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앞산울창했던 산 아래 새 길이 들어서다
김순희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런 노래를 들으면 다들 고향을 떠올린다. 사람에 따라, 먹을 것 없고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 때문에 고향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곳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향의 향수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세월이 흐를수록 참으로 소중해지는 유년의 기억 속에잠시나마 나 자신을 머물게 하고 싶은 이유에서다.
그것은 고향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선물이 아닐까 싶다. 내게도 일 년 사이 많은 변화가 생겼다. 몇 년 전부터 고향 마을에서는 동네 한가운데로 가로지르는 고가도로가 생기는 것에 찬성하니 반대하니 분분하더니, 마침내 내 고향은 두 동강이가 났다. 여기저기 도로를 넓히고 새로 길을 만들어 주위엔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일 년 사이 내 고향은 참으로 어색하게 변했다.
고향집을 오가며 마을 어귀를 지나다닐 때, 그저 '길이 생기는가 보다' 생각했더니, 진달래가 한창 피고 아카시아 꽃이 반발하여 그 향기가 마을 전체를 뒤덮어야 할 때가 돼도, 여기저기 논두렁 밭두렁에 동네 아저씨들이 삽을 들고 다니고 밭에는 옆집 월성댁 아줌마, 앞집 우동댁 아줌마가 호미로 밭을 일구는 모습은 오간 데 없다.
경운기가 "딸딸딸딸" 하며 좁은 마을길을 달리던 모습은 언제 보고 못 보았는지, 아버지 연세의 어르신은 단 한 분도 없고, 어머니의 또래 어르신도 거의 돌아가시고 없다. '아즈매'하며 양푼이에 삶은 감자 갖다 주며 모내기 얘기며, 고추모종 얘기에 시끌벅적하던 마을 골목길에는 가끔 지나가는 차들만이 정적을 울릴 뿐이다.
'사는 게 다 이런 것이다', '세월이 흐른다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새삼 내 고향을 바라보니 마음 한편에서 밀려드는 안타까움이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유년의 고향은 언제부터 사라지기 시작했을까지난 휴일, 고향집에 들렀다. 모내기가 끝이 나고 이맘때는 당분간 좀 여유가 있다.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논에 물대는 일이며, 고구마 모종심기, 마늘, 양파 거둬들이는 밭일에 하루해가 저무는 줄 모르고 일하신다. 하지 말라고 해도 안 하실 분도 아니고 그나마 요즘은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다. 아침에 밥과 김치 한 봉지 들고 내려와 저녁 해가 으스름해지면 집에 가신다. 이제는 어머니의 하루 일과가 안 봐도 눈에 선할 정도다.
늦은 아침을 먹고 점심을 거른 탓에 오후가 되니 배가 고팠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안 계셨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니 어머니는 논에 계셨고 피곤해서 움막에서 쉬고 있다고 하셨다. 담벼락에 늘어진 앵두며 물포도 열매도 따먹고, 집에서 쉬다가 내려오라고 몇 차례 전화가 왔다.
남편은 사온 라면에 밥을 말아 한 그릇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 옛날 어머니와 즐겨 먹었던 다시마무침이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얼른 밥에다 다시마무침 넣어서 참기름 듬뿍 뿌려 쓱쓱 비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