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 숲속홍길동입니다!!>
방법이 없어 이렇게 이메일로 제 상황을 알려드리는 점 이해 바랍니다.
지난 2004년 한전을 관두고 나서는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생활 속에서 투쟁하는 동지들 소식을 영상으로 알려내 오는 작업을 꾸준히 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의 돈으로 그걸 까먹으며 활동했고, 나중엔 정말 돈이 없어 전해투, 또는 오산쎈터 등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영상 작업을 할 수 있는 캠코더, 영상작업용 컴퓨터 또는 노트북을 유지했기에 작업이 가능했습니다.
저 역시 노동조합을 했었고, 99년 2000년 한전 민영화 저지투쟁(당시 발전 분사 저지투쟁이었죠, 김대중 정권 때)을 하며 구속을 각오하고, 본사 조합원들 선동하기도 했고 삼성동 본사다 보니 텔레비젼 뉴스에도 얼굴이 많이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꼭 했어야만 하는 투쟁을, 당시 김대중 정권도 한전 투쟁에 상당히 힘들어 했는데, 또 IMF이행사항이기도 했기에... 김시자 열사와 노조 내부 어용 처단 민주화 투쟁을 했다는 오경호가 반동 짓을 하며 노동조합이 공식적으로 민영화를 인정해주는 직권조인을 혼자 해버려(2000.12.3) 좋았던 투쟁 전선을 하루아침에 날라가버리고, 민주파 활동가들도 무너지고, 1년넘게 본사에 상주하던 3, 4천 공권력도 사라지고... 그러면서 직권조인에 대한 조합원 찬반 투쟁, 그리고 위원장 불신임 투쟁을 당시 신어용이 되어 사측에 달라붙은 노조위원장을 상대로 바위에 계란치듯 투쟁하며 자본을 상대로 한 투쟁이 아닌 내부적 이유 때문에 탄압도 받았고 결국 구 어용도 내쫓지 못했던 저를 본사지부 활동을 못하게 하려 일선 사업장으로 인사발령내 버렸습니다.(노조의 협의없이 직원 발령은 날 수 없죠)
이렇게 2001년부터는 일선 사업장에 근무하면서도 (본사지부 활동 때도 회사 일을 하며 노조활동을 해 왔고 많이 바빴죠) 시그네틱스 라든가 당시 이드 투쟁 등에 결합하며 촬영한 영상을 회사 퇴근 후 집에 가서 편집해 속보 영상으로 소개하는 것이 지금과 같은 연대활동의 시작이었습니다.
2003년~2004년 사이 380일간 가열차게 투쟁한 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기간 동안 두 차례 휴직, 그리고 퇴직을 했습니다. 어찌보면 이주노동자들과 이런 이유로 각별한 인연이 있게 됩니다. 농성기간 중 인신납치되어 외국인보호소로 감급된 동지들 면회, 농성장 물품 구매, 동지들 이동시 차량 운전 등 한국 활동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 투쟁에 올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회의나 말로만 하는 투쟁에 신물을 느낀 저는 ] 한전 때 못한 투쟁을 그런 식으로 투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지금까지 왔습니다... 최근에는 오산이주쎈터 부근 어느 고물상 게게를 하는 어떤 동지 컨테이너 사무실서 기거해던 중 노동자교육센터 라는 곳에서 오프라인 강좌만 하다가 새롭게 온라인 강좌를 시작하게 되어 영상편집할 활동가를 찾던 중 김호철 선배 도움으로 제가 그 곳에서 최근 7~8개월 정도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작업은 만만치 않았고 하루 평균 12~17시간 영상 편집(강좌 촬영 포함)일을 해야 했고 올 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 난방 혜택 없이 일하다보니 온몸이 쑤시고 코끝이 빨개지는 신체적 고통까지 겪게 됐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가야할 투쟁현장은 전혀 못가보게되고...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해야 투쟁현장 동지들 멋진 투쟁들을 멋지게 소개하는 작업, 활동을 할 수 있는데 48강좌 중 17강좌가 강사 사정상 또는 강좌 당일 수강 노동자들 사정 등으로 못했는데 7개월 활동비가 마지막이라는데, 후불이라 그 이후는 자원봉사가 되는데 밥값이 장난 아니죠...밥 두 끼 사먹고 담배한갑, 쏘주 한두병 사서 마시면 한달 활동비는 똔똔 이거나 마이너스...돈을 조금 모아볼 생각이었는데, 환장하죠
그러면서 그동안 고시원서 지냈는데, 용산이란 데가 물가가 워낙 비싸 허름하고 방음도 안 되고 난방도 변변치 않은 곳에서 겨울을 지내니 노동자교육센터도 그랬고, 온 몸이 만신찬이라...인터넷 검색을 통해 인천 연수동 쪽 (활동상 거리가 멀지만) 무보증 월세 원룸을 구하게 됐습니다. 23일에 받은 마지막 활동비로,,,26일날... 그리고도 교육센터 일을 하다보니 밤새고 하니 통 인천을 못 가보다가... 3월 31일은 어쩌면 재 데뷰하는 날이었습니다...(아직 노동자교육센터 일을 마무리한 건 아니지만, 이제 투쟁현장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보다 먼저 3월4일엔 이주 집회에도 다녀왔고 영상을 오랜만에 올렸죠) 밤새고 아침에 재능(시청 앞 농성, 유명자 지부장 7일째이던 날)으로 갔고, 유명자 지부장과 강종숙 위원장 인터부를 땄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류재운 동지에게 소통한 후 (김창현 퀵 동지 전회기로) 영등포 시장, 민주당사 앞 집회로 갔습니다. 전주버스 투쟁관련 서울시민대책위가 주최하고 전주버스동지들이 참여한 규탄집회를 촬영하고 뒷풀이 겸 점시을 하게 됐습니다. 오랜만에 보고픈 동지들과 함꼐 하다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2차 3차 계속 이어지고, 이날 일을 치뤘습니다. 3년전 처럼 또 캠코더, 노트북, 외장 하드, 활동비 중 남은 현찰 등이 담긴 가방을 분실해 버렸습니다......
다음날,여러동지들과 전화해가며 전날 갔던 곳을 어렵사리 다 찾아내 다시 가봤지만 가방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제가 핸드폰은 문자수신 밖에 안되니 공중전화로 전화하다보니 2만원 정도 돈이 들더군요... 이 장비가 없으면 영상활동가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허탈감... 주머니를 보니 돈이 3만원 정도 있어 그 돈으로 인천으로 갔습니다.그리고 쏘주를 20병 정도 사서] 뇌를 마비시켰습니다...이 상황에서 패닉을 잊게 하려 했던 겁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갑니다... 지금 수중에 전혀 현찰이 없고 남은 돈은 2700원인데 이 돈으로 피씨방에 와서 인터넷을 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동지들께 전화드릴 돈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 15일~20일 정도 그 집에서 지낼 수는 있는데, 당장 먹을 쌀이 없는 상황입니다. 고시원이었으면 밥과 국 정도는 해결했을 텐데...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최악의 상황에서 동지들꼐 이메일을 보내드립니다...
좀 도와주십시요!! 만원도 좋고 이만원도 좋습니다...당장 굶게 생겼습니다. 장비 마련도 아득한 일이지만,,, 일단 죽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동지들이 도우겠지 하고 외면 마시고 꼭 좀 도와주십시요!! 문자 수신 밖에 안 되는 상황이라 (그것도 액정이 나가서 어떻게 하면 겨우 보고 그럽니다만...) 공중전화에서 전화 드릴 돈이 없어 마지막 현찰로 이메일을 보냅니다! 적은 금액이라도 꼭 좀 도와주세요! 죄송하고 염치불구하고 글을 보냅니다...
하나은행 217-910146-65807 (예금주 : 정원섭) 앞으로 부탁합니다...(신용불량이라 타 동지 계좌를 제가 상시적으로 씁니다. 제 계좌는 입금은 되나 출금이 안되서) 그리고 도움 주시게 되면 그 때 간단한 문자를 부탁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꼭 다시 일어나서 동지들 곁에서 당당히 활동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다급해서 이메일 보냅니다... 이제 피씨방도 못 올 상황인만큼 다급해서요...
숲속홍길동 이상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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