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주요국가 인구 1000명당 급성 병상수 추이 비교
OECD
이렇게 경쟁적인 투자를 하다 보니, 대형병원의 살 길은 환자 진료를 많이 하고 각종 검사와 수술을 많이 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문제는 병원이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데 필요한 의료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에서 접수한 민원 가운데는 병원 코디네이터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수술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이 그 병원에서는 고급 의료기기로 수술한다며 견적을 내주는 사례도 있었다. 또 어떤 환자는 로봇시설이 없는 병원에서는 수술이 아닌 치료를 권유받았지만, 로봇시설을 보유한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유받거나 로봇수술을 권유받은 경우도 있었다.
대형병원의 실태를 보여준 기사 ①편에서 알 수 있듯 대형병원 입원환자수 대비 외래환자수가 5배를 넘기고 있다. 이처럼 많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환자 권리를 존중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환자는 의사와 자세한 상담조차 어렵다. 1분 진료로 부족한 설명은 의사가 아닌 간호사에게 들어야 한다.
대형병원이 환자에게 진료비를 부당하게 청구한 경우를 보여준 ②편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중한 질병으로 대형병원에서 검사를 받거나 입원을 하게 되는 환자들은 반드시 진료비확인신청을 내보라고 안내하는 일이 환자단체, 시민단체의 일상적인 업무가 되었다. 환자권리를 환자 스스로 찾아나서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대형병원 대부분은 비영리법인 병원의 법적 지위를 갖고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대형병원들은 의료체계에서 공공적 역할을 담당하며 지역별로 높은 수준의 의료를 제공하고 중증환자 진료를 전담해야 한다. 대형병원들이 무한 경쟁과 수익 추구에 매달리는 한, 환자들이 치료받아야 할 존재로 '존중' 받기는 어렵다. 환자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형병원 쏠림, 환자들이 문제다?환자 입장에선 부당한 일이지만 의사들이라고 전혀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댓글 분위기를 보면, 환자보다 오히려 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우선 의사들은 대형병원의 불만족스런 서비스를 지적하는 문제에 대해 '대형병원만 선호하는 환자들도 문제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나쁜 의료제도에서 좋은 이용자가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믿을 만하고 객관적인 의료정보가 제공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비용 지불 능력만 있다면 환자가 대형병원을 이용하는 것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 아닐까. '대형병원=좋은 서비스'는 아니지만, 그나마 대학병원이 낫지 않을까 하고 대형병원을 선택하는 환자를 비난하는 것은 참기 어렵다.
대형병원부당이용백서 ②편,
'환자속인 병원, 107만원 돌려받았습니다'에 대해 의사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의사 혹은 병원에서 환자를 속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급여기준에 벗어나더라도 의학적으로 올바른 처치를 한 것인데 그것이 부당청구로 오해받는 것은 불편하다. 의사도 구조 속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무작정 싼 치료를 권장하는 정부가 문제다. 문제는 의학적지식과 경험이 없는 심평원에서 현실성 없이 설정한 터무니 없는 삭감기준 때문이다. 보험기준대로만 약을 쓴다면 결국 환자 손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이 이야기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기 위해 진료비를 무조건 삭감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의료기관에서 하는 서비스가 의학적으로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는 근거에 입각하여 보험기준을 정하고 있다. 심사평가원의 진료심사평가위원회는 의학적 타당성을 중심으로 급여심사 평가 내용을 결정하고 있으며, 이 위원회는 의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암질환심의위원회, 의료행위전문위원회, 약제급여평가위원회 등에는 의사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병원 입장에서 억울하게 삭감당하였다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으며, 기존의 보험기준이 변화되는 의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면 이를 재검토하는 절차 역시 존재한다. 따라서 문제가 있다면, 전문가 집단답게 구조와 절차를 이용하여 해결할 일이지, 의사들이 일방적인 피해자인 양 할 일이 이니다.
또 일부 댓글에서 병원은 환자를 위해 진료했는데 진료비를 삭감당하니까, 환자에게 비급여로 청구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는데, 환자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았는지 궁금하다.
예를 들면,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환자는 20만원만 내면 되는데, 병원이 100만원 전액을 환자에게 부담시키는 행위이다. 대형병원이 건강보험 진료비를 다 못받을까봐 환자 본인부담 20만원은 물론 '예상되는 손해액 80만원(보험 적용이 될 경우에는 손해가 발생하지도 않는)'까지 환자에게 뒤집어 씌우는 행위이다. 이는 병원이 '건강보험 받을 환자의 권리'를 자의적으로 박탈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어머니가 백혈병 환자 아들이 사망한 후에 진료비 확인신청 결과 천여만원을 돌려받고 한 말은 "이 돈이면 내 자식 치료 더 할 수 있었는데…"였다. 이 사례는 위와 같은 병원 행위가 어떤 환자에게는 '진료받을 권리' 자체를 박탈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개별 병원이 손해 볼 것을 예상하여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병원협회와 의사협회 등이 나서서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야 옳다.
또 대형병원부당이용백서 ③편,
'의사 전화 한 통에 '진료비 1만6천원'?'에 따르면, 검사결과를 전화로 통보한 것에 대해 진료비를 받는 불법적인 일들이 일부 병원들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검사 결과 전화 통보는 병원 입장에서 멀리 지방 환자들의 편의를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그런데 충분한 설명을 듣지도 못하고 필요한 상담을 하지도 못한 채 전화로 간단히 검사결과만 통보받았는데도 진료비를 받는 것에 대해 환자들은 부당하다고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환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검사결과에 이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기까지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나, 다른 병원에서의 검사와 진단 등을 종합하여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아무도 모르는 환자 안전, 의료사고누구라도 아플 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대부분의 나라들은 네 가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첫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와 둘째, 의료비로 인해 의료 이용에 장애가 없도록 의료보장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셋째, 의료서비스 질을 관리하고 향상시키는 체계, 넷째, 의료 피해 예방과 보호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의료서비스 제공체계와 의료보장체계가 전체 사회구성원에게 미치는 정책이자 중요한 이슈라면, 의료서비스 질과 환자 안전 등의 문제는 환자 개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임에도 취약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선진 외국의 경우에는 오랜 기간 동안 의료계가 자율적으로 표준 진료 지침이나 임상진료지침 등을 마련함으로써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왔다. 각 국가는 의료계의 자율성에 기반하여 의료서비스 평가를 운영하고 있으며, 환자 안전과 환자 보호를 중요한 정책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병원에 영리추구 행태가 퍼져있으며, 의료계의 자발적인 질 향상은 많은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환자 안전이나 의료사고 문제는 정부의 의료정책의 주요 과제로 자리 잡지도 못하고 있다. 환자 알 권리와 선택권 보장도 미약하다. 비급여 진료비 공개 방침이 시행되는 등 진료비 정보 공개가 최근 조금 활성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의료 질에 대한 정보 제공은 취약해서 환자가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이러한 의료 현실에서 정부의 정책 목표는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고, 환자 안전을 보장하며, 의료에 대한 알권리와 병원 선택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의 의료서비스 질 향상 정책, 환자 안전과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자 구제 정책은 제대로 가고 있는가?
대형병원이용부당백서 ④
'산부인과에서 우리 아이가 이렇게 됐어요' 기사는 의료사고 환자들의 증언으로 병원의 수준과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우리나라는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의료사고 예방, 의료사고 피해자 구제, 의료사고를 둘러싼 분쟁 해결 절차법을 마련하지 못하였다. 의료계와 환자 입장의 차이는 물론 정부 각 부처의 입장이 달라서 법 제정을 이루지 못하다가 드디어 2011년 법이 제정되었다.
법 제정의 명분으로 정부 측이 내세운 "해외환자 유치를 위해 필요하다" 논리가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정부는 의료서비스 선진화의 일환으로 해외 환자 유치에 중점을 두었는데, 해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의료분쟁 관련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정부 부처내 이견은 봉합하고 쟁점 조항은 유보하면서까지 법을 통과시켰다. 의료사고 피해의 원인을 밝히고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목적은 실종된 채, 의료분쟁 조정을 위한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의료의 질 관리 정책은 크게 후퇴하였다. 2010년 보건복지부는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법을 개정하여 2011년부터 새로운 의료기관 인증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 병원협회는 수년동안 정부가 주도하는 병원평가제도를 비판하며, 병원협회가 자율적으로 시행하겠다고 요구했고, 그때마다 시민단체들은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격'이라며 반대해 왔다. 하지만 결국 보건복지부는 민간기구로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을 설립함으로써 의료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정부 책임을 민간 자율에 넘겨주고 말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부 주도로 의료기관 평가 및 질 향상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일부 나라에서는 자율적 참여와 함께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자율이지만 실제로는 인증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인증제도에는 어떤 인센티브나 규제도 없어, 과연 병원들이 인증에 참여할 동기가 있을지 미지수이다. 인증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이 축소된다면, 인증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결국 인증제도를 통한 의료 질 향상은 기대하기 어려워지게 될 수 있다.
정부는 법적으로는 인증사업을 관리감독하며 예산까지 지원하고 있으므로, 인증제도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나아가 의료기관 인증제도 외에 '의료의 질 및 환자 안전'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할 때이다.
영리병원 도입은 해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