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굴
정만진
안일암까지 도로 내려왔다. 해가 저물어갔던 것이다. 며칠 뒤 다시 갔다. 이번에는 그 산길 중간쯤에서 오른쪽 절벽 쪽을 더듬었다. 굴이니까 아무래도 절벽 어딘가에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왕굴은 없었다. 그 날도 그 즈음에 하산을 했다. 퇴근 후 찾아가니 일몰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는 탓이다.
그 다음에는 좀 더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좁은 산길을 하나 발견했다. 누군가가 길 위에 아까시나무 벤 것들을 얹어 통행을 가로막아 놓았다. 이것 봐라? 요즘 앞산공원관리사무소에서 샛길 통행을 막아 자연을 보호하는 정책을 편다더니 이게 바로 그것인가?
그러고 보니 안일암 지나서는 '왕굴'로 가는 이정표가 없었다. 안일암 200m 아래에 왕굴까지 700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었고, 그걸로 끝이었다. 왕굴 가는 길은 주등산로가 아니라 샛길이다. 그래서 다시는 이정표도 없고, 이렇게 가시덤불로 막아 놓았나 보다.
아까시나무를 치우고 전진한다. 불과 50미터도 아니 들어갔는데 굴이 있다. 여기다! 쾌재를 부르며 다가섰다. 제법 큰 굴이다. 굴 안에는 돗자리가 깔려 있고, 작은 책상까지 하나 있다. 그런데 촛불 흔적은 없다. 가만 보니 소줏병도 뒹굴고 있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굴 앞으로 난 길도 책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좁고, 안내판도 없다. 역시 하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차례. 찾아올 때마다 늦은 시간에 온 탓에 오가는 등산객도 거의 없어서 마땅히 물어볼 곳도 없었다. 그런데 일이 꼬인 것이 엉뚱한 데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안일암 야경이나 찍어보려고 땀을 식히고 있는 중에 할머니 불신도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한 사람이 '저 우(위)에 돌탑 있제? 그건 째매하다(작다). 더 올라가면 이따만한(이렇게 큰) 거 있다.' 하자, 상대가 '그런나? 나는 저쪽 무당골에는 댕기도(다녀도) 이 골짝은 안 올라가봐서 모르겠다'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