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앙물고 비키니 입었습니다"

[오마이 인터뷰④] 천의 얼굴 정행심 연극배우

등록 2011.06.20 15:35수정 2011.06.2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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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네스코의 번역된 이 희곡을 처음 받아 읽었을 때, 무척 난감했다. 내가 공부해서 알고 있는 이오네스코는 언어 구사의 원칙을 늘 깨뜨리고 있었고, 그 틈이 있기에 오히려 엉뚱하고 자유스러운 공연을 가능하게 만드는 작가라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번역되어 온 <끔찍한 사창가>는 그가 쓴 것 같지 않았다. 모호하고 관념적인 대사들은 여전했지만 내가 느껴온 엉뚱함, 의외성이 사라지고 없었다.
- <지금...여기>의 김지용 연출가의 연출의도 중

 천의 얼굴, 정행심 배우
천의 얼굴, 정행심 배우송유미

"빌어먹을 시간, 멈춰. 멈추란 말이야. 나는 아직 답을 내리지 않았어. 거기 서, 이놈들아. 거기, 서라고. 저렇게 잘 가면서. 좀 가라고 부탁할 땐 그렇게도 안 가더니." - 극 중 대사


지난 13~19일 부산문화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된 부산시립극단(이하 시립극단) 제 41회 공연<지금... 여기(noWhere; 의도적으로 단어를 붙임으로써 <아무 데도 없다>라고도 읽히도록)>를 본 관객이라면, 막이 내리는 순간 극장안은 온통 눈물바다였음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여기>에는 '시립극단 박찬영 배우의 퇴임 기념 공연'이란 부제가 붙는다.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연기하는 박찬영 배우의 연기력에 장내 관객들은 함께 눈물을 쏟아낸 것이다.

이 극의 원래 줄거리는, 미국에 있는 삼촌으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은 '등장인물'이라는 주인공이 사회를 등지고 자신만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다가 세월이 지나 늙은 다음에야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깨닫고는 하늘에 대고 "웃기는 일이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관객에게 이 세상이 엉망진창이라고 탄식한다는 것이다.

각색한 <지금...여기>는 복권에 당첨한 퇴임을 앞둔 주인공 박찬영(박찬영 분)을 둘러싼 동료들과 가족들이 복권 당첨 이후 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면서 박찬영은 알 수 없는 방황의 늪을 헤매다가 어느날 갑자기 깨달음 같은 삶의 성찰에서 세상을 향해 "엉망진창이다"를 눈물 범벅이 되어 독백한다.

2011년 부산연극제 연출상(연애의 시대-최은영 작)을 수상한 바 있는 김지용 연출가의 <지금...여기>의 원래 제목은 프랑스어로는 <ce Formidable Borbel!)이다.

 여기....지금
여기....지금부산시립극단

"13년의 세월! 눈 깜박하고 지나온 것 같지만 강산이 변하고 세태가 바뀐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의 강이 흘렀습니다. 연습실에서 가쁜 호흡 몰아쉬며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는 후배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거눈 짐을 내려 놓은 듯 홀가분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정든 친정을 두고 굽이 굽이 고개를 넘어 눈물 뿌리며 시집가는 딸자식의 마음처럼 무겁고 착잡하기 합니다." 
<정년 퇴임 맞이하며> 글, -박찬영 배우


<지금...여기>는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박찬영 배우의 시립극단 단원으로서의 마지막 공연 작품이다. 시립극단 박찬영 배우와 창단(13년 동안) 멤버이기도 한 정행심 배우를 18일 오후 7시 공연 준비로 분주한 분장실로 찾아가서 만났다. 한창 야단스러운 삐에로 분장에 여념이 없는 정행심 배우에게 인터뷰를 청하자 그는 잠시 짬을 내주었다.

정 배우는 <지금...여기>에서 이중역할을 맡았다. 20대부터 노인 역할을 맡아 '천의 얼굴'로 불리기도 하는 정행심 배우는 현재 극단 <을숙도> 기획 공연 <늙은 부부의 이야기>를 위해 한창 땀을 흘려 연습 중이기도 하다.


 <지금...여기에>를 위해 땀을 흘리는 부산시립극단 단원들
<지금...여기에>를 위해 땀을 흘리는 부산시립극단 단원들부산시립극단

- <지금... 여기>는 어떤 연극인지요 ? 그리고 주인공 박찬영 배우와는 시립 극단 창단 멤버(13년간)로 활동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퇴임하는 박찬영 배우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배우의 '퇴임'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사이) 육십도 안된 배우에게 퇴임이란 말은 말도 되지 않지요. (사이) 그러나 정말 좋은 배우라면 '퇴임'은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입니다.(웃음) 이 얘기는 다음 기회에 좀더 심도 있게 얘기하고 싶고요. 이번 연극은 현대 부조리극의 선구자인 외젠 이오네스코의 작품입니다.

이오네스코의 희곡 <끔찍한 사창가(Ce formidable bordel !)>를 김지용 연출가 선생이 재구성하였습니다. 사실 지난 2009년 이오네스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시립극단이 한국에서 초연했던 작품입니다.

원작이 1970년대 석유파동 등 혼란스러운 프랑스 사회에서 개인이 어떻게 고립되는지를 이야기했다면, <지금...여기>는 오늘의 한국의 현실 얘기입니다. 대략 줄거리는 정년퇴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주인공 박찬영이 대박의 100억의 로또에 당첨됩니다.

같은 직장동료는 당첨을 축하해 주지만 속으로는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사업자금을 얻으려는 사람, 몸으로 유혹하려는 여직원도 있습니다. 주인공 박찬영은 갑자기 찾아온 일확천금으로 아수라장 같은 혼란을 정신적으로 겪는다는 것이 대충의 내용입니다.

이번 작품은 작년과 많이 다릅니다. 작품과 배우와 관객이 하나가 된 느낌입니다. 박찬영 선배와의 마지막 공연이라는 사실에 아마도 연기하는 배우와 관객들에게 교감되어 지난해 작품과 달리 뭉클한 감동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매회 눈물을 흘리는 박찬영 선배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앞으로 저의 퇴임을 거울처럼 보는 듯해서 가슴 찡했습니다."

 <지금... 여기> 위해 비키니 차림의 정행심 배우
<지금... 여기> 위해 비키니 차림의 정행심 배우송유미

- 이번 공연을 위해 출연한 배우들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오십을 바라보는 정배우께서  비키니 몸매로 이번 작품에 출연하시는데, 혹시 이에 대해 망설임은 없으셨는지요 ?
"(웃음) 왜 망설임이 없었겠습니까 ? 제 나이에 비키니 차림은 어떤 배우라도 망설임을 갖게 되지 싶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어떤 역할을 맡아도 그 역할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입술을 앙물고 체중 조절에 신경을 썼습니다. 이번 공연은 모든 단원들이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는 무대라고 자랑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이 극은 '부조리 작가'라는 타이틀이 따라붙는 이오네스코 작품이라, 작품의 내용이 길고 그 긴 내용을 연출가께서 상징성으로 대치하다보니, 기계적인 몸짓을 반복하는 힘든 장면이 많았습니다.

<지금...여기>에서 '정행심(정행심 분)'의 역할은 아주 작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키니 입은 '정행심'의 역할이 없다면 이 연극을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매우 밋밋했을 것입니다. 이 연극속에서 '정행심'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역할은 주인공 '박찬영'의 복권당첨의 팡파레를 울려주는 화려한 캐릭터라면, 또 다른 역할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세상을 청소하는 청소부의 아내(청소부)역할 입니다. 이 역할은 주인공 박찬영의 부르짖음처럼 '더럽고 한심한 세상'을 깨끗하게 청소하자는 이미지가 중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원작과는 아마도 배우들의 기계적인 움직임 이외는 별다른 뜻의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난해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연출가의 메시지는 단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지용 연출가는 '연출 의도'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 연극 본 사람들에게 세상에 대해 고민해 보길 권합니다. 모두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민감하겠지만, 이 세계가 어떤 행로를 겪고 있는지, 몇 백년이 지난 후세의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지는 무관심합니다. 나의 삶이 중요하듯이 우리 모두의 삶도 특별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연극을 하는 이유도 어쩜 이와 같을 것입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 막이 오르네요.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행심, 나는 연극 배우다'
'정행심, 나는 연극 배우다' 송유미

정행심 배우는 누구 ?
현재 부산시립극단 단원, 부산여자 전문대학 문예창작과 수료. 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과 졸업, <시인 정신>으로 데뷔한 시인. 영화 <사생결단>, <수상한 이웃들>외 다수 출연. 30여 년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100여 편이 넘는 다양한 작품에 출연. 주요 연극 작품으로는 <늙은 부부의 이야기>, <백화> 외 1인 모노드라마 등 다수 작품에 출현하였다. 오는 8월경 극단 <을숙도>의 초청으로 <늙은 부부의 이야기>에 주인공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지금...여기>는 지난 13-19일 부산문화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덧붙이는 글 <지금...여기>는 지난 13-19일 부산문화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정행심 #지금 여기 #부산시립극단 #박찬영 #이오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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