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를 이야기하다 - 1

"대학로의 수직적 권력 구조"

등록 2011.08.23 14:56수정 2011.10.0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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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혹은 공연계)라는 한 사회가 있습니다. '대학로' 라는 지역기반을 가진 그 바닥은 우리사회 '문화계'의 중요한 축입니다. 전체를 온전히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바닥의 면면을 살펴보면, 연극'업계' 혹은 공연을 주로 하는 어떤 사회의 문제적 구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마리를 풀기에 앞서 지금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가 꼭 일반적인 경우가 아닐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 발화의 목적은 어떤 대상을 비판하고 교정하려는 게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문화계 구조를 알아보고자 함이며, 협소한 문화 담론 가운데 하나를 보태는 정도가 되고자 함입니다. 이야기는 대학로에서 홍대로, 기성세대에서 젊은 세대로, 상품에서 생명으로 그리고 중심에서 변방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자칫 후자가 정답이고 해결책이라는 논리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지양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만 해결 가능한 문제와 불가능한 문제를 분리하고, 개인 각자 혹은 우리 스스로가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비난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안을 떠올려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 좁다는 연극계 안에서도 계급이 나뉜다면

 

우리는 대학로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젊은 아이들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연극인이라면 그 호객행위가 사라지길 고대하지요. 마주칠 때마다 짜증과 무시에 가까운 투로 그들을 상대할뿐더러, 그 존재자체를 매우 수치스러워합니다. 저런 것들은 좀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지요. 그들은 고등학생에서부터, 대학교 신입생 그리고 막내 신입배우에서부터 연극 지망생 등일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참 열심입니다. 공연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열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그 열정은 과연 무엇일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이 호객행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거나, 큰 즐거움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 아이들에게 전단이 쥐어지는 대신 대본이 쥐어지고, 그들이 선 곳이 홍보 공간인 '길바닥' 이 아니라 창작 공간인 '무대' 라면, 그들의 열정이 그런 식으로 소비되거나 무시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겠지요. 그들이 대본을 받아보게 되는, 혹은 그들이 무대를 서게 되는 순번 말입니다.

 

막강한 자본과 대중매체로부터 소외당하고, 연극계가 어렵다고 다들 아우성인 가운데, 동종업계 사람들에게조차 괄시받는 그들이야말로 정말 어렵고 소외당한 이웃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관점에서부터 대학로의 '권력' 구조를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종종, 연극을 매매하는 행위자나 이를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관객들을 문제로 삼아 과도한 상업성을 질타합니다. 여기서는 소비자이며 생산자인 젊은이들의 열정과 관심을 그저 별볼일 없고 수치스런 행위로 바라보는 권위적인 시선의 작동을 감지할 수 있지요.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열정을 담보로 자발성의 탈을 씌운 호객행위의 명령자인 상위 계층과 호객행위 자체를 매우 불순한 것으로 치부해온 또 다른 권력 계층일 수도 있습니다. 재차 강조하자면, 이러한 문제의식은 특정 계층에 대한 비난으로 가고자 하는 바는 아닙니다. 권력은 어떤 사회가 지탱되기 위해 받아들여야만 하는 안정성의 조건이며, 또한 동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타당한 개념이니까요.

 

 대학로에는 100여개가 넘는 소극장이 있다
대학로에는 100여개가 넘는 소극장이 있다 정진세
대학로에는 100여개가 넘는 소극장이 있다 ⓒ 정진세

 

대학로는 크게 상업 권력과 문화 권력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상업 권력은 일단 다수의 '공간'과 '자본'을 가진 계층입니다. 대중극장의 실소유주들, 이윤을 추구하는 연극의 제작자들과 투자 집단입니다. 문화 권력은 소수의 '공간' 과 유능한 '인력' 그리고 '미적(혹은 법적) 권위'를 가진 세력입니다. 예술극장의 관리자들, 예술성을 추구하는 연극의 제작자들과 지원금을 분배하는 정부 혹은 민간 재단입니다. 예술성과에 대한 평가와 사업의 분배에는 심사자들의 결정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심사 관계자도 권력자라 할 수 있습니다. 

 

권력 혹은 계층, 세력이라는 말에는 분명 부정적인 늬앙스가 깔려있습니다. 결국 상업권력이든 문화권력이든 이를 갖지 못한 세력, 혹은 철저하게 배제된 집단 혹은 개인으로부터 의혹과 견제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간 대학로의 상업 권력을 지겹도록 비난해왔습니다. 상업성이면 마냥 나쁜 것이고, 연극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며, 순수 예술은 상업예술과 꼭 충돌해야만 하는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과거에는 그랬지만, 현재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그러한 논리가 각각 상업 권력과 문화 권력의 입지를 강화해주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서로 미워할수록 그 존재감만 키워주는 것이지요. 그 와중에 관객은 어떤 입장을 강요받습니다. 관객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내가' 좋은 공연일텐데 말이지요.

 

무대위에 설 수 있는 힘이 바로 '권력'

 

'권력' 즉, 힘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에 대한 '힘'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힘'은, 어떤 정치적인 우위라기보다는, '공연력'입니다. 쉽게 풀어 말하면 창작자 입장에서는 무대 위에 설수 있는 힘이며, 제작자 입장에서는 공연을 만들 수 있는 힘입니다. 수용자의 입장에선, 공연과 만나는 힘입니다. 현장에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장르의 특성상, '공연' 은 현장인들에게만 그 권력을 허락합니다.

 

권력이 지속되는 메카니즘을 살펴보면, 대학로 내의 상업권력은 자본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오랜기간 비슷한 공연을 무대에 올립니다. 문화권력은 그들이 가진 예술극장과 우수한 인력, 그리고 미학적 인정을 바탕으로 짧지만 여러 공연을 무대에 올립니다. 무대에 자신의 작품을 올리고 있는 '그들' 이 연극계에서 그 존재감을 인정받고, 존재감이 더해질수록 권력은 점차 자리잡아 갑니다.

 

아까 대학로의 호객행위를 하는 존재들을 다시 떠올려 볼까요. 이들에게 권력은 아주 먼 얘기입니다. 즉, 이들에게 주어진 공연력이란 것은 아예 없거나, 매우 희박한 것이지요.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대학로에서 수많은 무대 예술가는 모두 자신의 무대를 갖고자 합니다. 그러나 대학로라는 좁고 한정된 공간에서 발휘되어야할 공연력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럴 경우 기존의 문화권력자 혹은 상업권력자에게 그 공연력은 우선적으로 돌아갑니다.

 

어떠한 사회든지 간에 그 사회의 유지 존속을 위해서는 이를 지탱하는 상당수의 구성원이 생물학적 및 심리학적 욕구를 최소한 충족시켜줘야 하겠지요. 또한, 상호간의 각자 다른 활동들과 이해관계가 조절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개별과 집단의 상호작용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것이 바로 '제도' 입니다. 그러나 대학로의 제도는 젊은이들에게는 상당히 가혹합니다. 일견 민주적인 제도와 절차인 듯 보이지만, 상당한 억압과 소외가 존재합니다. 본질적으로 상대적이고 경쟁적인 예술주의와 자본주의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억울한 면이 있어 보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공연력의 불균형한 분배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기인할 것입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내에 있는 노천 극장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내에 있는 노천 극장 정진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내에 있는 노천 극장 ⓒ 정진세

 

실상 대학로의 젊은 창작자들은 연극활동 참여에 비해 발언권이 적습니다. 보수없이 노동은 할 수 있지만,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지금의 구조는 젊은이들에게 박탈감과 부자유함을 가중시킵니다. 결과적으로 젊은이들은 현재의 권력 구조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이에 편승하는 전략을 펼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학로는 아주 교묘한 현실논리가 다층적으로 작용하는 공간입니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침묵과 인내로 내면화를 강요당합니다(그리고 그 어떤 누구도 권력을 갖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분명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쉽게 공연을 하고, 누군가는 아예 공연을 하지 못한 채 역할도 없이 사라집니다. 공연력이 희박한 젊은이들은 작품을 어떻게 만들까, 관객과 어떻게 소통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를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고민하게 되겠지요.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기 보다는, '일반적으로' 괜찮은 작품을 만들게 되고, 더 나아가 공연력을 보장받는 안전한 공연으로 방향이 잡게 될 것입니다. 혹은 공연 만들기에 쏟아야할 에너지를 권력유지나 입지를 굳히는데 쓸지도 모릅니다. 다른 한편으로, 아예 인정조차도 받지 젊은이들은 자기의 작품 세계를 포기하고, 다른 분야로 방향 전환을 하기도 합니다. 더 이상 어떤 열정을 가질 수 없으니까요.

 

시작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무대는 어디일까

 

물론 대학로가 희망이 없다거나, 연극계가 위기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논의를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혁명을 일으켜 제도를 전복하고, 권력을 축출하자는 선동적인 수사도 아닙니다. 대학로는 여전히 하루에도 백 개 이상의 공연이 오밀조밀하게 올라가는 축제와도 비슷한 공간이고, 어쨌거나 젊은이들과 기성세대가 협심해서 한 마음으로 공연을 만들고 있습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치 아래 살아남은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앞으로 대단한 연극을 만들 가능성은 분명 높습니다(아마도 그들이 미래의 대학로 권력을 나누어 갖게 되겠지요).

 

이야기의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현대 연극의 특성 중에 다양성이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지금의 공연들은 지난 7, 80년대와는 다르게 집단 이념적 정치 행위보다는 개인(협동)신념적 미학 행위의 실천물입니다. 우월한 존재로부터, 중심의 권력으로부터 생성되는 결과물이었던 '공연 만들기'에서, 평등한 존재"들" 로부터 여러 가지의 작품이 양산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물론 미학적으로, 상업적으로 우열은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가늠의 기준을 문화적 혹은 상업적 권력이 아닌 오로지 관객에게 넘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무수한 공연에는 각각 '격'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동물이, 무생물이, 기계가 이를 받아주는 인간으로부터 호명을 당하고, 관계를 맺으면 그 자리에서 명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름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공연들은 그 자체로 생명을 얻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소수의 관객들에게 의미가 발견된다면, 존재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공연들은 꼭 대극장이나 소극장에서만 존재할 필요도 없고, 그 어떤 공간에서 명을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대학로의 구조는 상업적으로 뛰어나거나,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 사람 혹은 이를 만들 가능성이 큰 사람에게 그 힘을 나누어줍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관객들이 기능하기도 하고, 또한 심판자가 개입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메커니즘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분명 그 가운데 그러한 구조를 극복하고자 하는 창작자와 관객들도 있을 것입니다. 도저히 권력을 가질 수 없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발화를 해야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대학로의 연극 방식이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은 관객도 있을 것입니다. 구조에 희생당하거나 억압을 견디지 못한 창작자들이 있다면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고 젊음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도전일 것입니다. 자신이 잉태한 작품이 어떤 곳에서 생명을 얻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곳에서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조금은 복잡하고, 뜬금없는 논의로 시작했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학로의 구조는 분명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데가 있으며, 이런 구조 아래서 공연력이 없거나 약한 예술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더 나아가 자식 같은 자기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학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시각을 바꾸어 보면 공연계의 불평등한 권력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은 찾을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번에는 그러한 방법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대안적인 논의로서 '홍대 앞' 이라는 공간의 특징인 다양성, 자발성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본문에서 본의 아니게 편을 가르고, 어느 한쪽에 무게를 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어느 한쪽에 무게를 싣기 보다는 한명의 관객으로써, 예술을 향유하는 주체로써 냉정하게 현상을 인식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에 이은 2부 내용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2011.08.23 14:56ⓒ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에 이은 2부 내용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문화계 #공연 #대학로 #권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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