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달리기는 무엇일까!
문학사상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해서 달리기 시작했다매일 계속해서 달린다고 하면 감탄하는 사람이 있다. "무척 의지가 강하시군요"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런데 의지가 강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세상은 그처럼 단순하게 되어 있지는 않다, 라고 해도 무방하다. 솔직히 말하면 매일 계속해서 달린다는 것과 의지의 강약과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내가 이렇게 20년 이상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달리는 일이 성격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본문 가운데보통 글을 쓸 때는 감성이 풍부해지는 새벽녘에 작업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하루키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1시간을 조깅하듯 10킬로 달리기를 하고 직장인이 일하듯 선선한 아침나절부터 책상에 앉아 일을 한다. 물론 일주일에 하루쯤은 쉬는 날을 정해놓는다. 1982년 가을부터 거의 매일같이 조깅을 하고 강연이나 글을 쓰러 간 세계 각지에서 매년 적어도 한 번은 마라톤 풀코스를 (23번이나 완주했단다) 달리는 소설가. 그의 말대로 달리기에 힘입어 글을 쓰는 작가가 맞는 것 같다. 어느 작가보다도 감각적인 글쓰기를 하는 하루키가 가장 규칙적인 삶의 패턴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과 마라토너로서 일상을 유지하는 모습은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이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게 그냥 좋듯이, 그가 장거리를 달리는 것은 원래의 성격에 잘 맞았고, 달리고 있으면 그저 즐거웠단다. 타고 난 성격이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축구나 야구같은 팀 경기에 적합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라는데, 그러고보면 달리기는 타인과 경쟁하거나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거나 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인 것 같다. 글을 쓴다는게 그러한 것처럼... 저자도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한계를 인정하고 조금씩 목표를 높여 해소해나간다는 점에서.
세상의 어떤 직업이든 성공의 요체는 재능 못지않게 집중력과 지구력이라고 한다. 하루키는 자신의 경우를 돌아봐도 소설가로서 중요한 자질은 첫째로 재능이며, 둘째는 자신이 지닌 한정된 재능을 필요한 한 점에 집약해서 쏟아붓는 집중력, 셋째는 지속력(지구력)이라고 말한다. 30년간의 긴 작품 활동을 위한 고통스러운 문학정 성취를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서 달리기는 고통을 극복하며 작가에게 필요 불가결한 체력과 집중력 그리고 지구력을 길러주었다고.
매일 아침 세상의 길 위를 달리면서 배우다나는 올겨울 세계의 어딘가에서 또 한 번 마라톤 풀코스 레이스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여름에는 또 어딘가에서 트라이애슬론 레이스에 도전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계절이 순환하고 해가 바뀌어간다. 나는 또 한 살을 먹고 아마도 또 하나의 소설을 써가게 될 것이다 - 본문 가운데
그는 달리고 있을 때 어떤 일을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대체로 오랜 시간을 달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글쎄, 도대체 나는 달리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제까지 달리면서 무엇을 생각해왔는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는단다. 내 경우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보면 평소에 잘 떠오르지 않던 글감이나 마음에 드는 표현이 불쑥 솟아나 기뻤던 경험이 있어서 저자처럼 달리기에 힘입은 글쓰기가 실감나기도 하였다.
셰익스피어, 발자크, 디킨스 같은 거장이 아닌 세상 대부분의 작가들은 많든 적든 부족한 재능을 각자 나름대로 연구하고 노력해서 보강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랜기간에 걸쳐 소설을 계속 써나간다는 것이 불가능해져 버린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방향에서 자신을 보강해가느냐 하는 것이 각자 작가의 개성이 되고 특징이 된다. 저자는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단다. 매일 달리기를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이 글을 쓰는 전업작가도 필요한 근력을 열심히 훈련하며 매일 그 의지를 높여가야만 한다는 것.
만약 그의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자신이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작가가 아니더라도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고립감과 외로움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다. 그와 같은 감정들은 예리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 내벽을 끊임없이 자잘하게 상처 내기도 한다. 하루키는 자신의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으로까지 몰아감으로써, 그의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외로움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고자 했다고 한다.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직감적으로... 사회 혹은 타인들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나 고립감이 두렵게 다가온다면 하루키의 직감을 믿고 오늘 저녁 가볍게 달려보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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