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인연이 한 사람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좋은 사람 만나면 오르막이, 나쁜 사람 만나면 내리막을 걷겠지요. 물론, 나쁜 사람을 만나도 교훈을 얻는다면 새로운 삶이 기다릴 것입니다.
경남 밀양시가 주최한 팸 투어에서 뜻하지 않은 분을 만났습니다. 밀양이 고향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반가웠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아~ 그분' 하실 만치 큰 분입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적들 침입에 분연히 일어나 적장의 간담을 써늘하게 했던 분입니다. 이로 인한 많은 일화가 전해져 오며 위인전에도 나오는 큰 분입니다.
'사명대사'.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에는 사명대사 기념관과 생가 터 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또 인근에는 '얼음골', '만어사 만어석'과 함께 밀양 3대 신비로 손꼽히는 '표충비각'(사명대사 땀비)이 자리해 나라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전우치처럼 신통한 일화가 많은 '사명당'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명대사의 삶을 잠시 살펴보죠. 사명대사(1544~1610)는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호는 사명당(四溟堂), 송운(松雲)입니다. 속성은 임(任)씨며, 속명은 응규(應奎), 법명은 유정(惟政)입니다. 대사는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웠고, 부모가 죽자 명종(1559년) 때 직지사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 후 묘향산 보현사에 있던 서산대사 휴정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아 의승도대장이 되어 여러 전투에 참여해 공을 세웠습니다. 또한 네 차례나 왜군 진영에 들어가 휴전 협상을 벌이며 왜군이 제시한 휴전 내용의 모순과 죄악을 낱낱이 들추기도 하였습니다. 현재의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선조 37년(1604년)에 다시 일본에 건너가 3,500여 명의 조산인 포로를 귀국시키는 등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사명당은 전우치처럼 신통력을 가진 일화가 많습니다.
일례로 사명대사가 일본에 갔을 때 그를 목욕탕에 넣고 불을 때었으나 얼음을 얼게 했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