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석하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그림로비를 통한 인사청탁 의혹과 태광실업에 대한 표적 세무조사 의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2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에 앞서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유성호
우리 사회에서 종종 벌어지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어느 날 갑자기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심각한 의혹을 받는 사람들이 겁 없이 외국에서 들어온다. 그 혐의에 비추어보면 누구나 강도 높은 수사를 기대하지만 어쩐 일인지 검찰의 칼은 다른 때와 달리 예리하지도 집요하지도 않다. 검찰의 반응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그들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는 것처럼 손쉽게 면죄부를 얻는다.
'그들'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검찰...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포스터에 쥐 한 마리를 그렸다고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신문기사만 보아도 무죄가 뻔한 사건을 기소하는 서슬 퍼런 검찰이다. 그런 검찰이 이처럼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건을 쉽사리 종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국민은 거의 없다. 결론을 믿으라고 하니 믿는 시늉을 하고, 다른 방법이 없으니 참고 있지만, 국민의 검찰에 대한 불신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한 불신을 자초하면서도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검찰의 속사정이 무엇인지, 검찰은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기에 감히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국민은 궁금할 따름이다.
법률적 사건은 증거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그렇게 확인된 사실에 대하여 법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문제는 어떤 범죄가 있었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가 드물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증거를 보면 죄를 지은 것 같고, 다른 증거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으며, 그 증거가 사람의 말이면 늘 신빙성이 문제가 된다. 또한 증거는 어디나 널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적지 않은 노력을 통하여 찾아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는지 아니면 무고한지 밝히는 일은 수사하는 사람의 능력과 노력과 성향에 크게 좌우된다. 거칠게 말하자면, 수사하는 사람이 면죄부를 주자면 못 줄 사람이 없고, 털고자 하면 버틸 사람이 없다. 결국 수사기관의 '수사하려는 의지'가 범죄 또는 무고함을 밝히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물론 수사의 본질상 존재하는 다양한 요소를 수사하는 사람의 품성에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형사소송제도는 그것을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발명해냈다. 고문의 금지, 증거법칙, 변호인제도, 영장제도, 각종 감찰제도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제도도 결국은 사람이 하기 나름인 측면을 완전히 봉쇄할 수는 없으며, 이러한 제도에 더하여 검찰의 중립성 보장과 민주적 통제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룰 때 그 공정함은 비로소 일정 수준에 이르게 된다.
반대로 불의한 정치권력이 인사권과 상명하복의 시스템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검찰을 흔들고, 검사들의 승진하려는 욕망, 공명심, 정치적 성향, 봉건적인 조직문화 그리고 조직이기주의가 그러한 시도에 화답하면 두려운 결과를 낳는다. 그 일그러진 모습을 오늘날 우리는 매일같이 신문에서 확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혐의가 있는데, 어떻게 수사를 안 하는가. 다른 어떤 사람은 혐의가 있지만 해명이 되는데 어떻게 계속 수사를 하는가." 그러나, "혐의가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들을, 어떤 시기에, 어떤 강도로 수사하고 기소하느냐"가 공정함의 핵심이다. 지금의 현실에서 도대체 누가 그 핵심이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왜 누가 보아도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은 버젓이 돌아다니고, 여러 면에서 인간적이었던 사람은 바위에서 뛰어내렸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