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너무 '기특'하게 보진 마세요

[기획-청소년 활동가] 청소년 활동가, 억압받는 존재가 현실을 바꾸다

등록 2011.08.31 17:33수정 2011.08.3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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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9일 부산으로 향하는 2차 희망버스 안이었다. 버스에서 서로 인사를 하는 와중에 앳된 얼굴로 자기를 소개하는 참가자를 만났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했다. 옆자리에 앉은 참가자는 같은 반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명동 재개발 3구역 카페 '마리'를 취재하다 만난 활동가는 청소년 단체에서 활동하는 19세 청소년이었다. 이처럼 청소년 활동은 사회 곳곳에서 개별적으로 혹은 청소년 단체를 통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과 경기에서 '진보교육감'과 연대하다

청소년 활동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방식은 학내에서 학생회 등을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학교와 교육 관계자 쪽에 전달하는 식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학생회를 조직, 학내 체벌사례를 학생회 차원에서 수집해 <학생회신문>에 실은 최훈민(16)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경기도와 서울시가 올해부터 각 학교 대표로 이뤄진 학생참여위원회를 꾸린 것도 이런 방식으로 청소년 활동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서울시와 경기도 교육청은 올해부터 각 지역 중·고교와 대안학교, 특수학교 학생대표로 구성된 학생참여위원회를 꾸렸다. 각 학교의 학급회의·대의원회의를 거쳐 수렴된 의견을 교육지원청별 협의회에서 논의하고 다시 이를 교육감과의 협의회에서 재논의한다. 지난 6월 2일 곽노현 교육감과 진행한 대화에서 서울시 학생참여위원회는 집중과목 이수제, 수행평가 의무제, 체벌금지와 생활평점제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지난 5월 28일에는 보신각 앞에서 강제보충야자 폐지, 학내 동아리연합회 신설, 수행평가 의무제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청소년 10대 요구'를 선언하고 이를 곽 교육감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서울시 학생참여위원회 서부 대표를 맡고 있는 박철욱 홍은중학교 전교회장은 "학생참여위원회로 청소년의 참여 기회가 확대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내 학생회의와 대의원회의에서만 논의되고 그나마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던 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교육 관계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셈이다.

이런 변화는 지난 교육감 선거 때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긍정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 활동가들은 교육감 선거 때부터 이런 결과를 위한 '사전 물밑작업'을 충실히 해왔다.


교육감 선거 당시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교육공동체 '나다', '청소년 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등 청소년단체가 모여 '청소년 연대'를 만들었다. 청소년 연대는 교육감 후보자 한 명 한 명에게 메일과 팩스로 질의서를 전달했으며 ▲ 학생인권조례 제정 ▲ 일제고사·자사고 폐지 ▲ 무상급식을 비롯한 무상교육 ▲ 선거권 연령 조정·청소년의 정치활동을 막는 법과 교칙 개정 등 교육감 후보들에게 바라는 정책 4가지를 발표했다.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요구를 받아들인 진보교육감이 또 다시 학생대표와의 소통의 길을 마련해, 학교-교육청으로 이어지는 아래로부터의 의견수렴이 가능해진 것이다.


등교도, 수능도, 대학서열도 반대한다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활동 포스터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활동 포스터아수나로
또한 학내 활동을 넘어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파고드는 청소년들도 있다. 바로 등교를 거부하고 수능제도와 대학서열 자체를 반대하는 청소년 활동가 집단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나 청소년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청소년 활동기반 조성모임 '활기', 청소년자유언론 오답승리의 희망 '오승희' 등이 대표적인 단체다.

청소년 활동단체 중 규모가 가장 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이하 아수나로)'는 전국 10여 개 지부에 회원 수만 9000여 명이고 조직 운영도 청소년이 직접 한다. 아수나로는 2004년 설립돼 현재까지 '저항하는 청소년'을 모토로 삼아 청소년 인권에 관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교육감 선거 당시에는 '학생들이 진정한 교육감'이라는 취지의 '레알 교육감' 운동을 하기도 했다.

"청소년 운동은 '나이'라는 위계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청소년 활동가 따이루씨의 말처럼 아수나로도 나이로 생겨나는 상하관계를 거부하기 위해 회원들 간에 '언니'와 '오빠'와 같은 호칭도 쓰지 않고 이름이나 별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어리다'는 이유로 청소년 문제를 논의할 때 정작 당사자인 청소년을 배제하는 사회에 일종의 일침을 놓는 대목이다. 전국에 지부를 둔 큰 단체라면 으레 있을 법한 '중앙지부'와 같은 중심개념이나 '지부대표'와 같은 직책도 없다. 이처럼 아수나로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단체를 지향한다.

최근 성공적으로 이뤄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주민발의도 아수나로 등 학외에서 활동하던 청소년 활동가들이 발로 뛰어 일궈낸 성과이기도 하다. 학교에 다니고 있는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던 일에 이들이 나선 것이다. 거리서명과 우편을 통한 서명 활동을 통해 지난 5월 당시 8만5000장, 6월에 추가로 2만5000장(무효표 포함)을 받아서 발의에 성공했다.

하지만 학외에서 일어나는 교육문제 활동이 학내 청소년 인권활동과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학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생인권 유린문제는 근본적으로 대학서열 문제와 같은 '학교 밖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자퇴를 하고 올해 수능거부 운동을 준비하는 따이루(18)씨나 민다영(18)씨도 학내체벌과 같은 학생인권 유린 문제를 겪고 학내 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청소년 인권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학내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고용문제, 대학서열 등 사회구조적 문제와 연관돼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퇴 후 본격적으로 수능과 입시제도, 대학서열 문제 등 학내 학생인권유린을 정당화하는 '교육'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교육문제를 넘어 노동문제, 철거문제, 여성문제 등 사회 현안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 활동가들도 있다. 10대 여성주의 온라인 커뮤니티 '깜', 청소년 노동 커뮤니티 '알리바바',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Rateen'와 같은 온라인 공간 외에도 '잡년행진'과 '희망버스' 등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의 현장에서 청소년 활동가를 만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청소년 활동가가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운동 풍토에도 변화가 생겼다. 명동 재개발 3구역 농성장인 카페 '마리'에는 청소년들 10여 명이 상주하고 있다. 싱싱함(18)씨는 마리에 오는 이유를 "친구들이 있고 재미있어서"라고 말했다.

기존 철거반대 운동이 철거사 쪽에서 고용한 용역·깡패와의 대치에 집중했다면 청소년과 청년들이 연대하는 홍대 '두리반'이나 카페 '마리'에서는 밴드 공연 등 문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청소년 활동가가 철거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생겨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촛불집회 때부터 사회활동 주체로 재조명"

 청소년 활동가의 현실을 보여주는 문답. 많은 청소년 활동가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청소년 활동가의 현실을 보여주는 문답. 많은 청소년 활동가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강유진
그렇다면 최근 청소년 활동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청소년 활동가들을 곁에서 지켜봐 온 박유리 진보교육연구소 사무국장은 "2008년 촛불부터 청소년 활동가 집단이 사회활동 주체로 재조명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청소년 활동가 집단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만 16세부터 18세 청소년들은 3년 전인 촛불집회 당시 중학생 나이였다.

이어 박 사무국장은 "촛불 때보다 2011년 현재 청소년 활동가 수가 줄었을지 모르지만 일제고사와 입시제도에 반대해 등교와 시험을 거부하는 등 직접적인 행동을 하고 교육문제를 넘어 비정규직, 차별 문제 등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변화의 움직임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촛불집회 때보다 청소년 활동가의 수는 줄었을지 모르지만 그 활동의 질이 깊어지고 넓어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청소년 활동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학교를 다니며 공부할 나이에 사회 참여를 한다고 이리저리 활동하는 것을 보면 어른들 대부분의 반응은 '어린 것들이 공부는 안 하고…'일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활동하는 진영 내에서도 어른 활동가는 청소년 활동가를 '어리다'며 무시하기 일쑤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어린 것이 기특하다'라며 아이를 바라보듯 애정 어린 시선으로 내려다볼 것이다.

하지만 박 사무국장은 청소년 활동가를 단순한 '기특하다'는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박 사무국장은 "공교육을 12년 동안 받는 청소년들이 교육·청소년 문제의 '또 다른 전문가'"라고 말한다. "청소년 활동가를 통해 '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것이 묵인되는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억압하는 존재가 아니라 억압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취재진이 만난 청소년 활동가들은 부모와 학교의 억압을 견뎌내고 활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활동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나가기 위해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발칙하면서도 묵묵하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강유진 문해인 손형안 기자는 <오마이 뉴스> 14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강유진 문해인 손형안 기자는 <오마이 뉴스> 14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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