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 동굴 속의 탱고 (62)

62. 여행의 도중

등록 2011.06.07 10:27수정 2011.06.0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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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모든 게스트하우스가 그러하듯 그곳 역시도 지독히 더럽고 비좁았다. 일기장에서 만난 구렛나룻의 시인은 흰갈매기를 빤히 쳐다보며 멜레나의 안부를 물었다. 흰갈매기는 체크인을 해주곤 지퍼로 잠겨있던 고양이의 입에서 돈을 꺼내 계산을 했다. 그리곤 '당신들은 무료여행자니까 돈 쓸 일은 전혀 없어요' 하고 말했다. 대체 누가 우리를 이따위로 고생시키냐며 조제는 박박 우겼지만 어느새 힘이 빠졌는지 축 쳐져 버렸다.


"내일 오전에 관광가이드가 이곳으로 올 거요. 그럼 그녀를 따라다니며 여행을 즐겨요. 멜레나가 기다리니까 난 그만 가봐야겠소."


흰갈매기가 사라지고 난 후, 나와 조제는 깨끗하게 포장된 새 속옷과 파자마, 간단한 겉옷 몇 벌이 든 큼직한 배낭을 하나씩 받아쥐고 배정받은 2층 방으로 올라갔다. 방안엔 구식 라디에이터와 붙박이 옷장, 작은 침대 두개와 코너 테이블, 천정엔 작은 에어컨이 붙어있었다.

 

조제는 인형웨이터를 방 구석으로 내팽개치고 털퍼덕 침대에 드러눕더니 하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벨트를 끌러서 알토와 소프라노의 두 머리를 가진 꼬맹이 그리고 고양이를 내려놓았다. 조제는 제 몫의 침대도 모자라서 아예 내 침대까지 침범해선 뒹굴거리기에 나는 고함을 질렀다.


"야, 야! 그 지저분한 몰골로 뭐하는 거니?"
"뭔 소용이야? 이거, 다 깨고 나면 전부 물거품같은 거야. 꿈이라고! 꿈!"


"냐웅, 꿈의 단편들이 현실로 기워져웅."


어느새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 고양이가 방안을 어슬렁거리며 말했다. 그리곤 두눈에 야광같은 빛을 반짝이며 창문틀로 가뿐히 올라갔다.


"내일은 어디로 가는 거야?"


나는 고양이에게 슬며시 물었다. 그러자 고양이는 밤하늘을 향하던 동그란 눈을  거두곤, 여행의 도중엔 목적지를 마음에 두지 말라고 했다. 그렇담 원래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있는 거냐고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자 고양이는 앞발을 열심히 핥으며 '여행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거야웅'하며 밤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새 깨어난 소프라노가 옆에 다가와선 '괜히 왔다 싶어?'하고 약올리듯 물었다. 그 옆에 붙은 알토는 아직 눈을 감고 있는 상태인데 소프라노 혼자만 깨어서 몸뚱아리를 까불락거리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새 알토마저 잠이 깨서, 두개의 머리를 단 몸뚱이는 창틀에 폴짝 뛰어오르더니 고양이 옆에 나란히 앉았다.

 

2010년의 보카로 온 첫 날, 밤은 깊어만 가고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창가에 앉은 '요상한 세 생명체들은 그윽한 눈으로 밤바다와 별빛을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그러자 조제는 졸린 눈이 감기기 일보직전의 눈을 하곤, 저 징그런 것들을 어서 처단해야 한다고 웅얼거렸다. 언제쯤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새로운 희망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뭔진 알 수 없지만 그간 응어리 진 마음을 여기서 놓아보고 싶다는 기대감마저도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인형웨이터의 코고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고, 고양이는 밤바다 쪽으로 길고 구슬픈 울음을 한번 더 울었다.


<계속>

2011.06.07 10:27ⓒ 2011 OhmyNews
#장르문학 #판타지 소설 #중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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