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과 김종서, 정말 사돈지간이었을까

[사극으로 역사읽기] KBS2 드라마 <공주의 남자>, 두 번째 이야기

등록 2011.08.04 15:47수정 2011.08.23 11:27
0
원고료로 응원
 <공주의 남자>에서 원수관계로 등장하는 수양대군(김영철 분)과 김종서(이순재 분).
<공주의 남자>에서 원수관계로 등장하는 수양대군(김영철 분)과 김종서(이순재 분). KBS

KBS 수목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수양대군(김영철 분)의 딸과 김종서(이순재 분)의 아들  간의 러브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 자녀들의 사랑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문종(세종의 아들)의 부탁을 받고 어린 단종을 보호한 김종서, 쿠데타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인 단종의 권력을 빼앗고 김종서를 죽인 수양대군. 이 둘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원수지간이다. 그런 그들의 자녀들이 이 드라마 속에서 애틋하고 애절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박시후 분)는 문종의 딸인 경혜공주를 가르치는 책임을 맡았다. 한편, 수양대군의 딸 이세령(문채원 분)은 아버지가 남편감으로 점찍어 놓은 김승유를 미리 테스트해보고 싶은 생각에, 경혜공주의 양해 하에 자기가 대신 공부방에 들어갔다. 이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됐다. 드라마 속에서 이들이 사랑을 꽃피운 시점은 계유정난이 있기 1년 전부터다.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이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자녀가 서로 사랑했다는 것이 좀 부자연스럽다고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나이차가 무려 34년이나 되기 때문이다. 수양대군은 1417년 생이고, 김종서는 1383년 생이다.

물론 실제로도,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아들 사이에 사랑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 이것은 드라마 속의 픽션에 불과하다. 그럼, 이 드라마는 무엇을 근거로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그리고 있는 걸까?

<공주의 남자>의 근거가 된 <금계필담>이란 민담집

<공주의 남자>는 <금계필담>이라는 민담집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 책은 1873년에 전 의령현감 서유영이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수집해서 정리한 책이다. 금계(錦溪)는 서유영이 집필을 한 장소인 충남 금산군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는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가 금지된 사랑을 했다고 했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를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아들' 사이의 사랑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 사이에서는 실제로 사랑이 이루어졌을까? 사실, 이 점은 명확하지 않다. <금계필담>을 읽어 보면 이야기의 사실성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금계필담>에서 해당 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주의 남자>. 왼쪽에서 두 번째는 수양대군의 딸 이세령(문채원 분), 세 번째는 김승유(박시후 분).
<공주의 남자>. 왼쪽에서 두 번째는 수양대군의 딸 이세령(문채원 분), 세 번째는 김승유(박시후 분). KBS
세조(수양대군)에게는 공주 하나가 있었다. 공주는 계유정난으로 인해 조정은 물론 왕실에 피바람이 부는 것을 목도하면서 왕실 생활에 염증과 회의를 느꼈다. 그는 제발 그만하시라며 아버지를 설득했지만, 도리어 아버지의 노여움만 부추길 뿐이었다. 부녀관계가 악화될 것을 염려한 정희왕후 윤씨는 공주에게 유모를 붙여주고 재물을 쥐어주면서 멀리 도망가도록 했다. 왕후 윤씨는 공주가 사망한 것처럼 위장했다.


충청도 보은군에 당도한 공주와 유모는 길에서 우연히 어떤 청년을 만났다. 길가에 앉아 쉬고 있는 두 여인에게 청년이 접근한 것이다. 두 여인이 계유정난을 피해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청년은 자신도 그런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모는 셋이 함께 살자고 제안했고, 청년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세 사람은 산속 토굴에서 동거하게 되었다.

며칠 후 유모가 보물을 주면서 팔아달라고 부탁하자, 청년은 "이것은 모두 궁중 물건인데, 할머니께서는 이것들을 어디서 구했습니까?"라고 물었다. 유모는 아무것도 따지지 말고 그냥 팔아달라고 당부했고, 청년은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그냥 팔았다.  

1년 정도 동거하는 사이에 유모를 뺀 두 남녀 간에 애정이 생겨, 둘은 결국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 그제야 청년은 공주에게 계유정난 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고, 유모는 공주를 대신해서 자신들의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청년은 울음을 터뜨리면서 자기는 김종서의 손자라며 집안에서 자기 혼자만 난리를 피해 도망했다고 말했다.

이런 기막힌 인연을 계기로 두 남녀의 정은 한층 더 깊어지게 되었다. 나중에 이들의 존재를 확인한 세조가 모든 것을 다 용서할 테니 한성으로 올라오라고 명령했지만 두 사람은 신분을 숨긴 채 어딘가에서 살았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줄거리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저자인 서유영은 끝부분에서 자신이 이야기를 들은 경위를 소개했다. 그는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 승지(임금의 비서) 박승휘라고 했다. 자신이 이야기를 문서화하여 임금에게 보고하려 하자 박승휘가 "근거가 없다"고 가로막았다면서, 그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둘의 러브스토리에 감탄하기엔, 허점이 너무 많다

무심코 읽다 보면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가 정말 기막힌 사랑을 했구나 하고 감탄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이야기 속에 허점이 많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첫째, 세조에게 공주 하나가 있었다고 한 대목. 공식문서 상으로도 세조에게는 딸이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조선 왕실의 족보인 <선원계보기략>에서는 세조의 딸인 의숙공주(懿淑公主)를 두고 "익대좌리공신 하성부원군 정현조에게 시집갔다"고 했다.

 세조의 딸 의숙공주에 관한 <선원계보기략>의 기록. 의숙공주가 본문에 인용된 정현조에게 시집갔다는 내용이 붉은 사각형 안에 기록되어 있다.
세조의 딸 의숙공주에 관한 <선원계보기략>의 기록. 의숙공주가 본문에 인용된 정현조에게 시집갔다는 내용이 붉은 사각형 안에 기록되어 있다. 김종성
왕실 족보만 놓고 보면 수양대군의 딸이 김종서의 손자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제1해석). 하지만, 수양대군에게 또 다른 딸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 딸이 정말로 김종서의 손자와 결혼했다면 왕실에서 그의 이름을 '호적'에서 빼버렸을 수도 있다(제2해석).

그런데 수양대군에게 딸이 하나 있었다고 <금계필담>이 아예 못을 박아 놓았기 때문에 제2해석의 신빙성은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민담의 전승과정에서 '공주 여럿'이 '공주 하나'로 와전되었을 수도 있으므로, 어느 쪽이 맞다고는 확단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둘째, 청년의 진정성 여부. 두 여인이 "우리는 계유정난 때문에 피난 왔다"고 하자 청년도 "나도 그래서 왔다"고 똑같이 대꾸한 대목, 결혼식 후에 유모가 "이 분은 공주"라고 밝히자 청년도 "나는 김종서의 손자"라며 비슷하게 대꾸한 대목을 음미해보자.

난리 통에 객지에서 만난 청년이 들려준 이 같은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한번쯤 진실성을 의심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더군다나 두 여인은 보물을 소지하고 있었고 청년은 토굴에 살고 있었지 않은가.

한편, 유모가 보물을 내놓자 청년이 "이것은 모두 궁중 물건"이라고 대꾸한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방에 사는 하층민이 궁중 물건을 식별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므로, 청년이 궁궐과 인연이 있는 고위층 자제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청년의 진정성 여부는, 이 글만 갖고는 무어라 판단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긍정하기도, 부정하기도 힘든 '공주의 남자'

셋째, 서유영이 이야기를 수집한 경위. 이야기를 들려준 박승휘는 철종 때 승지를 지내고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이 점만 놓고 보면 이야기의 신빙성이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유영이 이 사실을 임금에게 보고하려 하자 박승휘 본인이 "근거가 없다"며 가로막은 사실은 박승휘 자신도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확신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점은 이야기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무엇보다도, 서유영은 <금계필담> 서문에서 이 책의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면서, 진짜와 가짜가 각각 절반은 될 것이라고 주의를 줬다. 이렇게 진위 여부가 불확실한 경우에는 별도의 보강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일단은 신뢰하지 않는 게 최선책이다. 제3의 문헌에서 이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한, 일단은 신뢰를 보류해두는 게 가장 타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완전히 거짓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계유정난이 있은 15세기부터 <금계필담>이 집필된 19세기까지 이 이야기가 민간에서 지속적으로 전승됐다면, 어느 정도의 근거가 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긍정하기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부정하기도 힘든 이야기인 것이다.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 간에 이루어졌다는 러브스토리는 위와 같이 그 진실성을 명확히 판단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기는 느낌은 '긴가민가', '아리송'이다.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아닌가는 독자들 스스로의 판단에 달려 있다.
#공주의 남자 #수양대군 #김종서 #금계필담 #서유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5. 5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