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의 딸 의숙공주에 관한 <선원계보기략>의 기록. 의숙공주가 본문에 인용된 정현조에게 시집갔다는 내용이 붉은 사각형 안에 기록되어 있다.
김종성
왕실 족보만 놓고 보면 수양대군의 딸이 김종서의 손자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제1해석). 하지만, 수양대군에게 또 다른 딸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 딸이 정말로 김종서의 손자와 결혼했다면 왕실에서 그의 이름을 '호적'에서 빼버렸을 수도 있다(제2해석).
그런데 수양대군에게 딸이 하나 있었다고 <금계필담>이 아예 못을 박아 놓았기 때문에 제2해석의 신빙성은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민담의 전승과정에서 '공주 여럿'이 '공주 하나'로 와전되었을 수도 있으므로, 어느 쪽이 맞다고는 확단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둘째, 청년의 진정성 여부. 두 여인이 "우리는 계유정난 때문에 피난 왔다"고 하자 청년도 "나도 그래서 왔다"고 똑같이 대꾸한 대목, 결혼식 후에 유모가 "이 분은 공주"라고 밝히자 청년도 "나는 김종서의 손자"라며 비슷하게 대꾸한 대목을 음미해보자.
난리 통에 객지에서 만난 청년이 들려준 이 같은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한번쯤 진실성을 의심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더군다나 두 여인은 보물을 소지하고 있었고 청년은 토굴에 살고 있었지 않은가.
한편, 유모가 보물을 내놓자 청년이 "이것은 모두 궁중 물건"이라고 대꾸한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방에 사는 하층민이 궁중 물건을 식별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므로, 청년이 궁궐과 인연이 있는 고위층 자제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청년의 진정성 여부는, 이 글만 갖고는 무어라 판단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긍정하기도, 부정하기도 힘든 '공주의 남자'셋째, 서유영이 이야기를 수집한 경위. 이야기를 들려준 박승휘는 철종 때 승지를 지내고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이 점만 놓고 보면 이야기의 신빙성이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유영이 이 사실을 임금에게 보고하려 하자 박승휘 본인이 "근거가 없다"며 가로막은 사실은 박승휘 자신도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확신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점은 이야기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무엇보다도, 서유영은 <금계필담> 서문에서 이 책의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면서, 진짜와 가짜가 각각 절반은 될 것이라고 주의를 줬다. 이렇게 진위 여부가 불확실한 경우에는 별도의 보강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일단은 신뢰하지 않는 게 최선책이다. 제3의 문헌에서 이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한, 일단은 신뢰를 보류해두는 게 가장 타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완전히 거짓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계유정난이 있은 15세기부터 <금계필담>이 집필된 19세기까지 이 이야기가 민간에서 지속적으로 전승됐다면, 어느 정도의 근거가 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긍정하기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부정하기도 힘든 이야기인 것이다.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 간에 이루어졌다는 러브스토리는 위와 같이 그 진실성을 명확히 판단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기는 느낌은 '긴가민가', '아리송'이다.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아닌가는 독자들 스스로의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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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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