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특설대는 당시, 간도에서 조선 독립군과 중국인이 연계한 반일-반만주국 투쟁(대표적인 조직은 중국 공산당휘하의 동북항일연군)의 활약으로 곤경에 빠진 만주국-일본 당국에 의해 설립되었다. '조선 독립군은 조선인이 다스려야 한다'는 명분아래 대대장등 몇몇 직위를 제외하고 조선인으로 채워졌다. 명칭도 이에 유래하였고, 일본군이 아닌 만주국군에 소속되었다.
동북항일연군등 다수의 항일조직은 군대, 관헌등의 단속과 집단주거 마을건설에 의해 주민과 격리된채 은신하면서 게릴라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에 맞서 간도 특설대는 게릴라전에 특화된 부대로 육성되었다.
조국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운동조직을 진압하는 부대의 특성상, 대부분의 조선사람으로부터 거부되었다. 그러나, 당시 만주국에서 살고 있던 친일파 군인들 다수가 소속되어, 독립운동과 항일 항만주운동의 탄압에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광복이후 한국에서 반민특위 등 친일청산작업이 실패한 가운데, 구 일본군/만주군 소속 군인들이 그대로 국군지도부가 되었다. 특히 간도특설대 출신들은 대 게릴라전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 4·3 사건 등에서 토벌부대 지휘관으로 참여했고, 한국 전쟁 때도 많은 역할을 하였다. 백야전사령부를 창설하여 지리산빨치산을 토벌하고 32세에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던 백선엽(白善燁)이 대표적이다.
일제 식민지배에 맞선 독립운동을 대거 탄압하였으므로, 현재 알려진 간도특설대 소속 인물들의 대부분은 친일파로 인식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박정희의 일본군 대위 경력 논란으로 인해 일본군에 복무해도 일본군 소좌 이상만 등재해 놓았다. 그러나 간도특설대의 경우 그 활동이 특히 악랄하여 독립군 말살이라는 그 임무 때문에 대위이하 장교는 물론 사병까지 전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 되어 있다.(<다음백과사전>'간도특설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