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소설 <파랑새> 표지
바보새
다시 소설을 쓰리라 마음 먹은 그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제주로 떠났다. 제주에 도착한 그는 피난민촌에서 뛰어 놀고 있는 소년 배평모를 만났다.
"피난민 독종새끼들!"길수는 몸을 돌리면서 내 발 앞에 침을 뱉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창규와 기문이 경익이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만에 찬 우월감으로 나를 노려보는 길수의 눈길에서 느끼는 굴욕감 때문이었다."야, 임마. 돌아서! 한판 붙잔 말이다!" - 배평모 성장소설 <파랑새> 중에서소년 배평모는 낯선 땅 제주의 피난민촌에 살고 있는 아이들 한 명으로 살고 있었다. 때는 한국전쟁 중이었고, 제주는 4·3항쟁으로 숱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시절이었다. 소설가 배평모는 그 시절을 제주에서 보냈고, 그 시절의 조각이 성장소설 <파랑새>로 만들어졌다.
- 우리 아버지도 그때 산으로 갔어. 광철이 아버지는 악질 순경이었어. 광철이 아버지한테 죽은 동네 어른들이 여럿 있었어. 산사람들이 복수한다고 광철이 어머니하고 삼촌을 산으로 끌고 가서 죽여버렸어. 나중에 우리 아버지는 광철이 아버지 총에 맞아 죽었어. - 배평모 성장소설 <파랑새> 중에서소년 배평모는 전쟁 중 제주로 피난을 왔지만, 당시 제주는 육지에서의 전쟁보다 더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성장소설이라고 이름 붙인 소설 <파랑새>는 희망 없는 시절의 아이들이 유일하게 품을 수 있는 꿈이었다. 작가 배평모는 소설을 쓰기 위해 제주를 찾으면서 "내가 죽어서 무덤 속까지도 끌어안고 갈 그 불행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지우기 위해 그곳을 찾아가는 게 아니다. 나는 다만 50년이라는 세월과 화해를 하기 위해 그곳을 찾아가고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육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제주에 피난민촌을 세웠다는 사실을 나는 배평모의 이번 소설을 통해 처음 알았다. 때문에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4·3때 죽어간 제주 산사람들을 떠올렸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나선 강정마을 사람들을 떠올렸고, 제주가 이름만 '평화의 섬'이 아닌 이유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그 시절의 제주를 만나는 일도 즐거웠다. 소설엔 잠들지 않는 남도의 역사와 피난민촌 아이들의 삶과 사랑, 제주의 이국적 풍경이 다 녹아 있었다. 더불어 해방둥이로 태어난 작가 배평모의 역사인식이나 그 시기 소년들의 꿈과 이상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퍽 흥미로웠다.
소설 말미에 배평모는 '피난민촌의 환경만큼이나 가난했던 이 나라의 정치와 사회의 격변을 겪으며 그 파랑새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라고 적고 있다. 그것은 '현대사의 질곡을 함께한 그 해방둥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있을까?'라고 묻는 것과 같았다. 작가폐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 배평모처럼 소설속 인물들도 지금쯤 지난 생애를 되돌아보며 파랑새를 그리워하던 그때를 추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파랑새
배평모 지음,
바보새, 2011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외면할수록 끈질기게 들러붙는 게 소설이더라"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