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성
"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초를 가지고 노는 거야."
엄마의 눈에는 초를 가지고 노는 어린 아이로 보였겠지만 나는 흐르는 촛농을 보며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고, 먼 나라를 꿈꾸며, 서툴지만 시를 쓰기도 했다. 그 시절의 감성이 지금 내가 동화를 쓰고, 라디오 원고를 쓰는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이쯤 해서 이재성이 부른 <촛불 잔치>의 노랫말을 아니 살펴볼 수가 없다. 이재성은 1986년 KBS 가요제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해 <촛불잔치>, <내일로 가는 기차>와 같은 주옥같은 노래를 발표했는데, 유난히 동글동글한 얼굴에 촉촉한 눈빛이 인상적인 가수였다.
나의 작은 손에 초하나 있어 이 밤 불 밝힐 수 있다면나의 작은 마음에 초하나 있어 이 밤 기도할 수 있다면촛불잔치를 벌려보자 촛불잔치야촛불잔치를 벌려보자 촛불잔치야'나의 작은 손에' 초 하나 있는 밤. 그 촛불을 들여다보고, 좋아하는 디제이가 음악을 틀어주면, 나는 내일 시험이 있는 줄도 새카맣게 까먹었던 것이다. 이어지는 엄마의 잔소리는 생략!
별밤지기 아저씨에게 일러바치고 싶은 게 있어요그렇게 카세트 라디오에 익숙해지면서 친구들 사이에 유행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공테이프에 친구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해 주는 것. 공테이프 하나를 녹음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카세트 라디오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내가 원하는 곡이 그날 꼭 선곡이 되는 것은 아니라서, 귀를 쫑긋 세우며 듣거나 그도 아니면 방송국에 엽서를 띄워야 했다.
뒷날 풍문으로 들은 바로는, 당시 라디오 프로에는 하루에 몇천 통이 넘는 엽서가 쏟아졌다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미술 솜씨는 영 젬병이었던 나는 한 번도 엽서가 소개가 된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예쁜 엽서 대회에 뽑혀, 방송 출연까지 한 것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지금 이 자리를 빌려 별밤지기 아저씨에게 일러바쳐도 된다면 그때 그 친구 엽서는 미대 다니는 언니가 그려준 거였다고 말하고 싶다.
신청곡과 사연을 보내달라는 달콤한 목소리는 매일 밤 되풀이되는데 내 엽서는 한 번도 소개되지 않는다는 것, 그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에 속이 상하기도 했다(그 시절 엽서를 쓰던 아이는 나중에 라디오 작가가 되었다. 이젠 문자 게시판, 인터넷 플레이어, 스마트 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청취자 참여가 이루어진다. 바야흐로 시절이 달라진 것이데. 2002년부터 시작한 작가 생활 동안 예쁜 엽서를 받아보지도 못했다. 어떤 것이든 오기만 오면 뽑아줄 요량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