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총선 불출마'와 함께 당 대표직 도전을 선언한 원희룡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정책노선보다는 자기 희생을 강조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원 전 총장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2의 천막정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당의 위기 상황을 맞아 나부터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원 전 총장은 "2000년 한나라당 강세지역인 서울 양천갑에 공천을 받아 3선을 했다, 정치 생활 12년 동안 당으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며 "내년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총선 불출마를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 지역구는 참신한 인재에게 양보하고, 우리 당이 총선에서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대선주자들과 발이 부르트도록 전국을 누비겠다"며 "민심의 바다 속에 온 몸을 던지겠다"고 다짐했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과 2010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선명한 노선의 정책을 내세워 전면적인 당 쇄신을 외쳤던 원 전 총장이지만, 이번 출마 선언에서는 '따뜻한 보수' '21세기의 복지 모델' 등 한결 무난한 용어를 내놨다.
원 전 총장은 "나는 개혁파이고, 누구 못지 않게 사회개혁과 서민정책을 중시한다"면서도 "그러나 그 개혁은 보수주의의 철학과 집권여당으로서의 책임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이 불안해 하지 않도록 철학과 책임감에 입각한 개혁이어야 한다. 당 대표로서 개혁과 국정운영의 책임을 조화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원 전 총장은 또 자신이 친이명박계 의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출마한다는 시각을 부인했다. 그는 "나는 특정 계파의 사람이 아니다"라며 "열 달 정도, 소장파로선 이례적으로 사무총장이라는 직책을 맡아서 열심히 한 것이 주류 진입이라면 감사히 받겠지만, 결코 그것이 계파의 소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시 '단계별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원 전 총장이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진행하고 있는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에 대해서는 "이런 상황까지 간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오 시장도 한나라당이 아껴야 할 국민적인 지도자여서 최대한 존중하고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고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다음은 출마선언 직후 원 전 총장과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 '자기 희생'을 내세웠는데, 차기 총선 불출마보다 전당대회 불출마가 더 진정한 자기 희생 아닌가라는 비판이 있다.
"내가 직전 사무총장이어서 4·27 재보선 패배에 대한 책임의 당사자다. 그러나 웬만한 지도부가 구성되는 흐름이라면 내가 2선에 있는 게 맞다. 그러나 현재 흘러가는 상황은 당이 고려하는 모든 후보를 상처내고 당의 갈등과 분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그런 체제로 갈 수 있는 추이이다. 당의 위기 상황 속에서 과연 다가오는 총선 대선 권력 재창출을 위해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심을 많이 했다. 만약에 내가 나가도 그만, 안 나가도 좋은 상황이라면 내가 정치 인생을 총결산하고 한나라당과의 관계, 나의 정치이력과 역사 모든 것을 걸고 가족, 보좌진, 후원해준 사람들의 동의까지 고려하는 깊이로 내려가서 고민하진 않았을 것이다. 모든 실천과 몸을 통한 행보로 재보선 패배 책임을 만회해 나가겠다."
- '4·27 재보선 경기 분당을 패배는 홍준표 전 최고위원 때문'이라고 발언한 것이 보도되기도 했는데.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도신문을 많이 하기에 이야기한 것인데, 여기서 특정인을 거론하는 것은 맞지 않다. 양해해 달라. 다 아시는 얘기 아닌가."
- 다른 후보들이 출마하면서 구체적인 정책을 들고 나왔고, 여태까지의 원희룡 의원도 그렇게 해왔는데, 지금 출마 선언에선 추상적인 얘기들만 나와 있다.
"지금은 출마의 이유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얘기와 내 정치 철학을 애기하고, 구체적인 정책은 이후에 계속 얘기하겠다."
"등록금 폭등 주범은 김진표, 국가재정 투입 땐 대학 구조조정 동반돼야"
- 현재 가장 큰 화두인 등록금 문제 해결책에 대해선 언급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간단히 말씀드리면 등록금 두 배 인상은 노무현 정부에서 그렇게 됐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갑자기 인상됐는지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야한다. 등록금이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 위에서 대학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어떤 재원과 부담 주체들이 대책을 제시해야 하는지 종합적인 처방을 내야 한다. 처음부터 무조건 어느 수준의 반값 등록금을 정부 지원과 국민 세금으로 해결하라는 것은 결론을 전제해 놓고 몰고가는 것이다. 과정을 거쳐서 나와야 할 결론이 선동적으로 주장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방만한 대학의 운영주체, 대학, 등록금으로 혜택을 많이 본 운영진들과 교원, 여기에서부터 먼저 어떤 부담과 기여를 해야 하는지가 나와야 한다. 기부금이라든지 기업 할당이든지 세금을 통해서라든지 내 재산의 일부를 헌납해서라도 해결해야 하지만, 국민의 혈세를, 모두 힘들게 번 수입을 지금의 대학에 무조건 쏟아 부어라? 아니라고 본다. 여러분이 가계부를 쓰는 돈이라면 그렇게 쓰겠는가. 혈세를 투입하는 문제도 '내가 힘들게 번 돈'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8조면 된다' '2조면 된다'고들 하는데, (정부에) 2조, 8조 있을 것이다. 현재도 세수가 5조원 더 걷히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고통과 이를 해결하라는 요구가 있을 때마다 돈이 있다고 한 건 한 건 대응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우리가 가용하는 재원이 몇 조다 하면 어떻게 가장 필요한 곳에 쓸건지 종합적인 우선순위 분배계획을 세워야 한다.
솔직히 등록금 문제의 주범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다. 그렇지 않은가. 그땐 한나라당이 등록금 깎자니까 열린우리당이 국가재정 때문에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입장이 서로 바뀌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여야가 대화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 합의를 넘어선 부분에 대해선 국민의 선택을 놓고 싸워야 한다. 국민의 요구에 우르르 몰려가는 이런 식의 가벼움을 극복하는 게 선진국 정치로 가는 길이다. 정말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상황이 되면, 공적 자금을 투입할 때는 구조조정을 전제로 하듯이 각 대학 운영주체들이 자기 살 깎는 고통분담이 선행돼야 혈세를 투입할 명분이 있다."
- 한나라당 의견이 감세 철회로 모아지고 있는 상황인데 이에 대한 의견은.
"나는 2006년 당에서 감세 주장이 나올 때 반대했다. 우리나라는 발전 과정에 있는 국가이지, 선진국처럼 본격적으로 감세를 할 단계가 아니다, 복지확충뿐 아니라 투자적 예산으로 성장 동력을 키우고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하고 통일 재원 마련에 재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선진국 흉내 내지 말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의 감세는 지난 대선에서 국민적 공약으로 해왔던 것이다.
법인세 감세의 문제는 투자세액 공제 등의 제도와 맞물려 있지만, 법인세가 세계 경제 속에서 투자환경의 지표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법인세 감세는 투자세액 공제와 같은 제도와 함께 고려해서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기업들의 실질 부담률은 선진국들이 평균 25% 이상 되는데, 우리는 15~17% 정도 되기 때문에 감세를 철회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옳다. 그러나 훨씬 큰 재원에 대한 논의를 제쳐둔 채 법인세 감세 약속을 철회할 것이냐고 몰아가는 것도 단편적인 선택의 문제로 몰아가서 해결이 안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소득세 추가감세 철회는 찬성하지만 법인세 감세 철회는 국제 투자환경을 고려해서 신중해야 한다. 재원마련에 대해선 감세 철회 말고도 얼마든지 대안이 있다."
- 친이-친박 갈등 해결을 위해 구체적인 안이 있다면.
"먼저, 주요 당직 배치에 있어 소외감을 가진 분들을 더 전진배치해야 한다. 당 내 모든 문제에 대해 집단 내부에서 싸우다 보면 계파가 악순환된다. 실질적인 소통의 통로 역할을 하겠다. 민생과 관련한 당의 정책이 정부와 부딪혀도 생산적인 정책 논쟁이 되는 차원에는 정책 개발을 적극적으로 해달라는 것이다. 6·3(이명박-박근혜 회동) 정신의 바탕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
"친이계가 전폭 지원? 땡큐 베리 머치"
- 친이계가 원희룡 후보를 지원한다는 설이 있다.
"친이계가 전폭지원해 준다면 '땡큐 베리 머치'다. 나는 특정 계파에 갇힌 후보가 아니다. 욕심 같아선 모든 계파, 특히 탈계파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싶다. 저는 당의 대화합 정신을 강조했다. 언제든지 남을 공격하고 상처주고, 자기 입지와 인기를 위해선 당이건 주요 지도자건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는 풍토, 그런 스타일의 정치는 당에 두고두고 우환이 된다고 생각한다."
- '자신의 입지와 인기를 위해선 언제든지 남을 공격하는 스타일'은 홍준표 전 최고위원을 말하는 것인가.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말한 건 아니다."
- 지난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처럼 나경원 의원과의 단일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선거에선 '득표가 신앙'이니까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을 것이지만, 출마를 선언하는 입장에서 그 부분을 고려하긴 이르다."
- 전 지도부 책임론이 여전한 상황에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출마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공격하고 차별화하고 나만 살기 위해 행보하는 이기주의 웰빙주의 체질이야 말로 우리 당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당이 사라질 수 있는 위기인데 개인의 입장과 경력이 뭐가 중요하겠나."
- 19대 총선 공천과 관련해 원칙을 세우거나 개혁안을 마련한 것이 있다면.
"현재 당헌에 있는 공천방식도 상향식 공천이라고 생각한다. 공천개혁특위에서 논의한 방식을 가급적 반영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상향식 공천이 맞다. 문제는 당원 선거인단들이 통제 가능한 소수인,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칠 때 (상향식 공천개혁이) 기득권 보장장치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 그러나 여러가지 여건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완전개방 국민 경선제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지역구에 가서 앞으로 몇 달 뒤에 경선 붙으라'고 하면 한나라당에 아무리 국민적인 대표성이 있는 사람이 있다 해도 들어올 수 있겠나. 그런 분들이 들어올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나는 이미 3선씩이나 했으니, 더 이상 포장도로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지역구는 정말 좋은 분, 현실 정치에서의 당선 부담 때문에 모셔오고 싶어도 주저하고 못 오시는 분을 위해 제공된 자리가 될 것이다. 이 것이 인위적인 공천 교체의 메시지는 아니다. (정치 입문 당시) 나는 다행히 한나라당의 영입대상이어서 좋은 지역구를 배정받았지만, 3~4선 하신 분들은 정말 어려운 지역구에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구를 가꿔오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총선승리에 필요한 건 국민이 원하는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 방금 한 말은 '내 지역구에 내 사람을 심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이번 총선 불출마 선언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인지.
"물론이다. 대선 이후는 승리냐 패배냐에 따라 졸지에 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한나라당 정부 2기로 갈지 모르는 것 아니겠나. 그런 상황에서의 역할은 국민이 부여하는 것이다. 부모님 제사는 부모님 돌아가신 뒤 생각하면 된다. 총선승리와 대선 승리까지만 생각하고, 이번 총선에 불출마하고 나는 개인적인 행보에 신경을 끄고, 접시 하나라도 나르겠다는 각오로 올인하겠다."
- 총선 불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자세히 밝힌다면.
"당 대표에 나가는 문제에 대해 처음엔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5월 말쯤부터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많은 애기들이 있었다. 이 얘기가 특정 계파를 말하는 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총선·대선 승리를 위해 당 대표가 전국을 누비기 위해선 자기 지역구 경로당 갈 시간이 어디 있고 지역구민 등산버스에 인사할 시간이 어디 있나. 당 대표는 전국에 어려운 격전지를 발이 부르트게 뛰어야 하기 때문에 대표와 지역구 후보를 겸임하는 것은 한나라당이 초강세인 지역구 의원을 빼고는 힘들다.
고민은 한달 가까이 했고 결정은 어제 새벽에 했다. 지금까지 가장 큰 희생을 해온 가족회의 동의와 보좌진과 핵심 후원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지역 당직자들은 어제 저녁에 통보하듯이 해서 울고불고 괘씸해 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무상급식이 소신이지만, 같은 당 오 시장 힘 빼는 일 안하겠다"
- 지난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선 무상급식을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진행하는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에 대한 평가는.
"아시다시피 서울시장 경선 당시 민주당에서 무상급식을 제기하기도 전에 의무 교육기관에서 무상급식을 하자고 주장했고, 특히 예산이 뒷받침되는 서울시는 해야 한다고 했다. 단계적으로 의무급식을 실시하자는 그 주장은 현재도 유효하다. 오세훈 시장은 소신이 나와는 다른 것이고, 지금은 시장이 모든 것을 걸고 주민투표를 하고 있다.
나는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견해는 다르지만 같은 한나라당 소속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자치단체장이 어려움을 겪는데 거기에 대고 공격하는 것은 소신과는 무관하게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까지 간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오 시장도 한나라당이 아껴야 할 국민적인 지도자여서 최대한 존중하고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 도움을 주는 일이 힘을 보태는 방법이 있고, 힘을 빼는 일은 안하는 방법이 있는데, 현재로선 힘을 빼는 일을 안하는 것으로 도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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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이나 했으니 더이상 포장도로는 안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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