전국의 성산업 종사자 5000여 명이 연대하고 있다, 우리에게 불리한 제도가 계속 된다면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성매매특별법 폐지가 어렵다면 도심지역이 아닌 외곽으로 옮겨 삶을 보장해 주는 등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감사위원이 뇌물을 받고, 국회의원들이 안마방을 다니고, 경찰들이 성매매를 하는데, 정비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라며 "집창촌(성매매업소)을 떠나는 것은 우리가 결정할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국자(가명) 한터전국연합 춘천지부 대표도 "서울 미아리와 용산, 청량리 집창촌이 사라진 곳에는 고층빌딩,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고 그 이익을 개발업자, 부동산업자,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이 다 집어삼켰다"라며 "돈 있는 사람들은 홍콩, 마카오 좋은데 가서 성매매하고, 여기는 돈 없는 사람들이 겨우 스트레스를 풀고 가는 곳인데 장려는 못할망정 왜 우리를 괴롭히나"라고 성토했다.

 집회에 참석한 성매매 여성들이 시장을 면담하겠다며 시청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입구를 막고 있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집회에 참석한 성매매 여성들이 시장을 면담하겠다며 시청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입구를 막고 있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권우성

 방패를 들고 춘천시청앞을 지키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성매매 여성들.
방패를 들고 춘천시청앞을 지키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성매매 여성들.권우성

 성매매업소 단속 항의 집회에 참석했던 춘천, 서울(영등포, 미아리, 천호동), 파주, 원주, 포항, 평택지역 성매매 여성과 업주 400여명이 춘천역을 향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성매매업소 단속 항의 집회에 참석했던 춘천, 서울(영등포, 미아리, 천호동), 파주, 원주, 포항, 평택지역 성매매 여성과 업주 400여명이 춘천역을 향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권우성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두 차례 시청진입을 시도했다. 시청 정문을 막고 선 경찰들과 몸싸움이 일었지만 큰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여성 2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후 참가자들은 춘천역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춘천시는 춘천에 주소지를 둔 여성들의 취업을 알선한다는 계획 등을 세우고 있지만 성매매업소 밀집지역을 폐쇄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춘천경찰서 역시 자체 정화계획을 마련할 시간을 주고 일정기간 단속을 유예하겠지만, 실효성이 없을 경우 7월부터는 대대적인 단속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사실상 업주들의 이야기가 여과 없이 보도 된다"

 '어우동' 복장을 하고 페이스페인팅을 한 성매매여성들이 무대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어우동' 복장을 하고 페이스페인팅을 한 성매매여성들이 무대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권우성

한편, 최근 연이은 성매매여성들의 집회가 언론의 관심을 끌면서 성매매 문제 해결의 본질이 흐려진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미례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전국연대) 대표는 "성매매여성들로 대변되는 사실상 업주들의 이야기를 언론에서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에 문제를 느낀다"며 "성노동을 주장하는 성매매여성들과 성매매 근절을 원하는 여성단체의 대결로 비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3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한터전국연합이라는 포주집단이 주장하는 집결지(밀집지역) 유예기간 요구는 그곳이 아주 오랜 기간 존속해 왔기 때문에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일정 지역에서 허용되면 똑같은 요구가 되풀이된다, 정부나 지자체가 법적 집행력을 정확하고 엄정하게 지속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성매매여성들에 대한 현재의 지원대책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조건 '부족하다'고만 할 게 아니라 어떠한 대책이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타진돼야 한다"며 "(성매매를 그만두고) '무엇을 할 것이다'라는 제안이 있어야 하는 데 없다, 그 일을 계속하게 해달라는 요구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특히 성매매여성들의 인권, 생존권 등이 거론되는 상황에 대해 "인권과 생존권은 성매매를 계속할 수 있다고 해서 지켜지지 않는다"라며 "성매매는 권리가 아니다, 그만두고 다른 대안을 찾는 노력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매매 #성매매여성 #매춘 #집창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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