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액을 맞아 고통스러워하는 여학생에게 사람들이 전경들로부터 그를 보호하며 물을 뿌려주고 있다.
문해인
폴리스 라인의 상황은 심각했다. 폴리스 라인 위에서는 채증을 위해 쉴 새 없이 사람들의 얼굴을 찍고 있었고, 양쪽 옆에서는 전경들이 조그만 물총에 담긴 최루액을 뿌려대고 있었다. 최루액이 뿌려질 때마다 사람들은 눈을 감고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고, 우리들은 뒤에서 건네진 물을 받아 뻘겋게 달아오른 그들의 얼굴에 뿌려줬다.
바로 옆에는 심상정, 권영길 등 전·현직 의원들이 있었고, 그 뒤에는 <오마이TV>가 모든 것들을 생중계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시민들의 얼굴에 최루액을 뿌릴 수 있는지 나에게는 아주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무서웠고 도망치고 싶었다.
평창올림픽에서 조남호 한진중 회장이 떠오르다부산은 처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갈 때 부산역에서 배를 타기 위해 잠시 들렀던 것을 빼놓고는. 게다가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로 참여하는 첫 취재여서 내 마음은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물론 집회라고는 대학교 새내기이던 2008년 촛불집회와 지난 6월 노동자대회에 참여해본 것이 다지만,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낮 12시 쯤 시청역 근처 재능교육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희망버스에 오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학교 동아리 친구들을 만나 지하상가에 가서 밥을 먹었다.
우리 동아리는 학교 청소노동자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한글과 컴퓨터를 가르쳐드리며 연대하는 동아리다. 자연히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친구들은 "이번에 APEC 이후 최대병력이 동원됐다고 들었다"는 등 밤새 일어날 충돌을 걱정하면서도 즐거운 모습이었다. 그때 식당 텔레비전에서 전전날 발표된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뉴스가 방송됐다.
"평창 띄우는 거 짜증나 죽겠어." "나 어제 택시 기사 아저씨랑 같이 평창 욕하면서 갔잖아." "경제학과 친구들도 평창 65조 이익 내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하던데." 텔레비전에 비춰지는 조양호 유치위원장의 미소 가득한 얼굴이 그의 동생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겹쳐지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에 쫓겨 밥을 채 다 먹지 못하고 친구들과 함께 희망버스 6호 차에 올랐다. 우리 버스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마련한 버스로, 동아리 선배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 서부지역 비정규 노동센터 준비모임 회원들과 그 외 여러 개인 참가자들이 45인승 버스를 꽉 메웠다.
우리 버스에는 기획단 깔깔깔이 타지 않아서 동아리 선배가 사회를 맡았다. 부산역의 상황을 간략하게 전해 듣고 문화제에서 함께 부를 '연대송'을 연습했다. 이어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분위기는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했다.
사회를 본 김희연씨는 "1차 희망버스 때에도 버스 안에서 다른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도 버스 안에서부터 희망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분은 김진숙 지도의원이 '낙타'를 닮았다며 "185일, 낙타는 오늘도 사막을 걸어간다"라는 시를 낭독해 버스 안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노우정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리해고에 반대해 노조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취급을 못 받는 세상이 안타깝다"며 "이 문제를 여론화해준 희망버스가 고맙고 끝까지 싸워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노래를 불러 환호를 받은 잠실여고 교사 이바다씨는 "돈이 없어도 대학 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재밌게 지내다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앞서 발언한 어떤 분의 멘트를 빌려 "나도 희망을 받으러 간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버스기사 아저씨의 배려인지 우리는 부산까지 가는 동안 휴게소를 세 번이나 들렀고, 그때마다 이것저것 먹으면서 마치 소풍가는 기분이 든다고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가는 길 내내 비가 쏟아져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상쾌했다.
"진숙이가 옥탑방인가 크레인인가 위에 있다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