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10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 100주당 1주의 주식배당을 들어 '경영상의 긴박한 이유'가 없었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잘 못 본 것이다. 사실 나에게도 이 주식배당은 수수께끼였다. 그래서 일단 배당 행위와 시점만을 문제 삼았다. 그런데 김기원 교수 등 기업 회계 지식이 있는 분들이 이 수수께끼를 해명해 주었다. 이것은 대차대조표상 이익잉여금을 자본금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익잉여금은 여태 난 이익의 합계액에서 배당한 금액을 뺀 것으로, 현금(여윳 돈)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설비투자에 써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조남호가 정리해고를 선포해 놓고 170억 원 현금 배당 잔치를 한 것은 아니며, 회사 입장에서도 현금 유출(특히 대주주에게)은 거의 없었다. 2010년 한진중공업은 (건설부문의 실적 악화가 주된 요인이긴 하지만) 어쨌든 570억 적자였다.
여기서 100주당 1주의 주식배당을 할 밑천인 이익잉여금이 있었기에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주장도 틀린 주장이지만, 570억 적자였기 때문에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주장도 틀린 주장이다. 사실 영도조선소의 문제는 한진중공업 문제와는 다른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건설부문과 조선부문이 있고, 조선부문에는 영도조선소와 100% 출자한 자회사인 수빅조선소가 있다. 손익은 이들의 합계(지분평가 포함)이다. 조선업은 일반적으로 선박 수주 후 인도까지 2~3년이 걸리며, 선주는 선사에게 대체로 계약과 함께 10%, 선박의 조립경과에 따라 10~15%을 3회 정도에 걸쳐 지급하고 인도 완료와 함께 잔액을 지급한다. 이것이 수빅조선소나 영도조선소의 손익에 반영된다.
그러므로 영도조선소는 지난 3년 동안 한척의 배를 수주하지 못했어도 기존 수주 물량을 가지고도 이익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 몇 년은 적자 행진이 불을 보듯 뻔하다. 건설부문과 수빅조선소가 장사가 잘 되서 한진중공업 전체로는 흑자가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도조선소는 갑자기 수주 사태가 나서 계약금이 뭉텅이로 굴러들어오는 기적이 생기지 않는 한 적자 행진은 피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2009년 이후 영도조선소에 일감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것치고는 적자 폭이 적은 것은, 일감이 줄어들면 자동으로 정리할 수 있는 협력업체와 임시, 일용직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영도조선소의 특성과 2008년 이후 조선·해운 시장의 동향 등을 종합하면 영도조선소의 구조조정은 2010년 12월 20일에 갑자기 선포된 것이 아니다. 실제 2009년부터 사무관리직· 협력업체 직원· 임시일용직 등 천수 백 명을 정리해 왔다. 임원· 사무직 등의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도 있었다. 일감이 많이 줄어든 것이 확연하고, 향후 더 줄어들 가능성이 눈에 뻔히 보였기에 노사 간에 물밑에서 직영(정규직)의 희망퇴직도 논의 되었다고 한다.
물론 노사 간 합의가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결국 2010년 12월 20일 회사가 일방적으로 400명 '희망퇴직' 공고를 냈고, 당연히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 중 230명이 최대 22개월치 퇴직위로금 및 자녀 2명까지 대학학자금 전액 지원 등을 조건으로 희망퇴직에 응했고, 불응한 노동자 170명이 2월 17일 정리해고 되었다.
김진숙 위원은 지난 1월 초 '85호크레인'에 올라가 지금까지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노조는 6월27일 투쟁 종결을 회사와 합의하였고, 약 30여 명의 정리해고자들이 추가로 희망퇴직에 응했다. 희망버스는 김진숙 위원의 헌신적 투쟁과 정리해고의 부당성에 공감한 사람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직되었다. (1차 6월11, 2차 7월9일, 3차 7월30일)
우리나라 노동법에 명문화되어 있는 정리해고의 법적 요건은 1)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2)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자 선정기준, 3) 근로자대표와의 성실 협의, 4) 해고 회피 노력 4가지다. 그런데 기업 전체적으로는 위기가 덜해도, 영도조선소처럼 그 덩치 큰 사업부가 일감이 없어 '돈 먹는 하마'가 되어, 조만간 기업 전체가 크게 위기에 봉착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는 좀 엄격하게 해석하긴 하지만, "경영합리화"나 "도산회피"를 위한 정리해고도 인정한다. 그래서 영도조선소 정리해고가 올해 5월 초에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서 인정(해고 구제신청 기각)된 것이다.
김희경식 주장대로라면 '일제가 한국의 번영 가져왔다'는 논리도 가능셋째, 골리앗 투쟁 등 "노동자의 극한투쟁이 역설적으로 현대중공업의 경영혁신을 추동하고 경쟁력 있는 세계기업으로 변신" 시켰다는 주장, 한진중공업은 "기술개발이 아니라 '후진적 노동억압'을 선택"해서 지금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주장 등은 솔직히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 내가 근래 들어 본 견강부회 중에서 가장 심한 것이기 때문이다.
확신컨대 노동자의 극한투쟁이 오늘의 현대중공업을 만들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당사자인 현대중공업 노조조차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2004년 민주노총으로부터 제명을 당했는데-그 전 오랫동안은 사실상 탈퇴 상태였다-이를 근거로 민주노총식의 투쟁 노선을 탈피해야 세계적 기업이 가능하다는 논리도 성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주장은 최소한 김희경씨 주장보다는 천배는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기업 경쟁력 요소의 다양함을 감안하면 이 역시 침소봉대한 주장이겠지만, 아무튼 김희경식으로 사실왜곡과 견강부회를 하면 우리의 모든 번영이 일본 식민통치나 김일성 때문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최소한 이 주장보다는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때문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할아버지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의 예를 일반화 하면, 자식을 내팽개친 개차반 아버지가 위대한 사람을 만든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 같다. 평소 논리적이고 냉철한 분들이 왜 이렇게 황당한 논리를 펼치는지 깊이 성찰해 봤으면 한다.
북유럽 유연안정시스템의 토대는 '노동 내 작고도 합리적인 격차'넷째, 덴마크 노동자들은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 기뻐한다"는 주장도, 덴마크가 만든 유연안정시스템-최대 4년치를 보장하는 실업수당과 튼실한 재교육, 재취업 시스템 등-이 해고에 대한 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사실왜곡과 견강부회가 보통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 않다. 어쨌든 김 기자는 덴마크의 유연안정시스템이 어떻게 가능했고, 한국은 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묻고 있다.
내가 연구한 바로는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에서 작동하는 유연안정시스템의 핵심 토대는 노동 내 작고도 합리적인 격차다. 이것은 OECD, WHO, ILO 등 국제기구가 생산한 통계를 통해서, 다양한 직능·직업·산업·부문·기업(규모) 별로 노동자들의 처우를 1인당 GDP의 배수로 환산해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1인당 GDP의 2~5배를 받는 직능·직업들이 덴마크에서는 1~2배를 받는다. 또 원청이든 하청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이익 많이 내는 기업이든 적게 내는 기업이든, 공공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노동의 양·질이 같으면 처우가 거의 같다. 성과·능력에 따른 격차는 분명히 있지만 한국·미국·중국만큼 심하지 않다. 이는 사민주의 정당과 정의로운 노조의 합작품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이는 자본의 이해관계와도 상당 정도 부합된다. 그 결과 고용률이 70%이상(우리는 60% 초반)이고 임금 근로자 비율도 90%이상(우리는 70%에도 못 미친다)이며, 전반적으로 사회가 평등하고 공평하다. 합리적이라는 얘기다. 격차 구조가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있을 수 없다. 고입·대입경쟁도 치열할 수 없다. 사교육도 있을 수 없다. 덴마크에서 정리해고 결사반대 투쟁이 없는 것은 사회안전망도 튼실하긴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기존의 근로조건과 비슷한 수준으로 재취업이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대기업·공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정리해고 되면 평생 가도 그렇게 좋은 직장을 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낙차가 큰 만큼 저항이 극렬하고, 떨어져 나오면 그 충격으로 자살·정신이상·가정파탄 등이 속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협력업체 직원이나 비정규직은 사회안전망에 관한 한 더 열악함에도 불구하고—4대 보험도 못내는 사람이 많으니— 낙차가 적기에 해고나 실직의 충격을 그렇게 심하게 느끼지 않는다. 실제 기존에 다니던 수준의 직장을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영도조선소에 다니다가 일감이 없어서 잘려나간 비정규직과 협력업체 직원들은 잘려도 사회적 관심도 못 받고, 퇴직위로금도 없고, 정리해고 철폐 투쟁도 할 수 없는 "2등 국민" 신세를 한탄은 하지만, 어쨌든 해고·실직의 충격을 재빨리 수습하고 직장을 옮겨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직원으로 재취업한다.
한손으론 일자리 학살, 한손으론 일자리 창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