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사치심 없었다면 베르사유 궁도 없었다?

프랑스 경제학자 장 카스타레드의 <사치와 문명>

등록 2011.06.23 14:04수정 2011.06.2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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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사치와 문명>
책 <사치와 문명>뜨인돌
우리는 흔히 '사치스러운 것'을 돈이 남아도는 인간들의 낭비벽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멋지게 여기는 그림이나 조각품이 지금의 2천만 원짜리 에르메스 가방처럼 초호화 사치품이었다고 인식하는 이는 별로 없다.

책 <사치와 문명>은 우리의 문명이 사치의 역사와 함께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사치가 없는 한 인류의 역사는 생각할 수 없으며 이집트의 피라미드, 로마의 콜로세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처럼 사치의 문화적 성과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시할 것은 '물질적 사치'와 '문화적 동력이 된 사치'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누구나 선호하는 명품 가방은 물질적 사치에 불과하지만 사치스럽더라도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은 문화적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책을 읽다 보면 사치의 역사는 우리 문명과 함께 지속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바빌론의 성벽과 공중 정원은 대규모 토목 공사가 이루어진 당대 모습을 상상하게 하며, 그 사치스러움 속에 많은 이들의 희생이 감수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뿌리 깊은 사치의 역사는 비난 받을 요소를 듬뿍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놀라운 고대 인류의 문화를 드러낸다.

사치스러움을 통해 자신들의 문명을 더 발전시켰다고 할까? 현대의 핸드폰, 노트북 등도 처음에는 고가의 사치품이었지만 지금은 일상이 된 문명이 아닌가? 핸드폰만 하더라도 15년 전 쯤에는 부자들이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엄청난 사치품이었다. 지금은 일상적인 문명의 생활용품으로 자리 잡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사치의 역사가 그릇되었다고만 볼 수는 없다. 중국 또한 문명의 발전과 함께 길고 긴 사치의 역사를 갖고 있다. 2천 년 이상 이어져온 안정된 황실과 고급 관리 제도, 그리고 세계화의 서막을 연 비단길 등은 사치 문화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사치의 역사는 문명적 발전 또한 함께 가져 온다.

재미있는 것은 사치품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광이 여러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일본인들이 명품을 좋아하며 사치품(그들은 일종의 예술품이라고 강조하지만) 수집에 열을 올린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독특한 문화적 배경이 깔려 있다.


"선물 문화는 일본 전통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고, 쇼핑 문화도 그 자체로 완전히 독립적인 활동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저마다 다양한 취향과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객은 똑같은 제품이나 똑같은 광고 문안, 포장 및 진열 방식 등에 현혹되지 않았다."

일본의 각 음식점이 획일화되지 않고 고급화 전략을 쓰며 개성을 추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일본의 장식품점을 방문해 보면 각각 개성이 있고 다양한 장식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획일성을 추구하는 모습과는 참 다르다. 이런 문화는 다양한 각도로 사치품을 더욱 발전시킨다.


사람들이 루이뷔통이나 샤넬, 카르티에 같은 명품 브랜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자들은 왜 이런 '명품 가방'에 환호하며 남자들은 왜 '비싼 차'에 열광할까?

이 책은 이러한 명품 브랜드를 선택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서구적인 세련된 이미지를 남들에게 보여 줄 수 있고 자신이 어느 정도 경제적 부를 갖고 있다는 걸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일면 이해가 되는 설명이다.

옛날처럼 일차적이고 깊은 인간관계가 드문 현실에서 자신을 쉽게 드러내고 과시할 수 있는 수단으로 현대인들은 사치품을 선택한다. 한 마디로 얕아진 인간관계의 틀에서 자신을 보여주는 손쉬운 도구로 명품 가방이나 비싼 차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사치의 역사를 살펴보고 분석한 이유를 '인류를 꿈꾸게 한 흔적이 바로 사치품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치란 것이 항상 부정적인 결과만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인류의 문명이 바로 사치의 역사이기 때문이며 그 사치의 과정 속에 문명 또한 발전해 왔다.

"나는 이들이 과시적인 소비를 그치면 개성과 개인적, 집단적 개화와 관련된 더욱 깊이 있는 가치가 뿌리내릴 수 있다고 낙관한다.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의지를 확보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정립할 수 있게 되면 과도한 마케팅이 조장해온 물질적이고 표면적인 가치들, 비현실적인 꿈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중략)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쾌락주의 시대를 통과해온 우리에게 이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닌 '질'이다. 환경과 생태, 지속가능한 개발,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와 같이 가치 판단과 질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소비가 점차 우선시되고, 타인의 소비 습관이나 유행을 쫓는 과거의 경향을 떠나 자신의 원칙과 신념에 따라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이런 말과 함께 사치는 조금씩 그 자신의 본질을 되찾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치가 아름다움과 선함에 대한 숭배, 창조물에 대한 경의, 제대로 만든 물건과 작품에 대한 사랑이라는 긍정적 방향을 추구할 때 비로소 사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현대 문명을 탄생시키지 않을까?

사치와 문명

장 카스타레드 지음, 이소영 옮김,
뜨인돌, 2011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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