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추심절차
유통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물건을 파는 것보다 수금하는 일이 더 힘들다. 유통업 실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용거래(외상거래)를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상거래 특히 도매업자와 소매업자 간의 상거래는 신용거래가 일반화되어 있다. 나 혼자 '외상 사절, 현금 거래'만 고집한다는 건 시장을 떠나야 된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도매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소비자나 관공서에 납품하고 나서 돈을 주겠다는데 이를 거절하기 쉽지 않다. 물론 처음부터 외상거래를 하지는 않는다. 처음에 현금거래를 하면서 신용이 쌓이고 거래가 많아지면 외상거래가 늘어나는 것이다.
떼인 돈 때문에 주변 많은 상인들이 경찰서에 찾아가 고소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고소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민사소송을 강요받는다. 경찰측의 주장은 처음부터 돈을 주지 않으면 '사기죄'에 해당되지만 수차례 거래를 하면서 발생한 미수금은 거래 당사자 간의 금전거래이며 돈을 떼어 먹을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형사사건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판단의 근거가 현재 상거래로 보면 부당한 측면이 있다. 누가 처음부터 외상거래를 하겠는가? 당연히 현금거래로 시작해서 외상 거래를 하고, 거래가 많아지면 많은 물건을 외상으로 가져간 뒤 도주하는 것이 비일비재한 현실인데, 거래가 이루어지다가 발생한 미수금 사건은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니 법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큰 것이 아닌가?
TV나 신문을 보다보면 불법 추심에 대한 문제가 많이 보도된다. 감금, 폭행, 장기매매 듣기에도 끔직한 이런 사건을 보다 보면 채권자와 불법추심업체의 잔혹한 면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야간추심 금지, 밤에 전화로 독촉하는 일의 금지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만들어 채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법제화하려고 노력중이다.
물론 올바른 일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인권을 유린하고 채무자에게 신체적 물리적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내가 채권자의 입장에 서보면 채무자가 전화 안 받고 시쳇말로 '배째라'식으로 나오면 불법추심업체에 의뢰라도 하고픈 충동이 생기는 것이 어쩔 수 없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속담이 있다. 주먹이 가까운 줄은 모르겠지만 법은 확실히 서민들에게 너무 멀리 있다. 이제는 수업료 많이 내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지만 처음 법원의 문턱을 넘었을 때는 서류 한 장 꾸미는 데 몇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무엇을 물어봐도 법원은 일방을 위한 상담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변호사나 법무사를 찾아 가란다.
변호사나 법무사는 수임료로 내가 받을 외상값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 수백만 원 소액 외상대금은 법무사에서 쳐다보지도 않는다. 경찰서에서는 민사사건이라고 고소 접수 안 된다고 하고, 법원에서 서류 잘못 되었다고 몇 번 퇴짜 맞고, 변호사나 법무사를 찾으면 수백만 원 수임료 요구하고, 이렇게 한바퀴 돌고나면 받을 돈 포기하거나 불법추심업체를 노크할 수 밖에 없다.
채무자는 보호받을 사람이고 채권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맞지않다. 고의로 부도를 내고, 받을 수 있으면 받아 보라고 막무가내인 채무자가 너무 많다. 채무자가 보호받을 권리는 인권의 권리이지 채무 자체는 아니다. 또 채권자는 당당히 돈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호해야 한다.
문제는 법의 정의와 형평성 문제이며 법의 용이(容易:어렵지 아니하고 매우 쉽다)함과 접근성의 문제다. 불법 추심업체가 판 칠 수 있는 것도 법보다는 주먹이 빠르고, 법의 절차를 통한 해결보다 다른 방법이 용이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의적인 악성채무 형사사건으로 다루고, 소액사건 법률 자문 받을 수 있었으면소규모 자영업자로서 시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고의부도나 미수금 미청산 폐업 문제를 겪어 오면서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선 소비자와의 거래는 관두고서라도 상인들 간의 거래 즉, 사업자 간 세금계산서를 주고 받은 정당한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악성채권이나 고의부도 사건은 형사사건으로 다뤄 달라는 것이다.
수차례 거래로 신용을 쌓아 많은 물품을 외상구매 후 도주하는 것은 사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 충분한 여력이 있는데도 '받을 수 있으면 받아보라'식으로 수년째 대금지금을 거부하는 것도 사기라고 볼 정황은 충분하다. 사업자 간 이뤄지고 있는 거래에서 '사기죄'를 좀더 폭넓게 해석하여 대체한다면 소액 미수금으로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소액사건(법률상 2천만 원 이하의 소송사건)에 대해 법률 자문과 도움을 받을 수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소액사건의 경우 변호사나 법무사는 아예 사건 수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렇다고 불법 추심업체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찾아가 무료나 실비로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영업자 법률 지원센터가 있었으면 한다.
서울만 보더라도 많은 도매상가들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대형마트와 쇼핑몰에 예전 명성을 내어주고 있다. 그 대형 자본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들. 법과 국가가 그들의 편에 서서 고의 부도와 악성 채무 문제만이라도 손쉽게 해결할 길을 열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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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한곳이 튀었습니다, 천만 원 물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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