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자유민주주의는 현대 민주주의의 여러 조류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이는 많은 현대사회과학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이다. 하나의 조류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수용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헌법과 그것에 기초한 초중등 교육 자체를 하나의 조류에 기초해서 정식화한다는 것 자체는 반헌법적이고 학문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민주주의를 국민적 합의로 만든 6월 민주항쟁에서 외쳐졌던 민주주의는 다양한 경제적 평등에 대한 요구, 미국 식의 자유민주주의만으로 협소화될 수 없는 유럽 식의 '사회적 시장'적 요소, 단순히 특정한 자유민주주의의 대의 기제로만 한정될 수 없는 폭넓은 국민적 참여에 대한 열망 등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었다.
나아가 사회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 등 급진적인 민주주의 지향도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를 현대 민주주의의 특정한 일개 조류인 '자유민주주의'로 협애화하려는 것이 (그것도 밀실에서) 바로 이번 개정 파동의 본질이다. 우리는 학자로서 자유민주주의적 흐름을 존중하되 그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여러 조류 중 하나로 다루어지는 것, 그리고 그러한 하나의 조류로 대한민국 헌법을 협애화하지 않는 것이 학문적으로나 헌법정신으로 보나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이번 개념 교체 시도가 심각한 이유는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말로써 강하게 주장하는 흐름(이 흐름이 이번 정당하지 못한 왜곡을 주도했다)들의 경우,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위에서 이야기한 '현재민주주의의 한 조류로서의 자유민주주의'보다도 훨씬 경직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반(反)자유민주주의'적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돌이켜 보면,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은 '민주' '자유'당이나 자유민주연합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나왔다. 분단 이후 한국에서 반북냉전보수주의자들이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적이었던 적이 없다. 그들 중 다수는 부시 이후 미국의 '네오콘'에 준하는 냉전반공반북적인 극단주의자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고전적인 자유민주주의자들과도 다르다. 나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자라고 말하는 집단 중의 많은 부류는 극단적인 반북냉전적인 네오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번 파동은 바로 그러한 네오콘적인 입장을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강요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원성과 다양성의 존중민주주의자로서 내가 이번 파동에서 심각하게 보는 이유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치환해 다양한 민주주의의 조류와 흐름, 경향, 지향들을 민주주의의 '외부'로 추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합리적 핵심은 자유와 자율의 존중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원성과 다양성의 존중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에는 다원성의 확장과 존중이라는 가치가 있다. 민주주의는 바로 이 다원성의 존중을 통해서 '적대적 갈등을 비(非)적대적 갈등'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교과서에서도 다양한 시각과 지향들이 드러나는 게 좋다. 단일한 '국사(國史)' 교과서를 상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검인정(檢認定)'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다시 획일화하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그들이 다원성과 다양성 대신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만을 유일하다고 강제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교과부 고시 파동의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파동은 네오콘에 가까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자들이 자신만의 자유민주주의관을 유일한 민주주의 해석으로 강제하고자 밀실에서 행한 '반(反)자유민주주의적 행위'라고 규정돼야 한다.
이러한 파동은, 이명박 정부 이후 뉴라이트세력들이 이전 정권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하에서의 다양성'을 '사회주의적인' 혹은 '친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왜곡된 자유민주주의로 그러한 불온한 흐름을 역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데서 나왔다. 그러나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필수적 구성요소인 다원성과 다양성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나는 우익 교과서가 나오는 것을 반대할 생각이 없다. 그것이 '교과서 시장'에서,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좌익' 교과서와 '경쟁'한다면 이견이 없다. 그것은 자유의 원칙에 부응한다. 그러나 그것을 국가기관이 예외없이 국민에게 강제하는 것은 자유의 원칙에 전적으로 반한다. 다양성과 다원성이 존중되는 속에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당한 교과서 채택 '경쟁'이 이루어져야지, 모든 교과서에 대해서 네오콘적인 지침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이번 교과부 고시 파동이야말로, 자신들의 사고를 행정의 힘을 빌려 모든 국민에게 강제하고, 모든 국민이 뉴라이트적인 교과서를 강제로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이 한국 보수의 현실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한국의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자들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보수의 혁신'이라는 각도에서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리버럴'은 협소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일부 언론은 마침 방한한 미국 학자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교수의 강연을 인용해 이번 사건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가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 발전(Developing Democracy)(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 Press, 1999)>에서 정작 주장하는 것은 선거를 포함한 민주주의적 제도를 도입하고 정착·공고화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리버럴(liberal) 민주주의' 단계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리버럴'의 핵심적인 함의는 협소한 자유민주주의로 획일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그 반대로 정치적·사회적 다원성의 확대와 공존, 그러한 문화의 정착이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를 넘어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그와 또다른 모리노(Morlino)라는 학자가 같이 편집한 <민주주의 질의 평가(Assessing the Quality of Democracy(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5)>에서는 민주주의의 절차적 차원에서 법치와 책임성을, 민주주의의 실질적 차원에서 자유와 평등을, 민주주의의 결과적 차원을 반응성(responsiveness)를 척도로 하여 민주주의를 평가하고 있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후발민주화 국가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단지 선거민주주의가 공고하게 실행되는 차원을 넘어서서 민주주의의 한단계 높은 '질'적 측면들을 민주주의의 발전 의제로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다이아몬드 등의 논의를 통해 이번 파동을 둘러싼 내 주장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한국의 헌법은 그 자체로 열린 의미의 민주주의 개념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의 주장을 마치 민주주의 개념을 자유민주주의 개념으로 바꾼 것을 정당화하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에 대해서 반박하고자 할 뿐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자유'는 '프리던(freedom)'이기도 하지만, '리버럴(liberal)'이기도 하다. 그것은 진보적이라는 함의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다양한 의견의 다원적 공존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 대신에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삽입한 것은 절차적으로 정당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현대적 논의에도 반한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협소한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으로부터 이미 벗어나 있다. 예컨대 복지가 문제가 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협소한 자유민주주의 개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더높은 절차적 투명성, 사회경제적 평등, 책임성을 내포하는 방향으로 확대해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라는 열린 개념을 왜곡하는 시도는 중단해야 한다. 또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열린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변화해 가야 한다.
교과서 개정을 둘러싼 농단, 지금이라도 정정돼야 한다이번 사태의 또 다른 심각성은 교과부 고시에서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바뀌어지는 과정에서 교육과정안 개정안 작성 및 심의과정에 참여하는 관련 위원회가 전적으로 무시되고 교과부 차원의 일방적인 행정적 결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당초 국사편찬위원회를 통해 제출된 '역사교육과정 개발 정책 연구위원회'의 개정안을 무시한 것은 물론, 교과부 자신이 설치한 '역사교육과정 개발 추진위원회'에서도 논의되지 않은 개념을 독단으로 삽입했다. 학자들과 현장교사, 관련전문가들로 구성된 교육과정 개정 프로세스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교과부의 행정적 조치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전국의 학생들에게 해당하는 중차대한 국가적 의사결정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더구나 개정안을 만든 심의회의 24명 중 21명이 반대했기에 이미 그 자체가 국가적 의사결정과정으로서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부당할 뿐만 아니라 고시가 그대로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많은 저항과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는 묵묵히 일하는 많은 교과부의 공무원들, 나아가 정부의 많은 선의의 공무원들 전체를 매도 대상으로 만드는 중대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교과부의 왜곡과정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교과부가 조사하고, 나아가 이번 고시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또하나의 '과잉과거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