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부터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 7명의 영정
최지용
국가인권위원회 8층 '배움터'에서 열린 추모제는 그 7명의 영정이 들어오며 시작됐다. 좁은 회의실을 200여 명의 추모객들이 가득 채웠다. 우리나라 사람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꼭 닮은 여성부터, 파란 눈에 금발인 여성, 눈이 크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동남아의 여성들까지, 모두가 울었다.
가장 먼저 사망한 베트남 여성 레티김동(2007년 3월 사망)씨의 영정이 들어오자, 그를 소개하는 사회자 레티마이투씨(베트남)가 말을 잇지 못했다. 레티김동씨는 한국에 온 지 8개월 만에 임신한 몸으로 집에 갇혀 지내다 아파트 9층에서 커튼으로 만든 밧줄을 타고 탈출하던 중 추락해 그녀와 뱃속의 아이 모두 사망했다.
가장 최근에 살해당한 황티남씨의 사건 경위가 발표됐다. 그녀는 2010년 4월 베트남에서 임아무개씨와 결혼해 그해 8월 입국했다. 하지만 두 달이 못 가 남편이 때리기 시작했고 10월 그녀는 경북 구미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보호기관인 '쉼터'에서 한 달간 생활한다.
11월 말, 남편이 찾아왔고 상담 후에 그녀는 집으로 돌아간다. 해가 바뀌어 지난 4월 그녀는 계속 맞고 있었다. 남편에게 구타당한 사진과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친구의 휴대전화에 남긴다. 당시 그녀는 만삭이었고 5월 5일 출산했다.
그로부터 19일 후, 상습적으로 도박을 하던 남편과 다툼이 있었다. 아기가 보는 앞에서, 그녀가 아기를 보는 가운데 남편은 그녀를 살해했다. 친정 가족들은 사건이 일어나고 이틀 뒤 한국에 왔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손자를 양육하길 원하고 있다.
"욕하면 우리도 다 안다"그녀와 앞서 간 여성들을 위로하는 추도사가 이어졌다. 카자흐스탄 이주여성 손타냐씨는 "'한국에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는 걸까'라는 의문이 든다"며 "남편이 아내를 무시하고,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로 욕하고 때리고, 심지어 성폭력까지 벌이고 있다, 한국사회를 모른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은,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은 비겁한 핑계일 뿐입니다. 제일 힘들고 답답한 것은 바로 이주여성 자신입니다. 남편들은 단 한 번이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안아 준 적은요? 왜 이주여성이 말을 못하니 바보 같다고 생각합니까? 욕하면 우리도 다 압니다."손타냐씨는 "한국에 살면서 제가 안전하다고 믿을 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며 "또다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한국사회와 이주여성 보호 시설 등을 다시 되돌아 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주여성들의 발언은 느렸지만 또박또박 정확하게 들렸다. 울음을 애써 참으려는 순간에 가끔 흔들리는 호흡은 어쩔 수 없었지만 해석이 어려운 말은 없었다.
"보험금을 받으려고 캄보디아 여성을 죽였다는 뉴스를 보고 정말 무서웠습니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려고 한국에 왔는데 오히려 살해를 당했으니, 그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그 여성도 인간인데, 동물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데 왜 그렇게 무시하고 마음대로 죽여버릴까요? 왜 이런 사람을 이주여성과 결혼 시킬까요? 정말 너무 두렵고 잔인합니다."캄보디아 여성 초웁찬 피런씨는 지난해 3월 사망한 같은 나라에서 온 체젠다씨의 기막히 사연을 이야기했다. 강원도 춘천에 터를 잡은 체젠다씨는 보험금을 노린 남편이 수면제를 먹이고 집에 불을 질러 사망했다.
초웁찬 피런씨는 "많은 이주여성이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가출을 하기도 한다"며 "갈 곳이 없어 공장에서 일하거나 쉼터에 들어가는데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여성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한국사람들은 '돈 때문에 한국에 왔다, 동남아시아 여자들이 게으르다'라며 이주여성을 무시한다"며 "우리도 인권이 있는데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한다"고 말했다.
"쉼터 제재는 제2의 '황티남 사건' 만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