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말기, 살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전라도 함평에 둥지 튼 '경상도 사나이' 박재원씨

등록 2011.07.27 14:06수정 2011.07.2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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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원 씨 집에서 내려다 본 오두마을 풍경. 사방이 녹색이다.
박재원 씨 집에서 내려다 본 오두마을 풍경. 사방이 녹색이다.이돈삼

"보세요. 얼마나 좋습니까? 녹색이 몸에 좋은 보약이에요. 문만 열면 푸른 산천이 펼쳐지는데, 건강할 수밖에요. 보약이 필요 없어요.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이 보약이고 영양제입니다."


'나비고을'로 널리 알려진 전라남도 함평에 터를 잡고 6년째 살고 있는 박재원(58)씨의 얘기다.

박씨의 고향은 '대게'로 널리 알려진 경상북도 영덕. 대학 진학을 이유로 고향을 떠난 후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벌이도 괜찮았다. 자식들 키우고 생활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이 늘 허전했다. 답답했다. 고향산천이 그리웠다. 소를 몰고 가 풀을 뜯기며 멱 감던 일, 뒷산을 헤집고 다니며 머루랑 다래랑 따먹으며 즐겁게 놀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언젠가는 시골로 가서 살고 싶었다.

 박재원 씨가 살고있는 한옥. 거처하는 곳 외엔 모두 민박을 치고 있다.
박재원 씨가 살고있는 한옥. 거처하는 곳 외엔 모두 민박을 치고 있다.이돈삼

 박재원 씨가 고택 앞에서 한옥 복원에 얽힌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박재원 씨가 고택 앞에서 한옥 복원에 얽힌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이돈삼


전환점이 필요했다. 박씨는 오래 동안 해오던 일을 과감히 접고 백두대간 종주에 나섰다. 그것도 혼자서. 지난 2002년이었다. 45일 동안 능선을 타면서 지난날을 돌아봤다. 앞으로의 새로운 인생도 그려봤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병원에 가 보았다. 대장암 말기를 향하고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믿기지 않았다.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몸이 갈수록 힘들어졌다. 치료기간이 길어지면서 마음까지 시들어져 갔다.

"정말 죽을 것 같더라구요. 얼마 못살고. 그래서 항암치료를 밤에 하자고 했죠. 낮엔 북한산에 갔어요. 허약해진 몸으로 가면 얼마나 가겠어요. 거의 기어가다시피 해서 조금 올라갔죠. 날마다."


그는 산에서 생기를 접했다. 시나브로 기운도 생겼다. 병마와 싸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희망의 끈을 붙잡자 몸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은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퇴원으로 이어졌다.

 한옥펜션 내부. 가재도구와 이부자리가 정갈하다.
한옥펜션 내부. 가재도구와 이부자리가 정갈하다.이돈삼

맑은 공기와 푸른 숲이 얼마나 좋은지 실감한 박 씨는 바로 새로운 둥지를 찾아 나섰다. 후보지는 바다를 끼고 있는 경상도 남해와 충청도 안면도였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마음에 담아뒀던 곳이다.

새 터전을 마련하면 환경친화적인 집을 짓고 싶었다. 전북 남원에 있는 황토구들학교에 등록한 것도 이런 연유다. 구들학교는 1주일 과정이었다. 구들장을 놓는데 필요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 찾아간 이곳에서 그는 '새 인연'을 만났다.

같은 학교 수강생으로 참여한 김요한(68) 목사를 만난 것이다. 당시 김 목사는 함평군 해보면의 한 폐교 터에 농촌체험 공간을 꾸미고 있었다. 지금의 '황토와 들꽃세상'이 그곳이다.

"김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구요. 본인이 살아보니까 전라도가 좋더라고.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산과 바다도 매력적이고. 정말 살만한 곳이라고. 귀가 솔깃했죠."

구들학교를 수료한 박씨는 그 길로 김 목사를 따라 함평으로 갔다. 처음 찾은 땅이었지만 좋았다. 산도 들도 편안해 보였다. 그냥 눌러앉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 4월이었다.

"정말 좋더라구요. 그래서 '몇 달 살아보고 싶다'고 했죠. 목사님이 흔쾌히 허락해 주시더라구요. 석 달을 살아보고 터를 잡았죠."

 김요한 목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박재원 씨. 김 목사는 그의 전라도행을 안내한 사람이다.
김요한 목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박재원 씨. 김 목사는 그의 전라도행을 안내한 사람이다.이돈삼

 박재원 씨가 운영하고 있는 한옥펜션의 마루. 고택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박재원 씨가 운영하고 있는 한옥펜션의 마루. 고택의 분위기가 묻어난다.이돈삼

함평군 해보면 대각리 오두마을에 터를 잡은 박씨는 한옥을 지었다. 민박을 칠 요량이었다. 오래된 생각이었다. 한옥 짓기도 직접 했다. 황토를 이기고 나무를 자르는 일이 재밌었다. 미리 익힌 기술로 구들장을 놓는 것도 뿌듯했다. 집마다 마루를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한옥 2채는 고택을 그대로 옮겨 복원했다. 철거 위기에 놓인 157년 된 명가였다. 기초석과 구들장, 소품까지도 고스란히 옮겨왔다. 선인의 손때와 고전미가 되살아났다. 이렇게 한옥 5동을 지었다. 멀찌감치 떨어진 별채 형식이었다.

그는 이 한옥의 마루에 앉아 산야를 내려다보는 걸 즐긴다. 마루에서 밥을 먹고 차도 마신다. 오랫동안 꿈꿔 왔던 생활이었다. 근심·걱정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정도다. 건강이 좋아진 것도 당연지사.

"환경이 끝내주잖아요. 눈만 뜨면 보이는 게 녹색이고. 여기서 좋은 공기 호흡하고, 깨끗한 물 마시고, 안전한 먹을거리가 있는데. 건강이 안 좋을 리 없죠. 일부러 운동도 하지 않아요. 따로 운동할 시간도 없구요."

그는 질병의 그림자가 끼어 들 여지가 없다고 했다. 오염되지 않은 환경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한옥펜션 '예가' 운영수입도 쏠쏠하다고 했다. 한옥에서 하룻밤 묵은 손님들도 '편히 쉬고 간다'며 좋아한다.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나날이다. 꿈에도 그리던 전원생활이다.

 박재원 씨가 한옥마루에 앉아 집앞으로 펼쳐지는 오두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박재원 씨가 한옥마루에 앉아 집앞으로 펼쳐지는 오두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이돈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박재원 #한옥펜션 #귀촌 #오두마을 #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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