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9일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는 주제로 열린 청소년집회 '실종신고'에서 학생들이 "시험은 ○○다"에 들어갈 말들을 붙이고 있다.
노동세상
앞서 살펴본 초등학교 6학년 1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어떻게 될까. 일단 통계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밝지 않다. 지난 4월 방정환재단이 발표한 '어린이청소년행복지수보고서'에 의하면 초등학생의 행복도는 68%. 중고등학생은 49%다.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성적이 좋지 않음으로 인한 스트레스인 경우는 45.1%로 초등학생의 18.8%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났다. OECD국가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84.77%인 것에 비하여 한국 청소년들은 53.93%로 매우 저조하다. 외로움 역시 16.65%로 OECD국가 7.75%에 비해 높았다.
보고서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도에 대한 조사에서 초등학교 4학년에서 5학년으로 넘어갈 때 약간 증가하고 후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혹은 더 높은 단계의 학교로 진학할수록 행복도가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성적·숙제·상급학교 진학에 관련한 스트레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높아졌다는 점과 비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수업이 평가 위해 이뤄지는 주객전도초등학교 6학년 민국이는 중학교에 진학했다. 입학하자마자 바로 줄 세워진다. 3월 8일 교과학습 진단평가를 통해서다. 4월엔 중간고사다. 대부분 여기서 한 번씩 좌절한다. 난이도가 크게 달라져서다. "6학년 때 중학교 과정을 미리 공부하지 않으면 못 따라갈지도 모른다"는 어른들의 엄포는 안타깝게도 상대평가로 인한 석차가 명시되면서 긴장감도 크게 높아진다.
중간고사 전후로는 학교에 따라 영어듣기평가, 수학경시대회 등 교내 경시대회도 연다. 더욱 부담스러운 것은 수행평가다. 수행평가는 과목별로 보기에 양이 상당하다. 시험, 수행평가, 교내외 수상을 다 챙기는 것이 소위 '내신 관리'다. 그 후엔 기말고사다. 중 3은 그 전에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본다. 중 1,2학년들은 12월에 '전국연합 학업성취도 평가'를 치른 직후 기말시험을 본다. 초등학교에 비해 한층 빠듯한 일정이다.
모든 학제와 수업이 평가를 위해 이뤄지는 주객전도의 상황도 벌어진다. 인천의 경우를 보면 인천지역 중학교 84%에서 강제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중학교도 84% 정도는 강제 혹은 반강제적으로 방과후 학교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시내 중학교 중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가 실시한 방과후 야간자율학습 실태조사 결과, 일부 학교에서는 특기적성수업 선택권이 일부 보장(3개 학교 정도)되나, 종합반(국·영·수·사·과 등의 과목을 한꺼번에 편성해 원하지 않는 과목도 수강해야 하는 형태) 운영은 거의 강제으로 운영되고 있다. 비희망자를 강제자율학습 시키는 학교도 있고, 7교시 방과후수업을 정규수업 전에 실시해 선택권을 아예 박탈하고 있는 학교도 있다.
치열한 경쟁에 마주 선 무기력
일주일에 2회씩 주초고사를 봐서 '성적 미달 학생'을 남겨서 오후 방과후 수업을 강제로 듣게 하는 경우도 있다. 수업이라고 해도 주로 국영수 문제풀이다. 지난해엔 몇몇 학교가 일제고사 직전 수업 시간에 대놓고 문제풀이를 하기도 했다. 그 정도는 아니어도 아침에 문제를 나눠주고 저녁 보충수업 때 방송으로 문제풀이 수업을 하는 경우는 종종 보인다.
이쯤 되면 일상이 시험이다. 어떤 학교는 방과후 수업을 경쟁시키기도 한다고 인천지역의 한 교사는 전했다. 학생들이 많이 참여했거나 성적이 오르면 해당 학급에 상을 주는 식이다. 이로 인해 방과후 수업이 교사 간의 경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상시적으로 평가를 받고 등수가 공개되면서 아이들도 각박해진다고 한 중학생은 말한다. "수업 내용을 필기한 노트를 서로 보여주지 않거나, 필기한 교과서나 학습지가 없어지는 경우도 생겨요." 조별 수행평가를 하려는 선생님에게 항의하는 학부모도 있다. "못하는 한 명 때문에 우리 애가 피해를 볼 수 있지 않냐"는 거다. 인천의 한 중학교 교사는 치열한 경쟁에 마주선 무기력을 우려한다.
"잘하는 애들 사이엔 경쟁이 치열할지 몰라도 전반적으로 아이들이 무기력하다. 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계속 압박만 받다보니, 스스로 뭔가 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어려워한다. '해봤자 안 돼'하는 생각도 많이 한다. 수업시간에 자는 아이들이 한 반에 5명이 넘는다. 수업뿐 아니라 체육대회나 학교 축제 같은 활동도 적극 참여하지 않는 분위기다. 특기적성 수업도 개설해도 잘 안 한다." 경쟁의 효율을 주장하는 이들이 침묵하는 부분이다.
"성적이 좋은 친구들이 미웠다" |
실제 초등학교 6학년 한 학급과 중학교 2학년 한 학급(각 35명)에게 설문지를 돌려 태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살펴보았다.
* 초등생의 평균 수면은 8시간, 중학생은 7시간 * 학교에서의 월평균 시험은 2~4회로, 약간 많거나 비슷한 편이라고 했다(쪽지시험 포함). * 시험 준비는 초등생은 1주일 전부터(11명) 중학생은 한달 전부터(25명) 한다. * 초등생은 대체로 자기 성적에 만족하면서 성적향상을 원하는 반면(25명), 중학생은 불만족한다는 답이 압도적(23명)이다. * 초등생은 시험을 보고 나면 후련함과 불안함이 반반(12명/13명)이라고 답한 반면 중학생은 26명이 불안하다고 답했다. * 초등생은 성적에 따라 차별과 창피를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23명)이나, 그래도 실제 차별을 당했다는 답은 8명 뿐이었다. 반면 중학생은 27명이 차별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시험을 앞두고 요점정리 노트를 돌려보겠냐는 질문에는 양측 모두 대체로 "친한 친구에게 보여주거나 자신만 보겠다"고 응답했다. 다만 초등생보다 중학생에게서 자신만 보겠다는 응답의 비율이 크게 높았다. * 초등생은 20명이 중학 교과과정을 미리 공부하고 있고, 29명이 벌써 고등학교, 대학교 입시를 고민하고 있다. * 초등생은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전체 스트레스의 10~20%이지만 중학생은 22명이 70% 이상이라고 답했다. * 반 친구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초등생은 거의 안 한다고 답변한 데 반해 중학생은 33명이 한다고 답변했다. 가장 큰 이유는 고등학교, 대학교 진학을 위해서였다. 자신보다 성적이 좋은 친구들이 미웠다고 24명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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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노동세상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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