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니언을 흐르는 콜로라도 강망원으로 당겨서 찍은 그랜드캐니언의 골짜기 맨 아래쪽 풍경. 깊이 1600미터가 넘는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콜로라도 강이 마치 실개천 같다. 강 주변에는 수분이 풍부해 푸른 숲이 형성돼 있다. 아들 셋은 골짜기 아래, 콜로라도 강과 가까운 곳까지 트레일을 다녀왔다.
김창엽
볼 때마다 사람을 '철학자'로 만드는 그랜드캐니언그랜드캐니언은 말 그대로 거대한 골짜기로 사람을 단박에 왜소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길이가 400km에 이르고, 계곡 깊이는 1600m에 달한다. 쩍 벌어진 계곡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공간을 가로 지르는 어떤 유무형의 실존을 몸서리가 처질만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랜드캐니언을 두 눈으로 접하는 그 순간만큼은 철학자가 돼도 이상할 게 없다.
나는 이번으로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로 그랜드캐니언을 찾은 것인데, 그때마다 예외 없이 삶이 얼마나 무상한 건지를 절감하곤 했다. 하지만 팔팔한 청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무상함보다는 그랜드캐니언 그 자체를 눈요깃감으로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랜드캐니언을 내려다보는 아이들에게 요즘 한국에서도 4대강 사업 때문에 이 멋진 그랜드캐니언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다고 말하자, 다들 킥킥거리며 한마디씩 한다.
"우리나라는 캐니언도 빨리 만들죠.""그러면 우리도 4대강캐니언에 관광객 유치하는 거냐?"물론 비아냥거리는 말들이다. 정치에도 사회에도 전적으로 무관심한 줄만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엄밀히 따지면, 그랜드캐니언이나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강가 혹은 강 언덕의 골짜기나 생성 원리는 다를 게 없다. 둘 다 강물의 침식 현상으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랜드캐니언은 지난 500만~600만 년 동안 강물이 무서운 속도로 평지를 깎아먹으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번 빨라지기 시작한 물살이 땅을 무려 1600m 이상을 파고 들어가, 위에서 보면 까마득하게 실개천처럼 보이는 콜로라도 강을 탄생시켰다. 그러니 오늘날 그랜드캐니언의 장관은 사실 물이 부린 조화나 진배없다.
다만 4대강 침식으로 인한 골짜기 형성은 인공적이라는 점과 그 규모가 그랜드캐니언의 수천 분의 1도 안 되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를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원리가 같기로서니 4대강 사업을 비판하기 위해 그랜드캐니언을 거론하는 것은, 경외감 그 자체인 그랜드캐니언에는 상당히 실례가 될 수 있는 언사가 틀림없다.
그러나 저러나 오늘 지출한 예정에 없던 술값 24달러, 그 돈이 우선 당장 나에게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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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캐니언, '4대강캐니언'과 비교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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