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촌부의 장화, 불효막심 아들이 대신 신고

[사진] 초여름 날씨에 낡은 장화 안은 사우나... 습진 재발

등록 2011.06.06 17:23수정 2011.06.0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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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난 자식 때문에 어머니가 고생이시다.
못난 자식 때문에 어머니가 고생이시다.이장연

못난 자식 때문에 다리를 다친 아버지가 한달 넘게 깁스붕대를 하고 계셔서, 어머니랑 아침 저녁으로 밭일 논일을 대신하고 있다. 그것도 한낮에는 너무 뜨거워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기에 선선한 시간대에만 서너 시간씩 일을 한다. 


현충일인 오늘 아침에도 아랫밭에서 검은콩 모판을 만들고 검은 비닐도 깔고, 엄마랑 만든 고구마 모종 천개도 나무사장 아저씨에게 넘기고 난잡한 비닐하우스 안을 정리정돈하다 점심을 먹으러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집과 밭-논을 오가면서 강원도 양구 최전방에서 군복무할 때 입던 전투복 하의와 고등학교 시절 긴팔 체육복을 꺼내입고, 두꺼운 밑창이 떨어진 슬리퍼를 신고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데 논밭에서는 슬리퍼 대신 장화를 신는다. 그것도 아버지가 신던 낡은 장화를.

 아버지가 신던 낡은 장화
아버지가 신던 낡은 장화이장연

 농사꾼 아들의 발답다.
농사꾼 아들의 발답다.이장연

 해가 질때까지 구멍난 장화와 함께 한다.
해가 질때까지 구멍난 장화와 함께 한다.이장연

없는 살림에 남의 논에 빚농사를 져먹고 사는 판에, 미친듯이 치솟는 기름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올초에 도시가스로 바꾼 보일러실에 새 장화가 있지만 말이다.

아버지도 뭐가 그리 아까운지 구멍이 나 물이 스물스물 들어오는 장화와 짝짝이 주황색 장화를 신고 모낼 준비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멍난 장화를 이제 불효막심한 아들이 신고, 콩밭에 김을 매고 비닐을 씌우고 논둑을 돌보고 낫으로 풀을 베어냈다.

그런데 촌부의 구멍난 장화로 바람이 살살 들어오기도 하지만, 뜨거운 열기와 땀으로 장화는 사우나처럼 변해 겨우내 잠잠하던 습진이 도지고 말았다. 부모 마음도 모르는 철부지 자식에게 땅이 벌을 내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어리석은 아들 때문에 생고생 하시는 어머니는 "그거 버리고 새 장화 신어라"라고 하시지만, 낡은 장화가 평생 땅을 지켜온 아버지를 빼닮아 그냥 버릴 수가 없다.

 손톱에 진흙이 끼어서 바짝 잘라냈다.
손톱에 진흙이 끼어서 바짝 잘라냈다.이장연

 낡은 장화를 그냥 버릴 수가 없다.
낡은 장화를 그냥 버릴 수가 없다.이장연

 
 낡은 장화는 아버지를 닮았다.
낡은 장화는 아버지를 닮았다.이장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발행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발행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촌부 #아버지 #농부 #어머니 #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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