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 경남 합천에서 있었던 원폭희생자 추모제. 오른쪽에서 쭈그려 앉아 녹음을 하고 있는 남성이 조슈아 교수.
전은옥
그는 뽕짝이라 불리는 트로트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원폭2세환우들이 다양한 트로트곡을 부르면 녹음을 하면서 같이 즐거워 한다. 뽕짝 속에, 그리고 개개인의 십팔번 속에는 그 사람의 인생과 사연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뽕짝이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사람 개개인의 십팔번 속에서는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몰라요. 어떤 사람은 대동강으로 끌려간 경험이 있는데 거기서 '눈물젖은 두만강'을 배워 이 곡이 십팔번이 된 경우가 있었고, 예전에 힘들었던 시기에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사람은 그 사랑이 희망이 되어 이후에도 사랑 노래를 즐겨부르게 되기도 하죠. 국가적으로는 중요하지 않다고 취급당하고 무시당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주변 사람 신경쓰지 않고 다양한 내용을 담아낼 수 있어 뽕짝은 참 좋아요."96년에 한국에 왔던 그는 국립국악원에 가서 전통음악을 배우고, 서도 소리나 황해도․평안도의 민요와 잡가도 배웠다. 또 가야금이나 장구 등 전통악기도 배웠다. 지금도 풍물패에서 악기를 배우고 있다. 한국음악의 역사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서도소리에 관한 논문도 쓰고, 2006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3인의 노래 세계를 주제로 한 논문을 내놓았다.
그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그는 '피해자'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줄곧 '생존자'라는 단어를 선택하여 사용했다) 할머니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즈음의 일이다. 서도소리를 공부하다 보니 그를 가르치는 스승들이 모두 기생의 제자 출신이었던 것. 판소리나 창은 기본적으로 남성들의 장르였으나,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기생들이 하게 되었다. 일제가 한반도에 침투하면서 뛰어난 기예를 가지고 있던 기생들이 점차 성산업화되었다. 조슈아 교수는 음악과 성의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 부분에 천착하게 된다.
하지만 여성주의 책을 읽어본 적도 없고, 여성의 역사를 잘 모른다는 결핍감을 느끼고 여성문제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한국의 음악을 깊이 알려면 한국여성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와중에 정신대문제연구소에서 처음 출판되었던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2년부터 나눔의 집을 꾸준히 드나들며 봉사활동도 하고, 할머니들의 노래를 들었다. 아예 1년 동안 나눔의 집에 있으면서 봉사활동과 노래 공부를 겸한 적도 있다.
"제가 남자고, 외국인이잖아요. 경험의 차이, 성별 차이, 계급의 차이, 시골과 도시 사람…. 뭐 이런 다양한 차이와 단절이 있을 텐데 제가 할머니들의 고통 그리고 노래 세계를 깊게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어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할머니들을 만나면 너무나 좋고, 흥미로운 분들이고, 밝고, 철학자적인 할머니부터 가수 같은 할머니도 있어요. 진짜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지만 간신히 자기 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치료하면서 지금껏 살아오신 분들이잖아요. 할머니들의 노래 속에는 저희가 잘 모르는 '위안부'의 경험과 역사가 들어가 있어요."그가 노래를 통해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까닭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경험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노래 속에 녹아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군 성노예 제도에 희생된 '위안부' 할머니들은 수십 년 동안 이야기를 못하고 비밀로 간직하고 있다가 20년 전부터 한 할머니의 용기로 조금씩 드러나고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조슈아 교수가 생각할 때, 말로 표현하는 것과 노래로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 그래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뽕짝 노래를 자기 경험에 맞추어 개인화해 부르고 있는 할머니들을 보게 된 것이다.
이번에 그가 합천으로 온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곁에서 8년 동안 공부를 하였다면, 이제 원폭피해자와 2세환우들과의 만남은 시작 단계다. 그러나 '위안부' 할머니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 삶과 노래세계를 배운 것처럼, 원폭2세환우들의 삶과 노래세계도 알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오래 전 일이다.
2003년 '위안부' 할머니들의 노래를 듣고 연구하던 시절,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결성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왕성하게 인권운동을 펼치던 고 김형률씨를 세 차례 만났던 것. 형률씨에게서 원폭2세환우가 처한 현실과 아픔을 들으면서 언젠가는 꼭 그와 같은 사람들의 노래세계도 깊이 파고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올해부터 그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 다시 한 번 "왜 노래세계냐?"라고 질문을 던졌다. 앞에서도 몇 번을 관련된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도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귀찮아하지 않고 차분하게 답변했다.
"자신의 아픈 것들을 오랫동안 숨기고 살아온 사람들이 많잖아요. 원폭피해자나 2세들의 경우도 자식들 결혼하는 데 지장있을까봐. 그래도 어차피 사람은 힘든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게 되어 있거든요. 말이나 글로는 차마 꺼내놓을 수 없지만, 다른 식으로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찾는 거에요. 그중 하나가 노래라 생각해요."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노래와 농담, 이야기 속에서 삶을 배웠다고 한다. 노래세계를 연구한다고는 하지만, 그의 작업은 노래를 한 번 녹음하고 가버리는 것이 아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노래세계를 공부할 때도 첫 녹음을 2002년에 해서, 가장 최근에는 몇 주 전에 녹음을 했다.
"바로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합천에서도 몇 개월 동안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어요. 결국은 인간관계에 따라서 가는 거거든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알기 위해 기다리고, 재미있게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과는 나와요. 벌써 재미있는 경험과 추억들, 사람과의 관계가 생겼어요. 녹음도 많이 쌓였어요. 잘 될 거라 생각해요." 그는 오랫동안 한국과 인연을 맺고, '위안부' 할머니나 원폭2세환우들을 만나면서 품어왔던 오랜 생각을 마지막으로 풀어놓는다.
"운동사회를 보면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시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면서, 결국 사진이나 글, 다큐멘터리만 건조하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실제로는 그분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아요. 생존자에게는 다양한 예술이 있어요. 노래, 요리의 예술, 옷 만드는 것. 생존자들의 경험이나 노래, 농담,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생존자들이 어떤 지혜를 가지고 있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잘 살고 있는데도 좋은 인성, 좋은 미소를 보이기 힘들잖아요?""생존자는 그냥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장애인도 마찬가지예요. 오히려 저의 선생님들이라 생각해요. 우리가 '약자에게 잘해드려야 한다'가 아니라, 실제로는 우리가 더 부족한 사람들이에요. 노래 속에, 농담 속에, 이야기 속에, 그리고 목소리 속에 담긴 사람의 지혜와 철학을 배워가면 미래는 좀더 밝아지는 것 아닐까요?" 그에게 추석연휴기간은 어떻게 보낼 거냐 물으니, 조용히 일을 하면서 지내고 싶다고 답했다. 한가위 보름달처럼 은은하게 마음이 꽉 차올라 보였다. 참, 그는 할머니들의 생활관과 함께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있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일본인 자원활동가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이래저래 한국에서 복을 많이 쌓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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