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모니터우리집 거실에서 하릴없이 바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생중계하는
감시 카메라의 모니터
오창경
그렇게 거실에서 함께 살게 된 감시 카메라의 모니터는 빈대 붙어 사는 백수 친척처럼 성가실 때가 더 많았다. 집 밖의 영상이 하릴없이 모니터에 잡히는 것을 보게 될 때는 공연히 설치했다는 후회가 생길 때도 많았다.
그런데 며칠 전, 드디어 우리 감시 카메라가 한 건 올린 일이 벌어졌다.
보건 진료소 신축 공사장의 현장 소장이 우리 집에 찾아와 감시 카메라의 영상 좀 보여 줄 것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쓰는 기계톱과 전선을 몽땅 도둑맞았다는 것이었다. 우리 감시 카메라에 그것을 가져간 범인이 찍혔을지 모르니 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전 날이 일요일이라 공사를 쉰 사이에 누군가 그것들을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우리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돌려서 전날로 설정을 해놓았더니, 과연 한 남자가 공사 현장에 차를 몰고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그 남자는 익숙한 동작으로 전선들을 걷고 기계톱을 해체해서 차에 실었다.
카메라가 있다는 표지가 우리 집 곳곳에 붙어 있어도 그의 동작은 서두르거나 불안해 보이지 않고 여유로워 보였다. 수돗가에서 손까지 씻는 여유를 보이고 차를 몰고 유유히 돌아가는 장면이 우리 집 2번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힌 것이었다.
하지만 카메라의 영상만으로는 얼굴 판독이 어려웠다. 그의 걸음걸이와 차종 등의 특징으로 범인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경찰에 신고를 해서 공권력의 협조를 받으면 금방 해결될 상황 같았다.
"저건 분명히 아는 사람 짓입니다."
녹화된 장면을 보던 현장 소장이 말했다.
"그러네. 저거 〇〇네."
함께 영상을 보던 한 인부가 말했다.
"당장 전화해서 찾아 와야겠네. 다른 현장에서 일한다고 하더니 여기 거를(것을) 가져가서 일을 하고 있나 봐."
다른 인부도 기가 막힌 듯 웃으며 한 마디 보탰다.
"건축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가끔 있습니다. 누군지 알았으니 경찰에 신고할 것 없이 우리끼리 해결하겠습니다. 덕분에 고맙습니다."
현장 소장과 인부들이 돌아간 뒤에도 한 동안은 공사 현장에서 전선을 걷어서 차에 실은 후에 손까지 씻고 자기 물건인 양 유유히 돌아가던 카메라 속의 한 남자의 영상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는 표지가 우리 집 곳곳에 붙어 있고 카메라의 시선이 공사 현장까지 비추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현장 소장에게 말을 해둔 터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그의 카메라를 무시한 행동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다음 날, 현장 소장에게 잃어버린 것을 찾아 왔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럼요. 가져왔지요. 전화해서 '카메라에 다 찍혔어. 당장 가져 와' 했더니 얌전하게 가지고 왔습니다. 만약에 감시 카메라에 안 찍혔으면 그냥 잃어버렸을 겁니다."
거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아서 말없이 온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리 없이 다 감시하고 있는 카메라의 존재가 그 날만큼 대견스러운 적은 없었다. 앞으로는 그런 불미스러운 일로 카메라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일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도 현장이 찍힌 영상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