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 동굴속의 탱고 (81)

81. 은빛 한줄기

등록 2011.08.08 16:12수정 2011.08.0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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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레나는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 찬란한 실버 라이트의 향연을 뚫어져라 응시했고, '흰갈매기' 역시 두 눈 잔뜩 힘을 준 채 그 빛의 어른거림을 향해 열심히 노를 저었다. 그리고 어두운 물빛과 대비되어 그 찬란한 밝음은 눈을 바로 뜰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큰 광채를 뿜어내며 우리 앞으로 점점 다가왔다. 이윽고 우리가 탄 조각배가 둑 같은 곳에 닿았을 땐 한 남자가 빛을 등진 채 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들어오시오."


'흰갈매기'가 남자에게 뭐라고 속삭이자 그는 눈을 들어 우리를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지독한 거구의 우리과 노 교수 같은 외모를 가진 그는 굳게 닫힌 철문을 지나서 터널같은 내부로 모두를 안내했다. 그러자 말 잘 듣는 유치원생들이 낯설고 장엄한 곳으로 견학 온 것 처럼 다들 고분고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연이어 뒤쪽에서 아주 미묘하게 철컹하는 소리가 낮게 울려퍼졌다. 내가 살며시 뒤돌아보았을 때 철문 밖에서 자물쇠를 잠그던 그 남자는 가늘게 눈을 떨더니 이내 등을 돌려 버렸다.


우리는 발자국 소리를 울리며 터널 깊숙이 걸어들어만 갔다. 천장에선 이따금 물방울이 하나둘 콧등 위로 떨어졌고, 더 이상 어쩌랄 수도 없이 땅으로 내리꽂혔다. 꽤 지루하고 긴 거리였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걸음을 멈추지도,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게다가 다들 뭔가에 홀린 듯이 멍한 눈을 하고선, 저앞으로 한걸음씩만 더 갈 수만 있다는 것에 지극한 만족을 느끼는 느낌이었다.


어느틈에 파도의 철썩거림이 정신을 번쩍들게 하더니 곧이어 시원한 공기가 터널 안을 가득 메웠다. 아마도  바다 쪽으로 꽤 깊이 들어온 게 분명했다. 그리고 터널 옆으로 마치 방 처럼 하나씩 차지한 공간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로 '흰갈매기'는 우릴 이끌었다. 거기엔 그 미국인 동성애커플의 이름이 적힌 팻말이 가지런히 붙어있었다. '흰갈매기'는 거기에 놓인 이동식 침대를 날렵하게 움켜쥐더니 힘차게 끌기 시작했다. 침대는 광목 천으로 감싸 있었는데, 제법 묵직한 걸로 보아 두 구의 시체가 그 위에 함께 누워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나오기로 했어."


우리는 다같이 시신이 든 이동 침대를 끌며 바다를 향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급격히 라디오를 켠 듯 파도 소리가 확 밀어닥쳤다. 곧이어 수초 냄새가 코를 뜷고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흰갈매기'는 더욱 잰 걸음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다들 뜻도 모른 채 발에 힘을 주고 그와 호흡을 맞춰 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맞은편 터널 저 끝에서 사람 그림자 하나가 우리 앞으로 점점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저기 오는군."


그러자 문제의 상대는 들고 있던 플래쉬를 슬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정확히 보았다. 그건 다름 아닌 오빠였다.


"왜...왜?"


나는 얼결에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그런데 그는 더 가까이 다가오진 않았다. '흰갈매기'는 손을 번쩍 들어서 흔들었다.

 

<계속>

2011.08.08 16:12ⓒ 2011 OhmyNews
#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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