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좌익' 소아병에 대하여

[주장] 독자정치세력화? 언제까지 옛 노래 불러야 하나

등록 2011.07.10 13:10수정 2011.07.1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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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송곳같은 분석으로 진보적 양심을 자극하는 글들로 대한민국 지식인들을 부끄럽게 하는 이름이다. 그러나 이건 아닌 것 같다. 한겨레 7월 8일자 칼럼 <진보대통합의 바른 길>을 읽고 드는 생각이다. 다들 '대통합'이라고 하니 제목은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진보에서의 '좌익' 소아병이다.

박노자가 대학생과 청년실업자, 취업대기자, 영세상인, 비정규직 노동자 등과 함께 앞으로 한국의 진보정치를 이끌어가야 할 비주류로 지목한, "어려운 강의 노동에 월평균 수입이 40만 원에(!) 불과한데다 미래는커녕 다음 학기 강의 일정도 불투명한 대학 시간강사"의 한 일원으로서 글의 내용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런 얘기다.

"진보통합 문제에서 대북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민주노동당이 "지금 추구하는 듯한 야권 연대, 즉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과의 연대 전략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진정한 (즉, 계급적) 진보의 죽음을 뜻한다. 지배 블록의 일부분인 제도권 자유주의자들과 야합할 경우에는 진보가 진보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기 때문이다...집권 10년 동안 한국 민중 삶의 터전을 거의 파괴한 신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정당 세력들과 진보진영이 연합을 한다면 이는 민중에 대한 최악의 배신에 해당될 것이다."

박노자의 글,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떠올리게 해

박노자는 그래서 "진보대연합이 긍정적 의미를 가지자면 부르주아 정당들과의 야합이 아니라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적 조직화·세력화야말로 급선무일 것이다. 그래야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꿈을 언젠가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박노자의 증세는 레닌이 1920년에 진단을 내린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바로 그것이다. 레닌의 진단을 되새겨보자.

"그들이 파멸로 나아간 주된 이유는...'3이 2보다 크다'는 단순하고 맹목적이며 언뜻 봐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원칙을 계속해서 반복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치는 산수보다 대수에 가깝고, 초등수학보다는 고등수학에 훨씬 더 가깝다. 실제로 사회주의 운동의 옛 형식은 모두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졌고, 따라서 모든 숫자 앞에 새로운 기호로서 '-'가 등장하였다. 그렇지만 아는 체하는 사람들은 자신들과 사람들에게 '-3'이 '-2'보다 크다고 계속 고집했다(그리고 고집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진보통합'은 정치다. 그런 민주노동당에 박노자는 대수와 고등수학 대신에 산수와 초등수학을 강권하고 있다. 소위 진보대통합의 1단계로 추진했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아마 진보신당 내부의 사정으로 인해 8월로 결정이 늦춰진 듯 하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두 정당의 통합은 불가능하며, 의미도 없다고 본다.


박노자가 차순위 중요도로 제쳐 놓은 '대북관'의 차이 때문이다. 북한정권의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의견 표현 여부가 통합의 걸림돌이 된다는 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오히려 종북주의 운운하며 분당한 세력들이 사과하고 통합에 앞장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다며 통합을 거부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본다. 그래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민족문제에 대한 이런 편협한 사고는 진보의 태도가 아니다.

다음으로 "신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정당 세력들과 진보진영의 연합"에 대한 박노자의 소아병적 증세의 문제다. 매우 경직돼 있다. 레닌이 지적했듯이 "실천에 있어서 비변증법적"인 태도에 해당한다. 목표와 원칙은 흔들림이 없으되 "전술에서 최대한의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성"을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언제까지 흘러간 옛 노래 불러야 하나?

지금 정세에서 목표는 진보통합 그 자체가 아니라 민주진보정부의 수립이다. 진보통합이 민주진보정부수립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 언제까지 흘러간 옛 노래를 불러야 하나? 박노자에게는 김대중 ·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오류만 눈에 들어오고 이명박 정부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민중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 민중의 염원이 한나라당의 재집권이 이루어지더라도 진보통합만 되기를 고대하는 것인가? 진보정당의 힘으로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진보정부를 세울 수 있는가? 그래서 비정규직 등 비주류 민중들의 처지를 혁파할 수 있는가?

다음으로 야권연대의 문제다. 만일, 민주진보정부의 수립이 목표라면 야권은 연대가 아닌 통합을 하는 게 맞다. 유시민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야권단일정당이 정권교체와 의회권력 교체에 유력한 방안"이지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연대를 모색한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대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이 되었다. 유시민은 이런 얘기도 했다. "정치인들은 앉아서 될까, 안 될까를 평가하는 평론가들과는 달리 무조건 한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같은 인터뷰에서 두 이야기를 했는데, 후자의 자세가 맞을 것이다.

민주당은 야권통합에 적극 나서겠다고 한다. 박노자의 훈수가 통한다면 통합야당은 불가능하겠다. 진보정당들이 민중의 현실과 유리된 상태로 '소통합'에 그치고, 제각기 내년 총선과 대선에 임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부르주아 의회 진출을 모색하면서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부르주아 정당과의 연대 내지 통합을 경원시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지금 민주당은 5년 전 10년 전의 민주당이 아니다. 진보정당들이 통합야당에 참여한다고 해서 민주당에 흡수되고 존재가 사라지는 그런 조건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민주당내 진보정치인들과 손을 잡고 민주당을 진보정당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진보정당 통합도 삐걱거리는 마당에 민주당을 '신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정당'으로 규정하면서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꿈'을 꾸는 것이야말로 진보의 죽음이요, "민중에 대한 최악의 배신에 해당될 것이다."

진보정당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야권통합을 위한 협상테이블에 진지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보의 자세이며,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첩경이 될 것이다. 좌익 소아병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박노자 #진보통합 #야권통합 #민주노동당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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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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