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질때까지 구멍난 장화와 함께 한다.
이장연
없는 살림에 남의 논에 빚농사를 져먹고 사는 판에, 미친듯이 치솟는 기름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올초에 도시가스로 바꾼 보일러실에 새 장화가 있지만 말이다.
아버지도 뭐가 그리 아까운지 구멍이 나 물이 스물스물 들어오는 장화와 짝짝이 주황색 장화를 신고 모낼 준비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멍난 장화를 이제 불효막심한 아들이 신고, 콩밭에 김을 매고 비닐을 씌우고 논둑을 돌보고 낫으로 풀을 베어냈다.
그런데 촌부의 구멍난 장화로 바람이 살살 들어오기도 하지만, 뜨거운 열기와 땀으로 장화는 사우나처럼 변해 겨우내 잠잠하던 습진이 도지고 말았다. 부모 마음도 모르는 철부지 자식에게 땅이 벌을 내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어리석은 아들 때문에 생고생 하시는 어머니는 "그거 버리고 새 장화 신어라"라고 하시지만, 낡은 장화가 평생 땅을 지켜온 아버지를 빼닮아 그냥 버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