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은 교회 담임을 하고 있다 보니 여유가 없어서 보험을 든다는 건 생각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느라 모든 걸 다 바쳤으니 하나님이 건강 책임져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도 중에 보험 하는 분이 몇 있다 보니 제일 먼저 시작한 분한테 이미 들었습니다.
근데 수련원 건축 관계로 목돈이 필요해서 그걸 해약하게 됐습니다. 아내 것과 내 것을 합하니 2천 여 만원이 돼 좀 쓸 수 있겠다 했는데 막상 깨보니 1천만 원 조금 넘는 돈이었습니다. 그래도 돈이 급하니까 손해고 뭐고 따질 것 없이 해약해서 썼습니다.
얼마 전 보험 하는 친구한테서 문자가 왔습니다. "존경하는 황 목사님. 부탁이 있어 문자 드립니다. 이번 달에 꼭 한 가지 보험을 들어주세요. 넘 힘들어서 그래요. 꼭 부탁해요. 연락 기다릴게요."
깜빡 답신을 못한 상태에서 그 이튿날 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보험 들어 달라는 얘긴데, 내가 지금 보험 들 처지가 아닙니다. 그렇게 바로 들 걸 뭐 하러 해약했겠습니까. 손해 보는 재미로 하겠습니까.
건축 관계로 가정 경제가 최악인데 아무리 작은 금액이라도 감당할 계산하고 해야지 무조건 기분 좋게 들어만 주면 되는 게 아니라서 사정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회사에서 교육받은 대로 전화를 끊질 않습니다. 마침 내 방에 손님이 있어서 대화중이어서 그럼 일단 설계한 거 팩스로 보내주면 내가 검토해 볼 테니 전화는 끊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밤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친구의 청을 들어주기엔 맞는 조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메일을 보냈습니다. '친구여 미안하오'로 시작된 글에서 나의 처지와 또 우리교회에도 보험 하는 분들이 몇이나 된다는 얘기를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한테서 너무 격한 반응의 회신이 왔습니다. "섭섭하다. 내가 나 돈 벌겠다고 친구한테 보험 얘기했다면 난 혀 깨물고 죽겠다. 나 평생 먹고 살 돈 벌어 놨다. 잘 살아라. 죽을 때까지 당신한테 이런 소리 안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이 편지 받고 한 동안 난 멍하니 있었습니다.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고 기분이 좀 상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나한테 보험 들어 달라는 것인가 싶어 그냥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또 좋은 말로 회신했습니다. "친구여 정말 미안하오. 이 무능한 나를 친구라 인정하지 않아도 할 말이 없소. 그래도 다음에 좋은 모습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하겠소."
보험은 별 일 없을 때 들어 두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는 것이라 좀 힘들어도 들어두면 나중에 그 친구 말마따나 효자 노릇 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걸 모른답니까.
그렇지만 난 보험은 들어도 보험 쓸 일 없기를 바라고, 그냥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보험을 든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자동차 보험도 이십 여 년을 꼬박꼬박 들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쓸 일은 없었습니다. 내가 안 타 먹었지만 누군가가 혜택을 보는 것이니까 좋은 일 하는 셈치고 칼같이 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외의 사보험은 나이를 먹었어도 아직은 들 처지가 아니라서 못 드는 마음도 그 친구가 헤아려줬으면 싶습니다. 교단에서 실시하는 교역자보험도 못 들고 있어서 은퇴 후에 대책은 전혀 세우지 못하는 게 많은 목회자들의 현실입니다. 잘 나가는 목회자들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수준 이하의 어려운 생활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난 공식적으로 그리고 대인관계상 써야 하는 거 말고는 나를 위해서는 어디 가서 음료수 캔 하나 사 먹은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 많은 목회자들이 그렇게 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