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린 동태 눈깔에 비치는 '세월의 파편'

시인 이달균 두 번째 시집 <문자의 파편> 펴내

등록 2011.07.19 15:33수정 2011.07.1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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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달균 시인 이달균(53)이 새 시집 <문자의 파편>(도서출판 경남)을 펴냈다.
시인 이달균시인 이달균(53)이 새 시집 <문자의 파편>(도서출판 경남)을 펴냈다. 이달균

고래는 없다
파도를 물어뜯는 상어도 없다

그래도
고래고래 소리치는
술고래는 있다


풀린 동태 눈깔에 비치는
어시장 난전 

-'마산항' 모두

오래 묵은 된장처럼 구수한 맛이 깊은 벗이자 같은 길을 걷는 시인들이 그 시인과 함께 했던 70~80년대 추억을 쪼개며 그 시인이 쓴 시를 곱게 갈무리해주는, 요즘 보기 드문 아주 행복한 시인이 있다. 경남문인협회 부회장을 맡아 창원 등지에서 시와 시조를 쓰며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달균이 그 시인이다.

시인 이달균은 글쓴이와도 묵은 정이 많이 남아 있다. 1970년대 끝자락부터 80년대 허리춤까지 글쓴이와 그는 자주 만나 서로가 쓴 시를 꼬집고 때리며 밤을 새워 술을 마시는 "술고래"였다. 글쓴이와 그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이달균을 말하다"에 적힌 "우린 간혹 만난다... 무슨 이름이나 정해놓은 날짜도 없다"처럼 그렇게 약속도 없이 자주 만났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2011년 초여름, 그가 시집 한 권을 보내왔다. <문자의 파편>이 그 시집이다. 이 시집은 그가 <남해행>이란 첫 시집을 낸 뒤 자유시로는 두 번째 시집이요, 시조집까지 끼우면 다섯 번째 시집이 된다. 이 시집이 독특한 것은 시집 뒤에 붙는, 그 흔한  '주례사' 해설이나 '발문'이 없이 닭띠 시인인 벗들이 시집 뒤에 묵은 정을 적시고 있다는 점이다.
 
묵은 장맛 깃든 시들이 싱싱한 풋고추 부른다


이달균 시집 <문자의 파편> 이번 시집에 실린 시편 곳곳에는 묵은 장맛 깃든 시들이 싱싱한 풋고추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이달균 시집 <문자의 파편>이번 시집에 실린 시편 곳곳에는 묵은 장맛 깃든 시들이 싱싱한 풋고추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도서출판 경남
"오래된 시들을 묶는다. / 1987년, 첫 시집 <남해행> 이후의 파편들이다. // 칼이 너무 무뎌졌다. / 다시 벼려야겠다." -'시인의 말' 몇 토막

경남과 창원 등지에서 활발한 문학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 이달균(53)이 새 시집 <문자의 파편>(도서출판 경남)을 펴냈다. 이 시집은 그동안 시조를 많이 발표하고 있었던 시인이 자유시로는 첫 시집 <남해행> 뒤 24년 만에 펴내는 두 번째 시집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집에 실린 시편 곳곳에는 묵은 장맛 깃든 시들이 싱싱한 풋고추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이 시집은 모두 4부에 82편이 '문자의 파편'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나는 왜, 마산항, 매립장에서, 탈옥수와 문예지, 한심한 독자의 시 읽기, 그림자의 잠, 황신혜, 지구별 회충1~2, 나는 누군가의 세상 속으로 버려져 가고 싶다, 내 오래된 기억의 집, 모던타임스1~5, 떠나와서 쓰는 시, 배고픈 밥꽃, 할미꽃 둥이 그 시편들.

이달균 시인은 "이번 시집을 만들면서 우리 지역에서 그동안 함께 활동했던 같은 닭띠 나이 시인들에게 짧은 단상을 부탁했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70~80년대 함께 활동했던 수많은 또래 문인들이 뿔뿔이 흩어졌지만 시인 이월춘, 이상옥, 김혜연, 정이경, 김일태는 지금까지도 같은 지역에서 같은 길을 함께 걷고 있다"며 "이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고 되짚었다.

삶은 혼자 기울인 시간 속에 다 있다

생에 대해 묻지 마라
네가 본 책 속에
영화 속에

혼자 기울인 술잔 속에
다 있으니

-'인생' 모두

세월은 참 빠르다. 이달균 시인이나 글쓴이나 어느새 지천명이란 나이에 접어들어 지나온 삶을 더듬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니 말이다. 올해 오십 셋에 접어든 시인 이달균은 지난 24년 동안 쓴 시, 끝내 버리지 못한 해묵은 여러 시편들에서 추억과 현재를 오간다. 그는 삶은 그동안 "네가 본 책"과 "영화", "혼자 기울인 술잔 속에 다 있"다고 못 박는다.

"시인 김광섭의 동네에 살던 / 비둘기를, / 오늘 출근길"(비둘기)에서 만나는 것도 추억과 현재가 입을 맞춘다. "저 창백한 별똥별이 / 세상 안으로 버려지듯이 /나도 누군가의 세상 속으로 버려져 가고 싶"(나는 누군가의 세상 속으로 버려져 가고 있다)은 것, "세상에서 내몰리면 이곳까지 오게 되는가"(보길도), "낮은 길을 따라 걸어왔습니다"(저문 날의 편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사람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오래 묵은 추억에 나를 자주 비추기 때문이다. 그 추억 속에 비친 나를 바라보아야 지금 있는 나를 제대로 볼 수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새로운 날들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지난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오늘을 알고 내일을 추스르기 위함 아니겠는가.
 
'세월의 파편'을 숫돌 삼아 갈무리하고 있는 시

시민극장 앞이었어
10.18 마산항쟁 전야에도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우린 무슨 약속처럼 그곳에서 만났지
조조할인 입간판 앞에서
영화처럼 바람에 깃을 세우며 서 있던 사람들
포장마차의 불빛이 따스해지는 시각
극장을 돌아가는 골목에서 먼저 어둠이 오고

-'시민극장이 있던 자리' 몇 토막 

시인 이월춘은 '동갑내기 친구들, 이달균을 말한다'에서 "이형, 없어진 게 어디 '시민극장' 뿐이랴"라며 "세월은 늘 거기 있는데 우리가 가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나. 무엇이나 영원한 건 없다는 걸 날마다 깨달으며 하루가 간다"고 다독였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극장'은 한때 마산 창동에 있었던 극장, 마산 시민들이 약속장소처럼 찾았던 그 극장을 말한다.

시인 이상옥은 "이달균과 만난 지 20년이 넘었다"고 말머리를 꺼낸다. 그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한 중앙집권적 문단 풍토 속에서 마산이나 고성의 우리는 변방의 시인이었다"라며 "어떻게 하면 우리 스스로 시의 중심이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많이 외로워했을 터... 그런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이달균은 지금 우리 시단에 뚜렷한 자리를 확보한 중견시인이 되었다"고 못 박았다.

시인 이달균이 펴낸 두 번째 시집 <문자의 파편>은 다르게 말하자면 '세월(인생)의 파편'이기도 하다. 그는 '세월(인생)의 파편'을 숫돌로 삼아 혼자 갈무리하고 있는 시(삶)를 빛나게 갈고 닦는다. 숫돌에 무언가를 갈고 닦는다는 것, 그것은 곧 무언가를 '버림'으로서 '새로운 아름다움(내일)'을 얻는다는 게 아니겠는가.      

시인 이달균은 1958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87년 <지평>과 시집 <남해행>을 펴내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조집으로 <말뚝이 가라사대> <장롱의 말> <북행열차를 타고>가 있으며, 사화집으로 <비 내리고 바람 불더니>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가 있다. 1995년 <시조시학> 신인상을 받았으며,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경남문학상', '마산시문화상', '경남시조문학상'을 받았다. <시와 생명> 편집인과 마산문인협회장을 맡았으며 지금은 경남문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문자의 파편

이달균 지음,
도서출판 경남, 2011


#시인 이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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